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ylvia Apr 19. 2021

네 마음에도 봄이 왔으면 좋겠어

나를 바꾼 학생의 이야기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선생님이지만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매일같이 느낀다. 내가 그들에게 가르치는 것보다 배우는 게 훨씬 많다는 것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아이들에게 배울게 뭐가 있냐며 누군가는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깊은 호수처럼 반짝반짝 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은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창문이 되기도 했다가 나 자신을 좀 더 솔직하게 볼 수 있는 거울이 되어 주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우주를 뒤 흔드는 거대한 행성처럼 내 세계를 180도 바꿔 놓기도 한다. 몇년 전 만난 이 학생 처럼 말이다. 


조그마한 체구, 뽀얀 하얀 얼굴에 수놓은 듯한 주근깨, 검은색 짧은 머리.


새롭게 맡은 6학년 반에 있던 한국인 2세 학생이었다. 아이들에게 간단한 소개를 하며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유난히 더 관심을 표현했고 아주 밝게 인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이 반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 학생의 자자한 명성에 대해 익히 들어 겁이 나긴 했다. 두 달 만에 내가 세 번째로 들어간 선생님이었다면 이해가 되려나. 하지만 새내기던 나는 경력을 쌓아야 했기 때문에 이 제안을 받고 바로 수락을 했다. 결코 쉬운 한해는 아니었지만 결론적으로 여기서 보낸 일년이 다른 학교에서 5년쯤은 걸렸을 경력을 쌓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가득 찬 마음을 가지고 첫날 수업을 시작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학생은 내 말을 잘 따라주었다. 들었던 얘기와는 다르게 차분한 아이를 보면서 소문은 소문일 뿐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래보다 작은 체구의 아이가 그런 무시무시한 명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다. 괜히 지레 겁먹은 내가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했고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게 학생을 가르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생각에 은근 뿌듯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착각은 자유라고 했던가.


그 다음날부터 청개구리 실사판이 내 눈 바로 앞에 펼쳐쳤다. 앉으라면 일어서고 일어서라면 앉고, 조용히 하라면 떠들고 발표하라고 하면 욕을 하고, 이리 오라고 하면 저리 가 있고 저리 가라고 하면 내 옆에서 나와 학생들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젊은 한국 여선생이라 나를 더 얕잡아 보는 것 같았다.

몇 주 후, 반에 있던 어떤 여자아이와 약간의 말다툼이 있었는데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이 풀리지 않자 화가 났었는지 집에 가기 전에 다시 돌아와 나한테 할 말이 있다며 말을 꺼냈다.


"선생님, 그 여자아이 좀 더 심하게 처벌하세요. 걔는 집에서 오냐오냐 자라서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고요."


집에서 오냐오냐키우면 더 심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어디서 나온거지? 갸우뚱 한 마음에 일단 이렇게 대답했다.


"그 얘한테 이미 선생님이 말했으니 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건 이미 끝난일이고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니 이제 집에 가자. 내일 봐. "


하지만 이게 자기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는지 학생이 갑자기 돌변했다. 송곳날 같은 눈을 치켜세우고 나를 노려보며 불같은 입김을 폭풍처럼 뿜어냈다. 순식간에 분노 게이지가 0에서 100 이상을 뚫고 지구 대기층 밖을 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이에요! 걔 벌을 줘야 마땅하다고요! 내일 당장 그렇게 하세요!! 내.일. 당.장! 내 말 들을 거죠? 네? 내 말대로 안 하면 선생님 핸드폰 던져서 부숴버릴 거니 그리 알아요. 그러니 좋게 말할 때 내말 들어요!"


나.. 지금.. 협박 받은 건가? 갑자기 한대 얹어 맞은 강펀치 때문에 내 정신도 안드로메다로 도망 나가는 것을 간신히 부여잡고 차분히 말했다.


"선생님 핸드폰 부시면 네가 물어줘야 하는데.. 그래도 괜찮니? 그럼 그렇게 해."


예상외 반응이었는지 학생은 찬물을 끼얹은 것 모양 불현듯 조용해졌다. 방금 전까지 세상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아이는 조신한 고양이가 되어 요리조리 눈을 돌리며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나 우리 엄마나 핸드폰 물어줄 돈 없는데.. 내가 핸드폰을 부쉈다는 걸 엄마가 알면? 엄마가 엄청 화낼거야.. 오, 안 돼 안 돼. 그래, 선생님 핸드폰은 건드리지 말아야겠다.'


2-3초 짧은 시간 동안 열심히 머리 굴리는 소리가 내 귓가까지 들렸다. 자기도 핸드폰을 부수면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조용한 말투로 나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그럼 핸드폰은 안 부술게요. 대신 그 여자애 내일 당장 처벌하세요!"


그러고는 휙 돌아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 교실을 나갔다.


대체 방금 무슨 일은 겪은 거지? 순식간에 0에서 100까지 휙휙 바뀌는 학생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했고 손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떨고 있었다. ‘이래서 다른 선생님들이 나에게 주의를 줬던 거구나.’ 숨겨놨던 발톱을 드러낸 학생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제발 이것보다 더 큰일이 더 이상 없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그 다음날 교실에 들어섰지만 이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이 학생은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더 심한 수위의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과 심한 인종차별적인 발언,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산처럼 폭발해 의자나 쓰레기통을 던지며 수업 방해는 물론 반 아이들의 안전에도 심한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일삼았다. 타일러 보기도 하고 나도 언성을 높여 선생의 권위를 지키려 할 때도 있었지만 모든 게 다 소용 없었다.


문제 행동을 일으킬 때마다 오피스에 보냈지만 거기선 별다른 처벌이나 방안을 내리지 않았다. 거의 손을 놓다시피 하며 나에게 학생의 문제를 전적으로 전담하는 식이었다. 분명 정학을 당할만한 충분한 문제 행동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학생은 아직도 편안히 학교를 휘저으며 온갖 행패를 부리는 호사를 누렸다.

어느 날은 점심시간 전에 나에게 노란 아시안이라고 부르고 (얘야, 너도 노란 아시안이란다..) 개년이라고까지 욕을 해서 오피스에 보냈더니 고작 점심시간 한 시간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자기들은 충분한 처벌을 했으니 다시 돌려 보낸다고 했다. 오히려 다른 반에 가면 더 큰 문제를 일으키니 그나마 조용히 있는 내 반에 데리고 있으라는 것이었다. 점심시간 후 당당히 내 반으로 돌아오는 학생을 보며 말문이 턱 막혔다.


'대체 나보고 뭘 어떡하라는 거지? 매일같이 이런 말도 안 되는 폭력을 견디고 있는 나는, 그리고 나머지 학생들은 어쩌라는 거야?'


손발이 꽁꽁 묶인것만 같았다. 교장한테 문제를 제기해도, 아이 엄마에게 연락을 드려도 나아지는 게 없었다. 


사실 그 당시 학교 외 내 사생활에서도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기에 이 학생을 감당하기엔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경계선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는 동생 때문에 온 집안이 지뢰밭이 된 상태였고, 더 이상 내 인생을 그렇게 놔둘 수는 없어 막 자립을 시작했을 때였다. 조금씩 거리를 두며 내 선에서 최선을 다해 동생을 도와주려 했지만 쉽진 않았다. 물 한 방울이 톡 하고 떨어지면 금세 넘쳐버릴 정도로 내 감정의 컵은 불안, 걱정,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숨 좀 돌릴만하다 싶으면 계속해서 일이 터졌다. 학생이 조금 괜찮아진다 싶으면 집에서 폭풍우가 몰아쳤고 집이 잠잠하다 싶으면 학교에서 거대한 허리케인이 덮쳤다. 학교 상황은 점점 더 나빠져 학생의 협박은 말로만 끝나지 않았다. 어느 하루는 자기가 원하는 데로 하지 않으면 창밖으로 뛰어내리겠다고 한바탕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온 몸이 아찔해 지는 광경이다. 


이제는 학생의 이런 행동을 보면 머리가 아닌 몸에서 저절로 반응이 일어났다. 평생 걸리지 않았던 후두염에 걸려 2주 동안 말을 못 했고, 머리가 하얗게 백지상태 되는 일이 종종 생겼다. 그런 나를 보는 다른 학생들이 혀를 끌끌 차는 것만 같아 내 자신감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 컴컴한 지하로 추락하고 있었다.

피융피융. 휙휙.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나 혼자 우두커니 서서 사방팔방에서 날라오는 포탄을 매일같이 온몸으로 견뎠다. 최선을 다해 피해봤지만 점점 무력해져갔고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약한 모습을 보는 것이 싫어졌다. 


학생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온 날, 더 이상 앞으로 나갈 힘도 없고 희망이 보이지 않아 나는 결국 백기를 들기로 결정했다. 점점 차오르는 눈물을 겨우 억누르며 그 당시 남친이었던 남편에게 말을 했다.


"나 이 일 그만둘까 봐. 이제 못하겠어. 얘만 생각하면 너무 무섭고 학교 가는 게 두려워. 선생이란 직업은 나랑 안 맞는 것 같아. 그만할래."


침묵을 지키며 듣고 있던 남편이 잠시 생각한 후 입을 열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구나. 얼마나 그랬음 네가 그만둔다고까지 하겠어. 맞아, 넌 최선을 다했어. 그런데 그만두기 전에 한번 네가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천천히 생각해 보면 어떨까? 왜 그 학생이 무서워? 혹시 그 학생의 행동 때문에 동생이 생각나서 그런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그 학생은 네 동생이 아니야."


"그건 나도 알아."


"No, Listen. 그 학생은 네 동생이 아니야. 내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그 학생은 네 동생이 아니야."


"...?"


"그 학생의 행동이 동생을 생각나게 하는 것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그 둘의 행동이 너무 비슷하다 보니까 자꾸 옛날 생각이 나서 더 두려운 것일지도 몰라. 하지만 학생과 동생을 동일시하지 마. 둘은 다른 존재야. 그만두기 전에 너를 위해 한번만이라도 천천히 네 마음 상태를 읽고 그 두려움이 어디서 오는지 봐봐."


처음에는 남편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동생과 학생이 다르다는 건 나도 안다고. 하지만 남친의 지속적인 관심과 대화를 통해 내가 느끼는 감정을 조금 더 솔직하고 객관적으로 보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명상을 통한 마음수련을 시작하니 나를 지배하고 있던 두려움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학생이 동생과 나 사이에 일어났던 과거 트라우마를 자꾸 상기시킨 다는 것이었다. 트라우마 속에 있던 나는 학생을 대할 때 마다 저절로 몸이 굳었고 당연히 문제행동을 효율적으로 대할 수 없었다. 문제의 원인을 알고 나니 비로소 학생과 동생을 분리시킬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내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감정과 감정 사이에 거리를 두며 제3자의 입장에 서서 내가 느끼는 것들을 솔직하게 인식하고 인정했다. 조금씩 수련을 하니 나를 삼킬듯한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던 두려움이 안개처럼 걷혀지는 것 같았다. 그 당시 동료 베테랑 선생님들의 진심 어린 공감도 너덜너덜 해진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데 한몫했다. 조금씩 회복된 마음은 그전에는 없던 여유를 선사했고, 이것은 학생이 폭탄처럼 던지는 폭행에 더 이상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게 도와주었다. 예전처럼 총알이 날라와도 당황하지 않았다. 매트릭스에서 몸을 90도 뒤로 젖히며 멋지게 총알을 피하는 키아누 리브스가 된 기분이었다. 피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피할 수 있는 총알탄. 비록 그처럼 멋지게 피하진 못하더라도 속수무책으로 넘어지지 않았고, 혼자 총알을 다 맞아내고 있는 느낌이 들지도 않았다. 나의 내면이 강해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학생이 변하기 시작했다. 나의 차분함이 그에게도 전달이 된 듯했다. 미세한 발전이었지만 다른 학생을 괴롭히는 수가 줄기 시작했고, 수업 시간에 떠들고 돌아다니는 시간보다 앉아서 집중하는 시간이 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0분으로 시작했던 게 시간이 지날수록 15분, 20분으로 늘더니 학기 말 즈음 돼서는 큰 문제 없이 수업에 집중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작은 변화는 그전엔 볼 수 없었던 평온함을 우리 교실에 부여했고,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학생과 나 모두 침착한 상태로 학기를 마칠 수 있었다. 학기 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불가능한 모습이었다. 


학기 마지막 날 가졌던 community circle에서 그 학생이 반 아이들에게 말했다. 일 년 동안 자기의 행동 때문에 힘들게 해서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고. 많은 학교를 전학 다녔지만 이 학교가 베스트라는 말과 함께 눈물을 글썽이는데 그 말을 듣는 나도 마음이 뭉클했다. 아이들에게도 그 학생의 진심이 전해지는 듯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좋은 방향으로 변한 학생의 모습이 자랑스러웠고,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단 생각에 위안을 얻었다. 그렇게 우리 둘다 처음 시작했을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으로 학기를 마쳤다. 


내가 만약 그 학생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좋아하는 일터를 하루아침에 전쟁터로 바꾸어 버린 학생이 솔직히 밉기도 했었고 피하고 싶었지만 그와 함께 한 1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중요한 레슨을 배웠다.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스텝이라는 것. 물에 빠진 자가 다른 물에 빠진 자를 구할 수 없듯이 내가 나를 먼저 돌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물론 남편의 도움이 컸지만 그때 이 학생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동생으로 인해 받았던 마음의 상처나 부정적인 감정들 더 오랫동안 내 마음 보이지 않는 곳에 가두어두었을지도 모른다. 마음수련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테고 인생이 내 앞에 던져놓는 도전장을 덤덤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얻지도 못했을 것이다. 고통스러운 날들이었지만 그 시간을 통해서 생각지도 못했던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있게 해준 그 학생이 이젠 밉지 않다. 오히려 그 어린 나이에 그렇게 밖에 행동 할 수 없었던 그 아이의 환경이 안쓰럽고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이 이후로 몇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아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다른 학교로 전임을 간 후 얼마 뒤, 같이 일했던 선생님으로부터 그 학생 소식을 들었다. 세 명의 다른 학생들과 함께 특정 한 아이를 지목해 병원에 갈 정도로 구타해서 결국 퇴학을 당했다는 얘기었다. 생각지도 못한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그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앞으로도 종종 이 학생이 생각 날 것이다. 잊혀질 만 할 때쯤 내 마음 한 곳에서 손을 흔들고 있을테지. 그럴 때 마다 그 아이의 마음에는 봄이 왔는지 궁금할 것 같다. 매섭게 부는 겨울바람이 그의 마음을 얼게 하지 않길 기도해 줘야겠다. 따스한 온기가 들어올 만큼만의 마음의 문은 열어 놓길 바라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