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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lvia Jan 21. 2024

물리 선생님의 행복이론

마음을 울리는 스승님의 따뜻한 한마디 

선생님의 하루는 쉴 틈 없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수업준비, 학생지도, 끝없는 채점, 그 밖에 각종 회의 및 업무를 하고 있다 보면 화장실을 몇 시간씩 못쓰는 건 허다하다. 주말을 반납하며 학교일에 매달리는 건 늘 있는 일이다. 그 와중에 말썽인 학생을 맡는다거나 성난 부모님을 마주해야 할 때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넉다운이 된다. 대체 왜 이 일을 하겠다고 했나. 존재 가치가 흔들린다. 밀리는 업무 속에서 살아보겠다고 허우적거리다 보면 나를 지도해 주셨던 선생님들은 대체 어떻게 하신 건지, 새삼 존경스러워진다. 


그중에 특별히 한 선생님이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물리를 가르친 Dr.Poon. (버클리대학 물리 박사학위를 가지고 계셔서 다른 선생님을 부를 때 쓰는 Mr.이라는 명칭 대신 Dr. 를 쓰셨다.) 160센티 남짓 작은 키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던 중국계 캐네디언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제일 가르치기 어려운 12학년 물리와 수학 담당이었다. 박사학위까지 있으니 다른 물리 선생님들도 어려운 토픽을 가르칠 때 이 선생님에게 조언을 구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소문 때문인지는 몰라도 선생님이 지나간 복도에는 아인슈타인의 발자취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근엄한 표정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올곧은 발걸음에서 과학자의 숨결이 배어 나왔다. 그 어느 누구도 선생님 흠을 잡는 사람이 없었다. 아시안 선생님의 작은 체구에서 모든 학생들의 존경심을 아우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저절로 선생님의 수업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과학 프로그램에 합격했으니, 별 탈 없다면 12학년이 되어 선생님의 물리 수업을 들을 수 있을 터였다. 





나는 딱히 이과 머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성향도 이과랑은 거리가 멀다. 내가 문과 쪽을 훨씬 더 좋아한다는 것은 한참 뒤에 대학원을 다닐 때 알게 되었다. 이과 프로그램이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수학 성적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괜찮았고 영어는 한없이 부족했기에 나에게 남은 선택지를 택한 것뿐이었다. 


문과 머리로 생물, 화학, 특히 물리를 들으려니 뇌세포가 죽어가는 것만 같았다. 이래서 12학년 물리를 들을 수 있을까. 진로를 바꿀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과학을 딱히 싫어하는 것도 아니어서 엉덩이 힘으로 어떻게든 12학년 물리 수업까지 도달했다. 소문대로 선생님은 물리의 달인이었다. 촘촘히 잘 준비된 수업, 논리적으로 정리된 노트, 그에 따른 학습지. 다른 이과계열 선생님을 난처하게 만들던 똑똑한 학생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할 수 있는 능력. 중국어 악센트가 섞인 영어로 수업을 진행했지만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오히려 학생들은 귀를 더 쫑긋 세워 선생님의 말을 경청했다. 대학교 물리를 준비하는 수업이었기에 학생들은 더 진지했고 열을 내었다. 여전히 물리는 나에게 어려운 과목이었지만 베테랑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있으면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세계에 한 걸음 가까워진 것만 같았다. 


날고 기는 학생들에 비해 나의 물리 성적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며 학기말 시험공부 할 때 선생님을 매일 찾아갔다. 시험 전날까지 모르는 것을 묻고 또 물으며 내 머릿속에 어설프게 물리 이론을 정리했다. 보잘것없는 질문을 하는 내가 참 귀찮았을 수도 있을 텐데 선생님은 단 한 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모든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셨다. 선생님과 면담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시험준비를 더 했고, 할 수 있을 만큼 했다고 느꼈을 때 책을 덮고 잠을 청했다. 


그날 밤, 시험장에 늦게 도착하는 꿈을 꾸었다. 시험 직전에 이런 꿈은 꺼림칙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마인드 컨트롤을 잘해야 한다며 오히려 느긋히 엄마가 차려준 아침을 먹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오후에 있는 시험을 위해 상대성 이론을 다시 복습하려던 참이었다. 따르릉. 우렁찬 전화기 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이 시간에 누가 전화를 할까. 엄마가 받더니 학교에서 전화가 왔단다. 혹시 꿈에서 일어난 일이 현실이 되는 걸까. 불길한 마음을 가지고 천천히 수화기를 들었다. 


“실비아, 너 지금 물리 시험 있는데 왜 안 와?” 


“... 네? 지금요?” 


“응. Dr.Poon이 출석체크를 했는데 네가 안 온 게 이상하다고 전화해 보라고 하셨어. 지금 시험 치고 있으니 빨리 와.” 


맙소사.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바로 전 날까지 시험 준비한다며 이것저것 물어보던 녀석이 갑자기 보이지 않으니 선생님이 이상하게 여기셔서 전화를 해보라고 하셨던 거다. 


그 말을 들은 아빠는 노발대발 화가 나셨다. 어떻게 시험 시간을 모를 수가 있냐며 따발총을 터뜨릴 기세였지만 여기서 더 크게 화를 냈다간 망한 시험을 더 망칠 것 같으니 꾹 참으셨다. 이미 도깨비처럼 붉게 변해버린 아빠의 얼굴은 내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는지 말해주고 있었지만.  


한 시간 반짜리 시험에 4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시험장에 들어가니 온 시선은 나에게 향했다. 헝클어진 머리에 잠옷바람으로 사색이 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허겁지겁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텅 빈 머릿속은 자책으로 가득 찼다. 꿈이 주는 암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시험 시간을 한번 더 체크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어떻게 이런 실수를 할 수 있을까. 고개를 푹 숙이고 있으니 선생님이 시험지를 건네주셨다. 나 자신이 그렇게 창피하고 초라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그나마 정리되었던 물리 이론들은 제멋대로 뒤엉켜 흰 시험지 위에서 난리를 쳤다.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아무렇게나 적고 망연자실한 마음으로 시험장을 나섰다. 


결과는 뻔했다. 간신히 패스를 했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물리와는 영원히 이별할 것이라고 다짐했건만 대학에 진학 후 또 물리를 들었다. 생물학과를 택했기에 1학년 물리는 필수 과목 중 하나여서 어쩔 수 없었다. 혹독했던 Dr.Poon의 수업으로 인해 나의 물리 학점은 A+였다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등학교 때 배워서 수업 내용이 생소하지는 않았으나 물리는 물리였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지수였고 이해할 수 없는 블랙홀이었다.  


대학교 첫 학기가 끝나고 선생님을 찾아갔다. 반갑게 맞아주시며 물리는 어떻냐고 물으시는 말에 난 호소하기 시작했다. 


“물리는 도통 이해를 못 하겠어요. 물리는 고통이에요. 고통!”


허허 웃으시더니 이런 말씀을 해 주신다. 


“네가 지금 힘들어야 나중에 커서 뭐가 행복한 것인지 알지. 힘들면 힘들수록 훗 날 네가 느끼는 행복은 더 클 거야. 그러니 지금 열심히 하도록 해.” 


단지 물리공부 열심히 하라는 위로와 격려인 줄 알았는데,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종종 생각이 났다. 힘든 시간이 있어야 행복한 순간에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다. 마음속에 새겨진 이 말은 삶의 숙제가 버겁게 느껴지는 날에 따뜻한 위안이 되었다. 현재 나에게 주어진 고통의 양이 나중에 느낄 행복의 양과 비례할테니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자신에게 주문을 외웠다. 그러고 나면 신기하게도 그 시간이 견딜 만 해졌다. 


어른이 된 후, 어느 책에서 알렉산더 뒤마의 한 글귀를 읽게 되었다. 



There is no real happiness except that of which we are aware 
while experiencing it.
우리가 행복을 경험하고 있다고 알아채는 순간 외에 진정한 행복이란 없다.



피식 웃음이 났다. 이걸 누가 몰라? 


대작가들은 참 실없는 소리를 잘한다며 책을 덮으려는 찰나, Dr.Poon 떠올랐다. 고통의 순간이 없다면 행복의 순간을 알아챌 수 없다는 말. 적당한 결핍과 고통은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요소라는 걸 그때 나에게 말하고 싶어 하셨던 걸까. 행복의 형체는 고통이라는 바탕 위에 그려진 것이라고. 그러니 지금의 고통을 나중의 행복을 위한 거름으로 생각하라고. 


씨앗으로 심어졌던 선생님의 말은 수년 후 프랑스 대작가의 글귀를 만나 늘 푸른 나무가 되었다. 가시 돋친 학부모의 말을 듣거나 학생들이 지겹게 속을 썩일 때면, 난 이곳으로 마음을 가져다 놓는다. 자리를 잡고 나무 그늘 아래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펼친다. 행복의 새싹이 피어오르길 바라면서. 


나에게 이렇게 명언을 남겨주신 선생님은 지금 뭘 하고 계실까. 은퇴 후 손주들에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가르치고 계시려나. 우연히 언젠가 선생님을 마주치는 기회가 온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다. 선생님 덕분에 파도처럼 밀리는 업무 속에서도, 학생들과 씨름하는 와중에도 행복을 놓치지 않고 이 일을 해내고 있다고. 


그리고.


물리와 영원한 이별을 한 후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는 말도 함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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