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J 어머님이시죠? 저 학교 국어교사예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잠깐 통화 가능하세요?
어머니, 전화 드리기까지 고민을 좀 했어요. 그런데 자꾸 마음이 쓰이고 걱정이 되어서요. J가 최근에 수업 태도가 많이 안 좋아졌거든요. 비디오도 항상 꺼놓고, 활동에도 거의 참여를 안 했어요. 비디오 켜라고 말해도 그때뿐이고, 금세 다시 꺼버리더라구요. 과제를 안 하는 경우도 많고요. 그때그때 달래도 보고, 나무라기도 하고, 어떤 날은 과제 안 하면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겠다고도 했는데 꿈쩍 않더라구요. 걱정이 돼서 따로 채팅을 보내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봐도 답도 없고요. 그동안 봐오던 J의 모습이 아니에요. 너무 달라졌어요.
J는 성실하고 태도가 좋은 아이예요. 그동안 쭉 잘해 왔고요. 1반 과제 검사를 할 때 J 차례가 되면 이름만 보고도 ‘열심히 했겠지, 잘했겠지’ 신뢰가 가던 그런 학생이거든요. 그런데 지난 두어 달 정도 눈에 띄게 태도가 달라졌어요. 어떨 땐 조금 무례하다 싶을 만큼요. 그래서 계속 신경이 쓰이고 걱정이 됐어요. 다른 과목 선생님들께도 여쭤봤는데 다들 비슷하게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어머니, 혹시 J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아,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군요. 그럼 다행이네요. 그럼 저희가 모르는 고민이나 생각의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어요. 혹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는지 슬쩍 대화도 해보시고, 생활도 주의 깊게 관찰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어쩌면 단순히 지쳐서 그럴 수도 있어요. 친구도 마음껏 못 만나고,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지칠 때도 됐죠. 다행히 방학을 했으니 휴식도 취하고, 부모님께서 좀 더 챙겨주시면 곧 회복할 수 있을 거예요. 사실 무슨 변화가 생겨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나이죠. 그럴 때이기는 하잖아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또 혹시나 절대 혼내시지는 마세요.
저는 집에서 일어난 일을 모르고, 부모님께서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르시니 전화드린 것뿐이에요. 무슨 일이 있으면 지금 J가 힘들어 하는 것 같으니 더 보살펴 주시라는 뜻이었고, 아무 일도 없었으면 저희가 모르는 일로 마음에 변화가 생겼을 수도 있으니 살펴봐 주시라는 뜻에서 전화드린 거예요. 사실 담임도 아니고, 학기도 끝나서 말씀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기는 했는데요, 아무래도 내내 마음이 쓰일 것 같아서 전화드렸습니다. 어쨌든 J에게 무슨 일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다면 부모님이 알고 계셔야 챙겨줄 수 있을 테니까요.
네, 저도 감사드립니다. 말씀드리고 나니 마음이 좀 놓이네요. 네네, 안녕히 계세요.
통화를 하는 동안 어머니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편안해 보였다. 그리고 연신 웃으시며 전화를 해줘서 감사하다고 하셨다. 다행이다. 교사로서 학생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전해야 할 때면 생각만 해도 마음이 무겁다. 더구나 전화 통화라면 오해나 곡해가 생기기도 쉬워서 더 부담스럽다. 그런데 어머니의 목소리나 말투를 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내 생각과 마음이 배달 사고 없이 무사히 배송된 것 같다. 참 다행이다.
학부모와 교사만큼 어려운 사이가 또 있을까. 이상적으로는 양쪽 모두 아이의 성장과 행복을 바라는 사람들이니 최고의 파트너이자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참으로 미묘하고 복잡해서 형언하기 힘들고, 솔직히 말하자면 내게 학부모는 공적 시부모님처럼 느껴진다. 뭘 해도 어딘지 불편하고 어쩐지 어려우니 그럴 수밖에. 학부모 입장도 마찬가지다. 마치 어려운 부탁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늘 마음이 불편하다.(두 아이의 학부모이기도 한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단순히 ‘어려워서’ ‘부담스러운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좀 더 복잡해서 서로가 상대를 갑, 스스로를 을이라고 생각하며 불만과 거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학부모가 무례하게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반말을 섞어가며 격의 없이 대하거나, 은연중에 나를 평가할 때면 ‘그래, 학부모가 갑이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교사는 학생보다 더 우위에 있는 존재처럼 여겨지고, 평가권을 쥐고 있으니 ‘부족한 아이를 맡겨 놓았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자신을 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교사로서 학부모에게 전화를 할 때도, 학부모로서 교사에게 전화를 할 때도 언제나 가슴이 두방망이질하는 것을 느낀다. 참, 아이러니하고, 웃프다.
방학을 하던 날, 집에 돌아와 핸드폰을 확인하니 동료 선생님에게 톡이 와 있었다. 우리반 E의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으니 연락해 보라는 내용이었다. 무슨 일일까, 학부모가 연락을 해오면 걱정부터 앞선다. 엄마가 중요한 통화를 해야 하니 조용히 하라며 우리 집 아이들에게 단단히 일러놓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E의 어머니는 그동안 E랑 지내면서 얼마나 힘들었느냐, 고생 많았다,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깜짝 놀라며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그런 말씀 마시라고 했다. 사실은 힘들었지만 말이다. E는 우리 반에서 독보적으로 다사다난한 아이였고, 상상 밖의 사건을 일으켜서 학교가 뒤집혔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네, 힘들기는 했어요.”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까. 오히려 장점을 부각하며 잘 지낼 거다, 잘할 수 있을 거다, 걱정 마시라, 사실 아이들 다 비슷하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내 아이가 더 부족해 보이는 거다, 다른 집 어머니들도 고만고만하게 다들 어려움을 겪고 계신다, 그럴 때 아니냐, 시간이 해결해 줄 거다, 저희는 믿고 기다리면 된다 등의 이야기만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며 민원 전화는 아니구나, 다행이다 생각했다. 그러나 뒤이어 이어지는 어머니의 한 마디. “선생님, 2학년 반편성 했나요? E가 S랑 같은 반 안 되게 부탁드려요.” ‘아, 이것 때문에 전화하셨구나, 그렇구나.’
E의 어머니와 반 편성에 관해 한참을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사이 내 마음은 두근거렸다가 안심했다가 곤란해졌다. 의견을 충분히 전달하겠다. 최대한 반영하겠다라고 말씀드렸지만 어머니는 100퍼센트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셨다. 그러나 그건 내 권한이 아닐 뿐더러 묵묵히 결과를 받아들이는 다른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역차별이기 때문에 감히 확답을 드릴 수는 없었다. 이 모든 과정이 편치 않았다. 그것은 학부모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교사인 나보다 더 불편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고 받았을 것이다.
지난해의 일이었다. 학년 초에 학부모들로부터 ‘특별히 신경 쓰고 배려해야 할 부분, 자녀 교육에 중점을 두는 부분, 자녀에 대해 자랑하고 싶은 것, 담임교사에게 바라는 점 등’을 적은 기초 조사서를 받았는데 유독 눈에 띄는 한 장이 있었다. 바르고 따뜻한 교육관, 자녀에 대한 사랑과 감사가 그대로 느껴지는 글이었다. 교사로서 감동했고, 학부모로서 나를 돌아보게 하는 글이었다. 학부모 총회가 있던 날 그 어머님께서 참석을 하셨다. 공식적인 행사가 끝난 후 어머니께 “어머니, 어쩜 그렇게 아이를 사랑하세요?”하고 여쭈었더니 갑자기 말없이 눈물을 주르륵 흘리신다. 그러고는 “어머 죄송해요. 제가 이렇게 주책이에요.” 하신다. 그 모습에 나도 눈물을 글썽이며 “어머니 저도 그래요, 저도 잘 울어요.” 하며 웃었다. 더 바라는 게 없다고, 그냥 존재 자체로 감사하다고 하셨다.
오래전의 일이다. 우리 반 아이가 야간자율학습을 빠지고 친구와 나가서 놀고 들어왔다. 나보다 키가 한 뼘쯤은 더 큰 고2 아이들과 힘겨루기를 하던 초임 교사였던 나는 아이에게 반성을 강요했다. 그러나 아이의 태도는 뻣뻣하기만 했다. 참 순하고 착하고 반듯한 아이였는데 그렇게 나오니 적잖이 당황스러웠고, 아이가 미웠다. 학부모에게 전화를 해서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 Y의 태도가 이렇다, 집에서도 지도 부탁한다’ 하고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그때 전화기 너머에서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 마디.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 Y가 나쁜 아이인 것 같네요.”
아직도 그날의 통화를 기억하는 것을 보면 그때 어머니의 말씀이 마음에 걸렸었나 보다. 그러나 그 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기억 저편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런데 육아휴직을 하고 첫째를 돌보던 때에, 사랑스러움과 버거움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며 엄마라는 자리를 익혀가던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울음이 툭 터져 나왔다.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 Y가 나쁜 아이인 것 같네요.”라는 말이 갑자기 튀어나와 새삼 아프게 박혔다. 아, 이게 엄마 마음이구나. 나는 그때 학생의 마음도 어머니의 마음도 전혀 헤아리지 못했구나. 그래서 아이는 그렇게 뻣뻣했고, 어머니는 조용히 우셨던 거구나. 내가 잘못했구나, 밀리기 싫어서 잔뜩 날을 세우느라 무엇이 중요한지 몰랐구나.
교사로서 학생과 학부모가 어렵고 불편한 것은 여전하지만 어떻게 대해야 할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내가 부모가 되어서인지, 경험이 쌓여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수많은 눈물로부터 배웠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해 보인다. 아이를 사랑하고 염려하는 마음을 읽어드리고, 나 역시도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전해드리면 대체로 문제없이 대화가 이루어진다. 웃으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여러모로 이유를 생각해 보고, 아무리 방법을 궁리해봐도 교사와 학부모가 편해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꼭 편해져야 할까, 일로 만난 사이이니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 조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협력을 해야만 아이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교사를 믿으며 예의를 갖추는 학부모가 되어야겠다고, 학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며, 학생을 사랑하는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히 아이를 사랑하기로.
(오해 주의)
여기서 ‘충실히’는 자신의 역량만큼입니다. 제 교직 목표는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자’이지 다른 큰 뜻은 전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