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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르셔 꽤 Sep 14. 2020

교사로 산다는 건


참 이상하지요. 제 고객님들은 제가 열심히 일을 하면 좋아하지 않아요. 오히려 적당히 조금 덜 하는 걸 선호하죠. 무슨 일이 있어 제가 수업에 늦기라도 하면 오히려 반색을 한다니까요. 아마도 마음 속으로 조용히 기도를 하고 있을 거예요. 이 아름다운 공백과 유쾌한 긴장이 되도록 오래오래 지속되게 해달라고 말이죠. 이런 지경이니 예정보다 일을 조금 더 하기라도 하면(종이 쳤지만 수업을 마무리하지 못했을 때요 ), 저는 그만 순식간에 수명이 훅 느는 느낌이에요. 네, 욕을 더럽게 많이 먹어서죠. 사실 깜짝 놀랐어요. 침묵으로도 유창한 욕을 구사할 수 있구나! 그뿐인가요? 눈이 있어도 뵈는 게 없을 수 있구나. 뚫린 귀를 닫을 수도 있구나. 아니, 가까이에 있는 제 목소리는 안 들리는데 문밖의 친구 목소리는 귀신처럼 들리는 스마트한 달팽이관을 보유할 수도 있구나. 몸과 마음이 가볍게 분리될 수 있구나. 껍데기 놓아두고 이미 문밖으로 달음질친 네 영혼은 청포도 사탕으로도, 말랑카우로도, 스니커즈로도 어림없구나. 되돌릴 수 없구나. 종이 치면 그뿐.


교사로 산다는 것은, 한 마디로 참 복잡다단하지요. 내 마음을 몰라주는 나의 어린 동료는 어려서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그래 남의 돈 벌기가 쉬운가 하며 어떻게든 애써 꾸역꾸역 최선을 다해 이해하고 견뎌보겠는데, 이 일이 어디 그렇게 간단한가요. 저희는 어린 동료의 부모까지 뫼셔야 하잖아요. 담임이 되는 순간 갑자기 육십명의 시부모님이 덤으로 주어지는 기적. 뭘 해도 편치 않고 어려우니 시부모님 맞지요. 이것으로도 모자라 가끔은 시조모님까지 특별 출연을 하시지요. 이건 실화인데요, 서울대 출신의, 교장으로 퇴직한 외할머니께서 손자의 담임이 궁금하다시며, 제 수업을 한 시간 동안 듣고 가신 적도 있고요. 귀한 우리 손녀는 친구 없이 혼자서도 완벽하게 잘 지내는 이슬 같고, 코스모스 같은 아이인데, 담임이 쓸데없이 친구 관계를 걱정한다며 득달같이 달려오신 할머니도 계셨어요. 말해 뭐해요. 일로 만난 사람들과 드라마 한 편 안 찍은 교사가 어디 있겠어요?


어린 동료는 제가 열심히 하면 싫어하고, 그의 부모는 제게 그 이상의 열정을 요구하고. 씹기 좋은 껌에 만만한 동네북이라 들려오는 이야기는 또 좀 많은가요. 맞아요. 선생으로 살기 참 어렵죠. 저는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적어도 “내가 낸 세금으로 니 월급 주는 거다.”라는 말을 다행히 면전에서 들어본 적은 없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 말만큼이나 기분 상할 만한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어요. “교사들 솔직히 공부 잘하는 애들만 이뻐하는 거 아니예요?”라는 말이요. 사실 바르고 성실한 학생은 예뻐할 수밖에 없어요. 미워하는 게 이상하지요. 그런데 그런 학생이 결과적으로 공부를 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뿐이죠. 단언컨대 공부를 잘한다고 예뻐하지는 않아요. 곰곰이 생각하다가 깨달았어요. 그런 생각이 질문을 한 학부모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을요. 공부 잘하는 자식이 예뻐보이는 본인의 마음이었던 거죠. 쳇! 교사가 그 정도의 사리분별력과 공정성도 없다고 생각하다니. 자존심이 상해서 그 이야기는 두고두고 마음에 남더라구요.


“옛날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다.”라는 말이 저는 좋아요. 잠깐만요, 제가 좋다는 건, ‘옛날’엔 밟지 않았다는 사실, ‘옛날’이라는 단어에 방점이 있다는 거예요. 요즘은 그림자가 다 뭔가요, 자존심과 존재감까지 즈려밟는 세상인걸요. 네, 저는 차라리 이렇게 솔직한 게 좋아요. '그거 다 옛말이다. 이젠 아니다'하고 말해주는 거요. 맞는 말이죠.  교사가 뭐 별건가요. 학생에게는 직장 동료(선임이 되겠군요), 학부모에게는 아이의 성장을 함께 도모하는 조력자 정도면 족하죠. 다른 건 필요 없고, 일로 만난 사이에 필요한 기본적인 예의와 배려면 갖춰주면 좋겠어요.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은 오땡큐예요. 어차피 제가 선택한 일이고 돈 받고 하는 일이니 제 노고를 몰라줘도 상관은 없는데, 알아주신다면 “아이구야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괜찮습니다. 할 만해요. 세상에 남의 돈 벌기가 어디 쉬운가요. 다 똑같지요.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나요? 아 예예, 물론 저는 새파랗게 어린 동료와 함께 지내려니 각별히 더 힘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알만한 사람인 그의 부모가 뜻밖에 성을 내며 관리자와 상급 기관을 들먹일 때는 정말 진이 빠지는 느낌이에요. 그럴 때면 내가 누구 좋으라고 열심히 하나, 기본만 하자 다짐에 다짐을 하지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힘들지 않습니다. 가슴 속에 사표 한 장 품지 않은 직장인이 어디 있나요? 다 똑같지요. 아이고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아이고 아이고 고맙습니다.”


갑자기 이런 글을 왜 썼을까. 오늘 무슨 힘든 일 있었나하고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요. 일이 오늘만 있나요. 매일 있지. 눼눼 오늘도 있었어요. 새파랗게 어린 동료가 잘못은 지가 하고 성질을 버럭 내더라고요. 하, 성질이라면 저도 만만치 않지만, 자본주의 마인드로 쿨하게 참았어요. 딱 여기까지, 우리는 일로 만난 사이.



#새파랗게어린나의직장동료(14세) #스승의그림자만밟아주세요 #마음은지켜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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