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리의 삶
해파리에 대해 찾아보니 ‘헤엄치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수면을 떠돌며 생활한다’고 나와 있었다. 어쩐지 울컥했다. 헤엄치는 힘이 약하면 수면을 떠돌며 살면 된다. 죽어버리는 게 아니라.
나는 해파리를 좋아한다. 고등학생 때 위의 글을 보고 좋아하게 되었다. 처음 이 글을 발견했을 때 나도 마찬가지로 울컥했다. 늘 제자리에 멈춘 채 가만히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내 삶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늘 경쟁하며 빠르게 성장해야 하고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초조함을 느끼게 되는 세상에서 이런 말은 분명 필요했다. 누군가 해주지 않는 말을 우리는 늘 스스로 찾고 해주어야 하니까. 그래, 흘러가는 삶도 괜찮구나. 해파리처럼 그저 둥둥 떠서 수면을 떠돌아도 충분히 좋은 여정이 될 수 있다고 되뇌었다.
그래서 나는 영화도 이런 종류를 좋아했다.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소공녀>, <리틀 포레스트>는 내 인생 영화에 속한다. 평범함의 미학을 보여주는 영화. 떠돌이 삶도 지난하지만 생각보다 괜찮다는 것을 말해주는 작품. 남들보다 유난히 길게 방황하긴 하지만 결국에는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이 있을 자리를 찾게 되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나는 잔잔한 위로를 주는 이 영화들을 사랑했다.
그러나 앞선 생각에 다시 의문을 던지게 되었다. 얼마 전 상담에서 나눴던 대화 때문이었다. 나는 상담 선생님께 ‘늘 중요한 시기에 뭔가를 그만두기만 해 봐서 끈기도 없는 것 같고 내가 뭘 잘하는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대답했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서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네요. 항해를 해야 하는데 손에 지도도 없고 나침반도 없고. 아무것도 없이 그저 망망대해에 뚝 떨어진 것처럼요.”
이어서 말했다.
“삶이 참 막막했겠어요.”
몇 초 안 되는 짧은 순간에 해파리가 생각났다. 나는 막막한 삶을 살고 있었구나. 그제야 늘 위안으로 삼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절망을 느끼던 내가 생각났다. 영화여서 아름다울 수 있는 이야기. 내 일상과 비슷해 보이는 것에 위로받지만, 한편으로는 절대 닮을 수 없는 판타지라고 여겼던 지난 시간을 곱씹었다. 그러고 보니 닌텐도 게임인 동물의 숲에서도 해파리는 둥둥 떠다닌다고 하기엔 조금 빠른 속도로 헤엄치곤 했다. 어쩐지 맥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힘이 약하다고 해서 내가 헤엄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의심도 해보았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해파리도 내가 보고 싶은 면만 줄곧 믿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해파리를 좋아한다. 어떻게든 내게 주어진 것들을 긍정해 가며 열심히 둥둥 떠 있기라도 하려고 애썼구나 싶어서. 다른 건 몰라도 도저히 그 시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론 부정할 필요도 없다. 그저 한동안 다른 것을 떠올리지 못한 시간일 뿐이니까. 또 수영에서도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숨 쉬고 물에 뜨는 방법이지 않은가. 돌고 돌아 제자리일지언정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삶도, 숨 붙이며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전히 믿는다.
p.s 가끔은 내가 오랫동안 믿어왔던 것을 전부 의심하며 아주 좁고 작은 나의 세상을 마주하게 되는 시간이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