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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lvia Jul 28. 2021

저는 아기 때 사진이 없어요

난민에 대한 오해와 편견

온라인 수업의 끝을 달리고 있던 학기 말, 졸업앨범을 만들기 위해 학생들에게 어릴 적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앨범에 “이 사람은 누굴까요?”라는 섹션에 올라갈 사진이었다. 친구들의 아기 때 모습을 볼 생각에 학생들은 들뜬 마음으로 하나둘씩 사진을 보내왔다. 데드라인까지 사진을 제출하지 않은 명단을 아침 조회시간에 부르던 중 ESL 학생 (English as a Second Language:영어를 제2 국어로 배우는 학생) 한 명이 짧은 영어로 말했다. 


“Ms.Moon. I don’t have.” 


처음에는 혹시 내가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과 어떻게 아기 사진이 없을 수 있냐는 의구심에, 다시 한번 느리고 또렷하게 얘기했다. “베-이-비-포-토- 보내줘.” 그러니 그는 거듭 강조해서 대답했다. “선생님, 저는 베이비 포토 없어요.”


온라인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나머지 학생들의 당혹함이 느껴졌다. 어설픈 정적을 깨고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그에게 괜찮다고 한 뒤 다음 토픽으로 대화를 바꾸었지만 그의 짧은 “아이 돈 해브”는 그날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왜 아기 때 사진이 없는 걸까?






이 학생의 가족은 시리아에서 왔다. 시리아 내전 발발 시 레바논으로 피난을 가야 했던 가족이다. 몇 년 전 미디어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시리아 난민 수요에 대해 보도할 때 크게 느낀 바는 없었다. 뉴스를 통해 참혹한 피난 이야기를 접하노라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캐나다에서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할 무렵에는 국민들의 찬반론이 뜨겁게 달아오르기도 했지만 아직도 머나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이미 내 문제로도 복잡한 일상을 더 어지럽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이기적인 마음을 내세워 티비를 끄고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잡다한 것들로 내 머릿속을 채웠다. 



시리아 난민 정착에 관한 이야기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들, 자국민에게 가야 할 자원을 앗아가는 사람들 등등. 잠깐씩 보는 뉴스에서 부정적인 소식밖에 들리지 않으니 무의식 속에 난민에 대해 두려움이 생겼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의 20% (시리아 외에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도 포함) 정도가 난민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적잖이 놀랐다. 미디어에서 봤던 그런 이미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다른 학교에서 가르쳤던 아이들과 별 다를 바 없이 적당히 장난치고 때론 지루한 학교 생활을 견뎌가며 그럭저럭 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평범한 학생들이었다.



조금씩 그들의 백그라운드를 알게 되면서 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며 지도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데 겉보기에는 노력도 안 하고 수업시간에 매일같이 조는 시리아에서 온 학생을 볼 때면 답답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모르면 물어보기라도 해라! 응?” 내가 손길을 내밀기 전까지 매번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있는 학생의 모습에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었다. 될 대로 되라지. 나도 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단다.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장기간 온라인 수업으로 인해 ESL 학생을 지도하기가 더 힘들어진 것도 학생지도를 포기하는데 한몫했다. 



사회 시간 “가족 역사 알아보기" 프로젝트를 하던 중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열심히 가족 인터뷰를 바탕으로 글을 써 나가고 있는데 역시나, 이 학생의 프로젝트는 텅텅 비어있었다. 마음은 또 한 번 뜨거운 솓뚜껑처럼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모르는데 왜 가만히 있니? 네가 가마니야? 어차피 지금 시작해 봤자 제때 못 끝낼 것 같아서 그냥 넘기고 영어 문법 과제나 내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선생의 의무를 다 하지 않는 것 같은 찝찝함이 마음 한 곳에 자리 잡는 것이었다. 양심에 찔려 결국 시도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프로젝트를 학생의 수준에 맞게 수정했다. 학생이 가족을 인터뷰하고 그것을 다시 영어로 쓰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 내가 대신 학생을 인터뷰하는 것으로 방향을 새롭게 잡았다.  



‘참을 인’ 자를 세 번 새기고, 깊은 호흡을 한 후 학생을 따로 불러내어 캐나다에 온 이유와 첫인상을 물으며 인터뷰를 했다. 아무 기대 없이 시작한 것이었는데 학생은 의외로 의욕에 가득 차 아는 영어를 총동원 해 열심히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조금 센시티브 한 질문이 나올 때면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그는 계속하고 싶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학생은 생일이 두 개가 있다고 했다. 원래 생일은 7월 25일인데 그 당시 아빠가 출생 신고할 돈이 없어서 결국 9월 15일이 생일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진짜 생일이 훨씬 더 좋지만 어쩔 수 없다며 멋쩍게 웃는 그. 생각보다 강한 학생이라는 느낌과 아울러 출생 신고할 돈이 없다는 것에 놀라며 괜한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캐나다 학교 와서 좋은 점을 물어보니 오피스가 마음에 든다고 한다. 하고 많은 좋은 점 중에 왜 오피스냐고 물으니 의외의 답이 나왔다. 레바논에 살 때 교무실 선생님들이 굉장히 불친절 했으며 차별을 심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등교했는데 갑자기 교무실에서 자기를 불러 다음 날부터는 오후 수업에 오라고 했단다. 너는 레바논 사람이 아니니까 레바논 학생들과 함께 오전 수업을 참여할 수 없다며 앞으로 오후 3:30 - 7:00까지 학교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학생은 다른 아이들처럼 오전 반을 가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자기는 시리아 피난민이었으니까. 



덤덤하게 말하는 학생과 달리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 대놓고 차별을 하는 곳이 이 세상에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랐고 이내 슬퍼졌다. 그가 왜 아기 때 사진이 없는지 비로소 이해되며 켜켜이 쌓아놓았던 답답함과 오해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를 알 수록 더 겸허 해 질 수밖에 없었다. 그 난리통 속에서 어릴 적 사진을 어떻게 찍었겠으며, 선명하게 차별화된 교육 시스템에서 어찌 좋은 학습 태도를 익힐 수 있었을까. 지금은 캐나다가 너무 좋다며 언젠가 엔지니어의 꿈을 이루겠다는 그에게 앞으로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라고 격려해 주며 인터뷰를 마쳤다. 여기 교육을 통해 조금씩 안정을 찾아서 다행이라는 마음이었지만 그동안 난민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던 나의 무지함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두드리는 자에게 문이 열린다고 했던가. 이렇게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데  이 프로젝트 안 했으면 어쩔 뻔했나.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지도하면 될 것을 너무 쉽게 포기하려고 한건 아니었는지 내심 미안했고, 이 기회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40분 정도 짧은 영어로 오고 간 이야기를 통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그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학생과 대화 후 나에게 물었다. 그동안 나는 영어 실력과 상관없이 그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었나. 수업 시간에 조금 졸았으니 게으르다고 단정 짓지는 않았나. 과연 이 학생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모든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조차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학생의 상황에 대해 편견을 가졌던 나를 반성하며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함부로 단정 짓지 말자고 다짐했다. 나는 오로지 내가 아는 것만 알 뿐이고, 내가 아는 것이 전부도 아니니까. 



난민. 아직도 여러 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주제다. 유럽에 여러 나라들에 비하면 적지만 캐나다에는 약 14% 정도 되는 난민 출신이 살고 있다. (캐나다 정부 웹사이트 참조) 난민을 더 받아들여야 한다 아니다에 찬반론을 주장하고 싶지 않다. 단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나의 의견과 생각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제시해 보고 싶은 것이다. 뉴스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난민들이 범죄를 일으키고 사회 질서를 흩트려 놓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어떤 요소들이 그런 결과를 초래한 것인가. 그들을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양성하기 위해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며 세계시민의 일원으로써 어떤 자세로 바라봐야 할까.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편견 없이 대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다시 고민해 본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를 대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참된 교육이란 무엇이고 누구를 위해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일까. 모두의 목소리를 색안경을 끼지 않고 두루두루 들을 수 있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그것을 위해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답 없는 물음은 메아리가 되어 내 마음에 작은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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