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귀를 의심했다. 동시에 직감했다. ‘와, 저 말이 올해의 말말말 1위가 되겠구나. 아니, 저 정도면 내 교직 인생 최고의 에피소드가 될지도 모르지.’ 세상에 고작 열네 살짜리 아이가, 교무실 가운데에 서서, 교사가 이렇게 많은데,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 시점에.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가 있는 거지? 와, 강적이다. 맙소사, 내가 저 아이의 담임이라니.
온라인 개학을 한 후, 동영상 컨텐츠로 수업을 하던 때였다. 수학과에서 과제를 제출하지 않은 학생을 따로 불러 수업 참여도를 확인하면서 모르는 것을 알려주고, 노트 작성 및 과제 제출 방법을 안내하던 날이었다. 호출을 받고 등교한 학생 몇 명을 교실에서 가르치던 중에 수학 선생님은 Y의 예의 없는 태도에 마음이 상했고, Y는 “초등학교 때 안 배웠니?”라고 묻는 말에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몇 마디 주고 받으며 분위기가 좋지 않자 수학 선생님은 따로 이야기를 하자며 Y를 교무실로 불렀다. Y는 교무실에 들어서서 담임인 나를 보고 딱 저렇게 말했다. 선생 역할이 가르치는 거 아니냐고, 몰라서 못한 건데 어쩌라는 거냐고. 그날, 아이와 어떻게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학생이 나에게 한 말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무례한 이야기라 기가 막혔고, 기가 막혔던 것에 비해 대화는 그럭저럭 통해서 적당히 상황을 이해시킨 후 아이를 돌려보냈다.
“사과할 마음 없는데요?”
한 달 후의 일이었다. 오랜만에 등교를 했고 수학 시간이 시작되었지만, Y는 전 시간에 하던 색칠을 계속하면서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수학 선생님은 그만두라고 했지만 Y는 하던 일을 멈추지 않았다. 몇 번의 말이 오간 후 수학 선생님이 직접 색연필을 넣으려고 Y가 쥐고 있던 색연필을 잡았다. Y는 힘을 주고 놓지 않았다.
“뭐 하는 거야?”
“선생님이 잡고 있어서 색연필을 넣을 수가 없잖아요.”
“네가 안 넣어서 내가 잡은 거잖아.”
“뭐라는 거야?”
그렇게 약간의 실랑이가 오간 후에야 겨우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날 수업이 모두 끝난 후, Y가 교무실에 불려 왔다.
“네 행동이 잘못된 거 알고 있니?”
“네.”
“알면서 그런 거면, 나 기분 나쁘라고 일부러 그런 거니?”
“…….”
“사과해.”
“사과할 마음 없는데요?”
말이 오갈수록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나는 맞은 편 자리에 앉아서 아닌 척하면서 모든 상황을 다 지켜보고 있었다. 그 상황을 조용히 기록했다. 잘못은 했지만 미안하지 않고, 어떤 지도도 따르지 않겠다는 아이를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얼마 후 두 사람의 대화가 멈춘 틈에, 수학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Y와 복도로 나갔다.
서창으로 들어오는 6월 오후의 햇살은 생각보다 꽤 뜨거웠다. 창가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두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다. Y를 복도로 부를 때만 해도, ‘와, 이 아이랑 어떻게 이야기를 하지.’ 걱정이 앞섰고,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다만 누군가 개입을 해야 할 상황인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나선 것뿐이었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대화는 무척 차분하고 나름 원만하게 진행되었다.
지금 무엇이 문제인 것 같냐고 물으니 “제가 집에 못 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분이 나빠요. 그쪽(수학 교사)도 나쁘겠죠.”라는 말이 뒤를 이었다. “수학 선생님이 마음에 안 들어요. 성격이 나빠요.”라고 하기에, 너는 어떤 것 같냐고 물으니 “좋은 편은 아니에요.”라고 대답했다. 무엇을 원하느냐고,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으니 “수학 선생님이랑 말 섞기 싫다. 혼자 공부하겠다.”라고 답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초등학교 때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으니, 어려서 ‘쓰레기 같은 선생님’을 만났던 적이 있는데, 그때 철없이 막 행동했지만 다른 때에는 조용히 괜찮게 지냈다고 했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선생님이 있을 리 없지만, 수학 선생님이 싫다고 말했다. 나는 “선생님이 네 마음에 들어야 하는 건 아니야. 교사가 학생을 두고 좋다 싫다 얘기하지 않듯이 너도 그러면 안 돼. 누구를 만나든 서로 존중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대화를 나눠보니 Y는 학교와 교사에 대한 불신과 상처가 큰 아이였다. 피해 의식과 방어본능 때문에 교사의 언행에 민감해 보였다. 반면 자신에게는 관대했다. ‘아직 시야가 좁은 어린아이일 뿐이구나, 부지런히 부딪히며 커야겠구나.’ 싶었다. 나는 Y의 이야기를 들으며 중간중간 너라면 어땠을 것 같니, 네가 한 행동은 어떠니, 그때 친구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선생님이 왜 그러셨을까 등등의 질문을 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하는 것 말고는 대체로 듣는 쪽이었다. Y는 생각했던 것만큼 무례하거나 거칠지 않았다. 덕분에 심란했던 마음이 차차 누그러졌다. Y도 더이상 흥분하지 않았고, 불편하거나 불안해 보이지 않았다.
긴 대화 끝에 Y가 말했다.
“오늘 제가 잘못한 거 알아요. 그런데 사과는 못 해요. 이유는 말할 수 없어요. 이유를 말하면 일이 커져요.”
우와, 이거 신박한데? 잘못은 했지만 사과할 수 없다? 사과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이유를 말하면 일이 커지니 말 못 한다. 그러니 알려고 하지 마라라니? 이유가 뭐 시한폭탄이야? 알면 터져? 왜 말을 못 해?
시한폭탄 같은 게 있기는 했다. 바로 Y의 카톡 프로필. 사나흘 후쯤 우연히 Y의 프로필을 보니 ‘수학 시발’이라고 적혀 있었다. 헐! Y야 이건 아니야. 이렇게 자꾸만 일을 키우면 어떡해. 그 와중에 씨발이 아니라 시발이라고 적은 건 혹시 네 나름대로 예의를 갖춘 거니? 어감을 조절한 거야?
동영상 컨텐츠로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Y는 과제를 열람하지 않거나 제출하지 않는 일이 많았다. 등교를 하는 날에는 지각이 잦았고, 수업 시간엔 무기력하게 앉아 있거나 엎드려 있는 때가 많았다. 쉬는 시간엔 어울리는 친구 없이 혼자 자리에 앉아 있었고, 점심도 먹지 않았다. 왜 밥을 안 먹느냐고 물었더니 “여기 밥 맛없어서 먹기 싫어요.”라고 대답했다. 아니, ‘여기’ 라니, “맛집 평가도 아니고 무슨 말이야.” 나는 웃음이 나왔다.
Y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아이였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제멋대로였고, 게을렀고, 심드렁했고, 부족했고, 예민했다. 그렇지만 솔직했고, 단순했고, 노력했고, 부드러웠으며, 말랑말랑했다. 교사이자 담임으로서 그 아이를 대할 때면 복잡했고, 어려웠고, 불안했고,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정말 특별한 아이였다. 자르기 귀찮아서 내버려 둔 머리가 어깨에까지 내려와도 개의치 않는 걸 보니 분명히 그랬다. 보통의 사춘기 남학생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Y는 그 머리칼로 얼굴을 덮고서 엎드려 자거나, 가끔 머리를 쓸어넘기며 머리핀이 있으면 좀 달라고 말했다. 코로나 때문에 개인 물병을 들고 등교하는 게 원칙이었지만 Y는 늘 빈손으로 등교해서 교무실에 와 컵을 찾았다. 물을 마시고는 한결같이 컵을 탁자에 그냥 두고 나갔다. 그러면 나는 ‘어쩜 이렇게 한결같을까, 그 컵을 누가 치우는지는 생각이나 할까’ 쓸데없는 것을 궁금해하며 컵을 씻어서 제자리에 두었다. 물 말고도 교무실에 오는 이유는 많았다. 뭔가를 빌리러 오거나, 시시콜콜한 것을 물으러 오거나, 가끔은 심심하다며 나를 찾아왔다.
'담임 시간 + 모둠 수업' 조합에 엎드려 잘 수 있는 학생은 단언컨대 없다. Y 말고는!
Y는 운이 좋았다. 담임인 내가 Y만큼이나 부족하고 허술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녀석의 엉뚱하고 부족하고 제멋대로인 모습이 그럭저럭 이해가 됐다. 나 역시 반듯하지 않고, 꼼꼼하지 못하고, 적당히 게으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출결, 과제 제출, 기본적인 학교 생활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면 나머지는 그러려니 넘어갔다. 나 역시도 운이 좋았다. 모르긴 해도 Y가 나를 예의 ‘쓰레기 같은 선생’으로 냅다 묶어버린 것 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수잔 델린저 박사의 도형심리 검사 결과, 나는 교사 집단에서는 흔치 않은 별형이었다. Y는 검사에 응하지 않아서(이것부터가 별형이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누가 봐도 별형이었다. 그 담임에 그 제자라 그런지 그런대로 그럭저럭 그만하면 괜찮게 굴러갔다.
물론 괜찮아지지 않는 것도 있었다. Y는 지각이 잦았는데 조회 중간에 앞문으로 쓱 들어와서는 인사도 없이 자리에 앉았다. 책가방을 책상 옆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이어서 자기 몸도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부려놓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황스러웠고 난처했다. 다른 아이들이 보기에 어쩌면 모양도 조금 빠졌을 것이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Y야, Y야, Y야”하고 불렀다. 내가 이름을 세 번쯤 부르면 Y는 그제야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안녕, 인사부터 할까?” 하면 고개를 끄덕하고는 다시 반죽처럼 책상 위에 퍼졌다. 별것 아니지만 그 순간마다 꽤 당혹스러웠다. 학생들의 돌출행동에 웬만해서는 당황하지 않는 편인데, Y가 교실에 들어서는 모습에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불편함이 있었다.
‘안 되겠어. 오늘은 진짜 한마디 해야겠어. 조회 중간에 들어올 땐 조심스럽게 들어오는 거라고, 나한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는 게 예의라고, 바른 자세로 앉으라고 말해야겠어.’라고 생각을 한 날, 종례를 마치고 Y를 교무실로 불렀다. 어떻게 말을 시작할까 고민하고 있는 사이, Y가 교무실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중앙 탁자에 있던 간이 의자를 들고는 내 자리로 오더니 내 옆에 바짝 붙어 앉는 것이었다. 하, 우리 이런 사이 아니잖아? 지금 정답게 앉아 있을 타이밍이 아니잖아? 내 핸드폰을 집어 들고 기종이 뭐냐고 물을 때가 아니잖아? 그렇게 말간 얼굴로 내 책상을 훑어볼 때가 아니라고. Y는 이런 식이었다. 상식적으로 기대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그러면 나도 뜻밖에 물렁해져 버렸다. 이렇게 우리는 이상하고도 묘하게 잘 지냈다. 아, 잘은 아니고 적당히.
Y에 대한 친구들의 칭찬. 또래가 보기에도 Y는 자유로운 영혼!
“죄송해요, 선생님.”
10월, 11월에 Y를 포함한 5명의 학생들을 위해 대안교실을 운영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 따로 모여 전문가 선생님을 모시고 미술치료, 목공수업, 학습 코칭 등의 수업을 진행했다. Y는 이 수업에 흔쾌히 참여하겠다고 했고, 첫날 수업이 끝난 후 소감을 물으니 “재미있어요.”라는 답을 해왔다. 더러 지각을 하기는 했지만 수업에는 잘 참여했다. 교과 수업이 아니고, 소수를 위한 맞춤형 수업인 데다,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 수업을 들으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어느날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Y와 마주쳤는데, Y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스텝을 맞추며 신나게 뛰어오고 있었다. 긴 머리가 경쾌하게 좌우로 찰랑였다.
그즈음 학생부 선생님의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는데 Y의 등교 모습이 확연하게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늘 어깨를 늘어뜨린 채 등교로 가장자리로만 힘없이 걸어오던 1학년 아이가 언젠가부터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등교로를 가로질러 온다는 것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아이였지만, 그 변화가 너무도 선명해서 눈에 띄었다고 하셨다. 그럴 만도 하죠. 복도에서는 춤추듯 날아다니는걸요.
Y의 변화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대안교실에 지각을 하던 날, 담당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는 “금방 갈게요. 늦어서 죄송해요, 선생님.”이라는 말을 했단다. 담당 선생님은 Y의 말에 감동해서 담임인 나에게 흥분을 하며 전하셨다. 나 역시도 감격을 해서 Y에게 폭풍 칭찬을 했다. “네가 그렇게 인사를 해서 영어 선생님이 정말 감동하셨대. 그래, 그렇게 마음을 전하는 거야. 잘못했을 땐 꼭 사과하고.” 그날 이후 Y는 늦을 때마다 죄송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역시, 말랑말랑한 아이였다. 관심과 사랑만큼 달라지는.
최고의 사건은 ‘친구 사랑의 날’에 일어났다. 사과나무 그림 위에 사과와 감사의 메시지를 써서 붙이는 행사를 진행했는데, 그날 Y가 수학 선생님에게 메시지를 남긴 것이었다. “선생님 제가 전에 예의 없게 굴어서 죄송해요. 사과드립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마침 우리반 수업에 들어왔었던 수학 선생님은 “어머, 나한테 쓴 내용도 있네. 그래, 사과 받아 줄게.”라고 답을 하셨단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듣던 날, 교무실은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어머 어머, 정말?”, “어머나, Y가 그랬어요?”, “감동이다, 진짜!”
이로써 Y와의 여정은 기.승.전.안도로 끝이 났다. ‘맙소사, 내가 저 아이의 담임이라니!’는 ‘내가 너의 담임이라 다행이야.’로 바뀌었고, ‘사과할 마음 없는데요?’는 ‘죄송해요, 선생님’으로 바뀌었다. 고개를 숙인 채 벽을 따라 걷던 아이는 대각선을 가로질러 걷게 되었다. 아쉬운 점은 많지만 이만하면 됐다 싶다. Y는 충분히 노력했고, 그만큼 달라졌다.
물론 Y는 갈 길이 멀다. 여전히 위태위태하다. 종업식을 앞두고 어머니를 학교에 오시게 했다. 통화는 여러 번 했지만 꼭 한번은 직접 만나뵙고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아서였다. 가정과 학교에서 Y의 모습이 어떤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Y가 수학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메시지를 남겼다는 대목에서 어머니는 눈물을 보이셨다.
잘하고 있는 점, 달라진 점, 앞으로 노력해야 할 점 등에 대해 말씀드리며 “공감하며 안아줄 부분은 그렇게 하시되, 아닌 부분은 엄격하고 단호하게 지도해 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이야기 드렸다. 너무도 당연한 말인데 어머니는 이 말에 반대하셨다. “선생님, 저는 생각이 달라요. Y는 지금도 많이 노력하고 있는 거예요. 예전엔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해서, 아침에 처진 어깨에 겨우겨우 가방을 걸쳐서 학교 앞까지 바래다줬어요. 멀지도 않은 거리를 꼭 차로 태워서 데려다 줬어요. 발을 떼려고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제 그렇지 않거든요. 저는 이걸로 만족해요. 혼자서 컴퓨터 켜고 시간 맞춰 자리에 앉는 것만으로 만족해요.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네, 어머니 생각이 맞을 거예요. 더 오래 봐오셨고 더 잘 아시니 어머니의 판단이 더 정확하죠. 저도 Y가 노력하고 있고 많이 달라진 거 알아요. 어머니 말씀처럼 Y만의 속도가 있으니 믿고 지켜봐 주세요.”
Y와 어머니를 응원합니다. 14-19세, 저의 어린 직장동료들을 응원합니다. 그들과 함께 울고웃으며 하루를, 한 달을, 1년을 무사히 보내고자 애쓰는 저를 응원합니다. 그해의 특별한 아이와 어김없이 한 반이 되는 저의 기구한 운명을 응원합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과 또 묘하게 찰떡 케미를 자랑하는 저의 엉뚱함을 응원합니다. 완벽하고 반듯하고 꼼꼼한 교사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이런 너도 쓰임이 있을 거라며 제 자신을 응원합니다.
(선생 역할이 가르치는 거 아니에요? 네 맞아요. 틀린 말은 아니죠. 어린 동료의 거친 말은 그 안에 담긴 오랜 서사와 진심을 들여다보며 천천히 파악하기. 섣불리 반응하지 않는 지혜와 너그러움을 배우기.
두루 부족해서, 부족한 것을 곧잘 인정하며, 그것을 고치고 싶어하는 내 자신을 갸륵하게 여기기. 나 역시 나만의 속도가 있으니 나 스스로를 믿고 지켜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