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드라마 <수박> 감상 에세이
일본 드라마 <수박>을 보았다. 여름을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여름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쨍쨍한 햇빛에 비치는 초록 잎과 시원한 냇가에 담긴 수박의 풍경이 보이고 매미소리가 배경음으로 들린다. 오랜만에 발견한 소박한 일상을 담은 이 드라마는 1화를 볼 때부터 느낌이 좋았다. 분명 좋은 이야기를 담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껴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다 보는 데 2개월이 걸렸다.
<수박>은 주인공 모토코가 해피니스 산챠라는 하숙집에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모토코는 34살이 넘도록 엄마의 밑에서 무언가를 스스로 선택하기보다는 수동적인 삶을 살아온 인물로 그려진다. 하숙집에 머물게 된 것부터 충동적인 선택이었으므로 해피니스 산챠가 자신이 있을 곳이 맞는지 고민하게 된다. 메뉴를 연구하고 만들어주는 집주인 유카, 잘 풀리는 것 같지는 않지만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만화가 키즈나, 교수로서의 철학이 확고한 나츠코의 모습을 보면 그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해피니스 산챠에선 매일 함께 모여 아침저녁마다 식사를 한다. 버려진 음식부터 시작해서 선물로 받은 송이버섯이나 수박, 두부 등을 나눠먹기도 한다. 모토코는 늘 똑같고 지루한 생활을 하던 전과 달리 매일같이 황당한 일과 마주하면서도 점차 하숙 생활에 적응해 나간다.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네 명의 단란한 식사를 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매 화마다 반복되는 식사 장면은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평화로운 일상이 계속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무언가의 끝에 대해 이야기한다. 20년 후 아마겟돈이 세상을 멸망시킬 거라는 예언이나 행성이 충돌하는 꿈을 꾸게 된다. 또 하숙집이라는 공간도 줄곧 똑같은 사람과 같이 산다는 보장이 없는 곳이다. 애초에 이별을 전제하고 있는 장소인 것이다. 따라서 분명 활기찬 여름의 배경에서 진행되지만 한 회가 끝나갈 때면 서글픈 마음이 든다. 쨍쨍한 햇살보다도 저물어가는 저녁노을을 닮아있다. 이들은 함께 살아가는 동시에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피니스 산챠에 머무는 사람들은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것을 점차 성숙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인물들은 모여 살면서도 저마다 만남과 헤어짐의 인연을 반복한다. 그게 사람일 때도 있고 고양이와의 이별일 때도 있다. 또 대부분의 이별은 갑작스럽게, 내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이들은 헤어지는 것을 무척 아쉬워하면서도 붙잡지 않는다. 붙잡을 수 없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린다고 해도 그저 잘 지내라는 인사를 건넨다. 그것이 상대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을 응원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남은 사람의 역할은 그저 어디에서든 잘 지내고 있길 바라며 다시 돌아올 곳이 되어주는 것뿐이다.
물론 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서 끝과 이별의 순간에 무던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웃으면서 보내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눈물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수박>에서는 하숙집 주인 유카가 본인이 울면 떠나는 이도 마음이 무거울 거라며 걱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카즈나는 오히려 “억지로 웃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준다.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게끔 말이다. 어딘가 미묘해도 시원하게 울고 끝은 후련하게 웃으며 보내주는 것. 그것이 이 하숙집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선택한 이별의 방식이다.
결국 우리는 유한한 삶 속에서 어쩌면 최대한 많이 울고 웃기 위해서 태어난 것은 아닐까?
<수박>은 그런 삶의 순간들을 여름 햇살처럼 따뜻하다 못해 뜨겁고 잔잔하게 그려낸, 끝에 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