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란 사전적으로 ‘지식을 가르치는 직업'이다. 하지만 막상 선생이 되고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다고 했던 가요 <가시나무>가 떠오른다. 선생이란 직업 안에는 너무나도 많은 서브 직업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옷을 바꿔 입으며 하루에도 몇 번이고 탈바꿈을 한다. 문학, 수학, 과학뿐만 아니라 예체능까지 두루 가르칠 수 있는 만능 선생님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1교시에는 수학자가 되어 피타고라스 정리를 가르치고, 2교시에는 과학자가 되어 아르테미스의 유레카 일화와 함께 실험에 들어간다. 곧 3교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문학자의 옷을 입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를 읽으며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철학적인 토론을 벌인다. 숨을 한번 돌리고 나니 체육 시간이다. 호루라기를 삑삑 불어가며 달리기 코칭을 한다. 으쌰 으쌰.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손을 더 크게 움직여!’ 다음 세대 우사인 볼트를 양성하는 것 마냥 학생들이 더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도록 목청 높여 응원한다. 열심히 땀을 빼고 나면 이제는 감독이 되어 드라마 제작에 들어갈 시간이다. 배우로 변신한 학생들이 서서히 자리를 잡는다. 내 사인과 동시에 배경음악이 흘러나오고 세팅 준비가 끝나면 크게 외친다. 쓰리, 투, 원.. 레디, 액션!
하루가 끝나면 녹초가 되는 이유가 다 있다.
약간 과장해서 내 일과를 적어봤지만 중학교 선생님이 전공과목 외에 여러 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학교마다 시스템이 조금씩은 다르지만 지금 있는 학교는 음악과 불어 빼고 내가 다 가르쳐야 해서 처음에 적응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중 제일 자신 없었던 과목이 바로 체육이었다. 초등학교 때 100미터 달리기를 19초에 달리는 기염을 토하고, 뜀틀 넘기 할 때마다 중간에 철퍼덕 걸터앉아 화끈거리는 얼굴을 가려야 했던 나였다. 운동 신경이 제로에 가깝다 보니 나와 스포츠는 물과 기름 같은 사이였다. 그런 내가 체육 선생님?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던 체육에 문외한이 어찌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말입니까! 못하겠다며 이건 내 전공과목도 아니라고 항의하고 싶었지만 새내기 선생님은 가릴 입장이 아니다. 닥치는 대로 일단 해봐야 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다행히도 기간제 선생으로 일할 때 동료 선생님이 체육을 전공한 분이라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그분은 학생을 가르치듯이 나를 지도해 주셨다. 덕분에 체육의 ‘ㅊ'만 들어도 두려움만 가득했던 내가 놀랍게도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숨쉬기 운동 외에 처음으로 배구, 농구, 육상에 도전해 본 것이다. 체육 초짜라 학생들을 볼 면목이 없어서 시작한 트레이닝에 조금씩 재미가 붙어서 처음에는 5분밖에 달리지 못했던 내가 30분을 달릴 수 있게 됐다. 운동이라면 무조건 멀리했던 내가 달리고 있다니. 장족의 발전이었다.
나름 타이틀이 체육 선생님이라 시에서 열리는 육상대회에 학생들을 데리고 나가기도 했다. 토너먼트를 할 때마다 순위권 안에 들어가는 학생들을 보면서 얼마나 큰 희열을 느꼈는지 모른다. 내가 맡았던 100m 릴레이 팀이 시 파이널리스트가 됐을 때 그 기쁨이란! 이래서 스포츠를 하는 거구나. 아이들 실력이 워낙 뛰어나서 좋은 성적을 낸 것이었지만 나와 함께 했던 트레이닝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 같아 참 뿌듯했다. 학생들도 자기 실력이 향상이 되니 그때부터 나를 체육 선생님으로 인정해 주는 듯했다.
때때로 인생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Never say never! 9학년 이후로 운동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내가 체육 선생님이 되고 심지어 즐기면서 가르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선생이라는 직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운동의 세계가 썩 싫지많은 않다.
간접적으로 체험한 직업은 비단 체육뿐만이 아니었다. 연극 수업을 해야하는 ‘드라마’ 과목을 가르치면서 감독이라는 또 다른 서브 직업을 경험하게 됐다.
듣기만 해도 참 생소한 과목, 드라마. 처음에는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연기를 하거나 지도를 해본 적도 없고, 대본을 쓰거나 각색을 해 본적은 내 인생에 단 한. 번. 도 없는데 대체 뭘 어떻게 가르쳐야 한다는 말인가. 결국 선생님의 제일 친한 친구인 유튜브와 구글에 ‘재밌는 중학생 드라마 액티비티’를 폭풍 검색했다. 정보의 바다에서 얼마간 헤맨 뒤, 쓸만한 레슨 찾았고 그것을 재구성해서 과제로 만들었다.
상황 설정만 해주고 아이들에게 대본을 쓰라고 했다. 대본이 준비되고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가면 나의 어설픈 디렉팅이 시작된다. 때로는 내가 연기 시범을 보이기도 한다. 가끔 봤던 한국 드라마가 여기서 빛을 발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동작을 더 크게! 여기서는 감정을 더 넣어서! 좋아, 그 감정을 유지해. 굿… 굿… 컷!” 캬~ 감독들이 외치는 ‘컷!’의 짜릿함이 이런 것인가.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막상 또 시작하니 정말 감독이 된 것 마냥 내가 더 신나서 디렉팅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더니 한 학생은 나보고 왜 감독이 되지 않았냐고 묻기도 했다.
학생들은 처음 하는 연기가 어색한지 하기 싫다며 몸을 꽈배기처럼 비비 꼬거나 수줍어한다. 그럴 때는 치어리더가 돼서 잘하고 있다고 엄청 칭찬을 해준다. 그러면 자기의 껍데기를 부수고 조금씩 새로운 연기를 시도한다. 때론 대본이 써지지 않는다며 때려치우겠다고 화를 내고, 그룹에 있는 애가 자기 말을 안 듣는다며 고자질을 하기도 한다. 학생들을 겨우겨우 어르고 달래서 연습을 시키고 있노라면 카운슬러가 된 것만 같다. 휴, 대체 몇 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거냐. 그렇게 울고 웃으며 우여곡절 끝에 최종 리허설을 마치면 대망의 발표날이다.
탁! 슬레이트 소리와 함께 연극이 막을 올린다. 처음 맞이하는 연극다운 분위기에 쭈뼛쭈뼛하던 아이들도 나름 최선을 다해 진지하게 임한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씬. 정적이 흐르고, 분노의 눈빛으로 서로를 째려보는 순간, 서부영화를 대표하는 피리 음악이 흘러나온다.
“띠리리~ 띠 리리~”
서투른 분노 연기에 관객석에서는 까르르 박장대소가 터진다. 하지만 연습을 통해 단련된 배우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드디어 클라이맥스인 박싱 씬이 나오고 두 원수는 마지막 매치를 벌인다. 어퍼컷, 언더컷, 사이드 킥! 퍽, 퍽, 으.. 윽.. 찰떡같은 음향효과가 분위기를 한껏 더 끌어올린다. 오랜 원수를 무너뜨리고 챔피언이 된 주인공은 영화 <록키>의 주제곡과 함께 승리의 환호를 날린다. 성황리에 짧은 연극은 막을 내리고 엔딩 크레딧과 함께 박수소리가 클래스를 가득 채운다. 학생들의 반응도 폭발적이다.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드라마는 저얼대~! 네버~! 거들떠보지도 않겠다고 선포했던 아이들이 제일 즐거워한다. 그러면 나는 뒤에서 조용히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잠시였지만 연극을 연출하는 일은 주요 과목을 가르칠 때 느끼는 보람과는 차원이 달랐다. 내 안에 연출자의 피가 흐르는 것일까? 아님 이것은 새로운 배움을 얻었을 때 느끼는 기쁨일까? 이 일을 계기로 드라마, 또는 연출에 더 관심이 간 것은 사실이다. 창작자의 입장으로 다음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재미 또한 알게 되었다.
선생님, 체육인, 연출자.
내 자아의 울타리가 매년 더 넓혀지고 있다. 내 속의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과정. 피하고 싶었던 예체능 과목에서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양파처럼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새로운 면을 알아가는 것이 선생이라는 직업 같다. 의외인 곳에서 마주치는 생소한 ‘나'는 오묘하고도 신비한 방향으로 내 삶을 더 윤택하게 이끌고 간다.
요새 부캐가 유행이라는데 이 직업 덕분에 본의 아니게 참 여러 부캐를 만들어 가고 있다. 앞으로는 어떤 서브 직업을 경험하게 될까? 미술가? 음악가? 프로그래머? 이 길의 끝에 나의 ‘부캐 유니버스’는 어느 정도 확장되어 있을지 몹시 궁금해진다. 오늘은 어떤 부캐로 변장해 아이들 앞에 서게 될지 사뭇 기대를 하며 다시 전쟁 속에 뛰어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