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 의사 따위는 전혀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일터는 일터일 뿐, 일터에서 굳이 친목을 다지지 않는다.’라는 말이 불멸의 띵언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고, 나는 이미 충분히 몹시 바쁘게 지내고 있어서(게을러서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게으르면 바쁘다. 일을 미루면 몸은 비수기인데 머릿속 부담감은 극성수기인 셈이라. 게으르면 늘 바쁘다. 아마 찐게으름뱅이가 아니면 이해 못하실 터.) 다른 어떤 모임도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나는 삼백클럽의 가입 조건을 이미 충족하고 있었고, 비록 음지에서 활동했지만 누구보다 높은 성과를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기존 멤버들의 눈에 내 모습이 자연스럽게 포착됐나 보다. 누가 봐도 나는 영락없는 삼백클럽 멤버였으나, 그 사실을 당사자인 나만 모르고 있었다.
그날도 늘 그렇듯 퇴근 시간을 한참 넘기고는 급히 철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막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옆자리 쌤이 말했다. “쌤도 삼백 클럽이구나.”
어머, 정말 그렇네. 노트북 가방, 일거리를 잔뜩 넣은 에코백, 그리고 그 옆에 보조 출연자처럼 붙어 있는 손가방. 나와 출퇴근을 함께하는 내 찐친 원투쓰리. 그렇지 이 아이들이 없으면 불안해서 안 돼. 학교에서 못한 일 집에 가서 다 끝내고 와야지. 그럼그럼 우리 아가들이랑 같이 집에 가야지. 비록 내일 고대로 다시 들고 오더라도 우선은 같이 가야지. 어떻게 나만 가, 의리 없이.
교사로 살면서 가장 힘든 일은 도무지 퇴근이란 게 없다는 거다. 몸이 학교 밖으로 나갔다고 한들 머릿속엔 여전히 그날그날의 온갖 사건사고들이 들어차 있고, 일과를 마무리하면 쉴 수 있는 게 아니라 또 다음날의 수업을 준비해야 하니까. 앞서 말했듯이 나는 게으름뱅이라 미리미리라는 분과는 평생 인연이 없다. 대신 애증의 원투쓰리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일일 드라마를 찍으며 동고동락 중.
사실 이런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무능하고 답답해 보여서. 느리고 일 못하는 거 티내는 것 같아서. 그래서 작은 손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출퇴근하는 분들을 보면 슬며시 자괴감이 들었다. 또 그 가볍고 경쾌한 차림이 몹시 부러웠다. 나는 기껏 옷을 차려 입어 봤자 까만 노트북 가방과 묵직한 에코백 콤비가 양쪽에서 훼방을 놓는 느낌이라. 차에서 내릴 때부터 초라하니까, 주섬주섬 낑낑. 아, 눈물 나.
그런데 어느날 문득 깨달았다.
‘노트북, 일거리, 교재, 읽고 싶은 책’을 잔뜩 들고 학교와 집을 오가는 내 루틴이,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나는 이것들을 가방에 넣고 학교를 나설 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틀림없이 다 할 수 있을 거야’라든가, ‘아마 할 수 있을 거야.’라거나, ‘어쩌면 할 수 있을지도 몰라’라는. 정말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과학적으로 분석을 하자면 ‘웃기고 자빠졌네, 팔운동 하러 들고 다녀? 그냥 놓고 가시지,’라는 결론이 합리적이겠지만 나는 매일 나를 믿으며 기꺼이 원투쓰리와 동행을 했다. 결과적으로 팔운동만 한 날도 적지 않았지만. 적어도 자괴감 같은 것은 느끼지 않는다. 동행하는 내 마음만큼은 기특해서. 그래, 이제 나는 뼛속까지 삼백 클럽.
덕분에 요즘은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선생님들이 “어머 짐이 왜 이렇게 많아요?”라고 물으시면 활짝 웃으며 이렇게 답한다. “제가 자신을 믿더라구요. 이거 집에서 다 하고 올 줄 알았어요ㅋㅋㅋㅋㅋ”라고. 찐친들의 존재를 기꺼이 내보이며 긍정하기.
중년 여성이 되고 나서 좋은 점은 이렇게 내가 스스로에게 퍽 너그러워졌다는 거다. 탄력과 생기를 잃고 둥실한 나잇살과 둥그레한 여유를 조금 얻었달까. 물론 나잇살은 반품하고 여유만 수령하고 싶은데, 내가 또 안은 몰라도 겉은 일말의 거짓이 없어서, 누가 봐도 진실한 중년여성의 모습이라. 반품 불가, 그냥 장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