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쌤이 오랜만에 우리 교무실에 왔다. P는 J를 보고 반색을 하며 부지런히 냉장고와 전자레인지를 오가더니 흑당버블티 한 잔을 만들어 내놓았다. 맛이 괜찮은지, 타피오카의 식감은 적당한지 묻더니, J에게서 “오, 맛있는데요. 저 버블티 좋아해요.”라는 대답을 듣자마자 “다행이에요.” 한 마디를 남기고는 얼른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P는 늘 바쁘다. 수업 영상 제작과 피드백 때문에 툭하면 야근을 하는데 우리는 P 덕분에 기사님이 8시 전후로 교문을 닫는다는 것과, 9시 반이 넘으면 자동으로 교무실 전원이 차단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보면 툭 소리와 함께 전원이 나간다고. 그러면 교무실에는 슬며시 겁을 집어먹은 시커먼 노동자 한 명과 네모난 노트북 화면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고. P는 담력을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아니라면 그런 정적을 맞닥뜨리기 전에 퇴근을 하든가 아니면 미리 당직실에 전화를 드려서 전원을 바로 올려달라고 부탁을 드려야 한다는 팁을 알려주었다. 아무튼 P는 늘 그렇듯이 바빠서 우리의 대화에 끼지 않았다.
J쌤과 중앙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쌤, 2학년부는 줌 수업 한다니까 반응이 어때요?”
“어,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하라면 해야지. 우린 별 얘기 안 했어요. 한 10분 만에 끝났나. 에이 몰라, 난 펭수나 데리고 출첵하려고요. 펭하!”
“그렇구나, 우리 1학년부는 난리도 아니었는데. 1시간도 넘게 회의했잖아요. 출첵을 어떻게 할 거냐, 시간표는 어떻게 운영하고, 교실은 또 어떻게 나눌 건지 한참 이야기했어요. 1학년부는 뭐든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거든. 역시 P쌤은 줌 수업 얘기 나오자마자 어떻게 수업을 구성해서 전달해야 애들한테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고민하잖아. 진짜 애들밖에 몰라요. 참교사야 참교사.”
그때 P가 벌떡 일어나 테이블로 걸어왔다.
P. “아니야 아니야, 누가 참교사예요. 난 참교사라는 말이 딱 싫어, 그 말이 제일 싫어. 교사면 그냥 교사지 무슨 참교사야. 아니 왜 교사한테만 그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요? 난 사명감 따위 없어. 그냥 딱 직장 다니는 건데요. 나는 나밖에 몰라요. 나만 알아. 난 이기주의자야. 난 어떤 상황에서든 나밖에 몰라요. 만약 일이 생기면 학생은 자기 부모가 보호할 테니 전 불쌍하고 가련한 저를 보호할 거예요. 근데 난 엄마도 없고, 한부모 가정이라 내가 불리해. 그래서 제가 노조도 두 개나 가입했잖아요. 나한테 일 생기면 도와주지 않을까 싶어서.”
W. “ㅋㅋㅋ 에이, 거짓말. 맨날 수업 준비 하느라 집에도 안 가고 잠도 못 자면서 무슨 소리야. 적당히 해. 받는 만큼만 일하는 거야.”
P. “어머, 받는 만큼 일하면 손해죠. 그보다 덜하는 거예요. 받는 것보다 조금 덜해야 남는 장사지. 이 험한 세상 살아나가려면 그렇게 정직하면 안 돼요. 제가 야근을 하는 건 느려서 그런 거예요. 효율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늦게까지 하는 거지, 원해서 하는 게 아니에요. 저는 사명감 따위로 일하지 않아요. 사명감이란 말도 딱 싫어요.”
O. “아 웃겨, 쌤 말만 그렇게 하고 제일 열심히 하잖아요. 쌤이 제일 열정적이야.”
P. “아놔, 누가 직장 생활을 열정을 갖고 해요. 열정 갖고 직장 생활하면 못 써요. 쌤 남편이 열정적으로 직장생활하면 좋겠어요? 그러면 안 되지. 가정이 중하지 뭣이 중해서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해. 교사도 그러면 안 돼요. 다른 직업이랑 똑같아. 그냥 자기 일 문제 없이 잘 처리하면 되는 거지. 아니 마트에서 계산 잘한다고 참캐셔라고 하지 않잖아요. 그냥 캐셔지, 그냥 캐셔잖아요. 참소방관, 참의사는 없잖아요. 우리도 참교사 말고 그냥 교사여야지. 아 진짜, 참교사라는 말이 제일 싫어.”
W. “아, 자기 진짜 웃긴다. 참교사라는 말이 왜 싫어 ㅋㅋㅋ”
J. “적어 놓을 거야. 적어야 돼. 어디 가서 나도 써먹을 거야. 참캐셔 기억할 거야.”
#여기서 #저는P를담당하고있습니다 #참교사는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