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새로운 중학교에 적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행히 전 학교보다 한국 학생들이 꽤 많았기에 소속된 그룹이 생기면서 카페테리아에 홀로 앉아 점심을 먹는 일이 없어졌다. 이사 온 후 우리 가족의 이민생활도 조금씩 틀이 잡혔고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으니 나는 배움의 즐거움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쪽쪽 빨아들였다. Family Studies 시간에는 바느질과 요리를 배우고, Design and Technology 수업에서는 여러 도구를 이용해 간단한 나무박스를 만드는 것도 배웠으며, Music 시간에는 한국에서부터 배웠던 플룻 덕분에 밴드 활동도 열심히 했다.
소풍을 온 것 마냥 매일 학교생활이 즐거웠다. 대부분 과목에서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타나니 구겨져있던 자신감도 펴졌다. 영어실력은 생각처럼 빨리 늘지 않았지만 이대로 노력하다 보면 고등학교 가서도 별 탈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오산이었다.
고등학교 영어는 중학교 영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과 달리 셰익스피어와 대작가들의 소설이 영어시간 교과서였다. 대작가들의 문체와 그들의 세계를 탐험하며 언어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 것이 캐나다의 영어 교육방식이었다. 나에게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생소했다. 중학교 영어 수업도 교재가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영어에 말문이 트이기 시작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예를 들어 8학년 때는 소설 시간에 <어린 왕자>를 읽었는데, 내 수준에서 이해하기 쉬웠고 <어린 왕자> 소재 자체가 청소년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이기에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9학년 처음 시에 대해서 배울 때였다. 시 유닛 시험점수를 보고 얼얼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58점. 난생처음 받아보는 점수였다. 내 영어실력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순간이었고 조금씩 쌓여갔던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 뒤에 이어진 셰익스피어 유닛도 총체적 난국이었다. 나의 첫 셰익스피어는 그나마 다가가기 쉬운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워낙 유명하기에 내용은 알고 있었으나 셰익스피어의 16세기 영어는 내가 어떻게 파해칠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이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햇병아리에게 셰익스피어라니. 영어를 배워야 하는데 오히려 코드를 분석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된 기분이었다. 21세기에 들어와서 왜 우리는 16세기 영어를 배워야 하는가. 이걸 배워서 대체 어디다가 써먹을 것인가. 원수지간의 사랑을 속삭이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며 영어수업에 대한 답 없는 질문이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이후 학년이 올라가며 좀 더 심도 있는 <한여름 밤의 꿈>, <맥베스>, <햄릿>을 읽으면서 셰익스피어의 세계를 이해할까 내심 기대를 했건만, 오히려 이것으로 인해 문학에 대한 관심은 뚝 떨어졌다. 햄릿이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절규할 때 나 또한 같은 마음으로 울부짖었다. 이놈의 영어, 나를 죽일 것이냐 살릴 것이냐! 대체 언제쯤 느는 것이냐!
고전문학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셰익스피어 보다는 근래에 쓰인 글이니 좀 더 수월할 거라 기대했지만 이 유닛 또한 어려웠다. <위대한 개츠비>, <프랑캔슈타인>, <무기여 잘 있거라>, <세일즈맨의 죽음> 등등. 대체 이 선생님은 왜 이렇게 따분한 작품들만 고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각 학년마다 학교에서 정해놓은 추천도서가 있긴 하지만 영어 수업은 전적으로 선생님의 재량으로 이뤄진다. 그렇기에 영어수업의 퀄리티는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대작가의 클래식을 읽으며 교양을 쌓고 아름다운 문체를 배우라는 선생님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했지만 애석하게도 이 소설들은 고등학교 소녀의 말랑말랑한 감수성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내게 영어 수업은 “왜?”로 시작해서 “왜!!”로 끝나는 시간이었다. 문학이라는 영역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만 낳았다.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각색해서 연기와 연출을 하는 실력을 보여줬지만 나와 같이 영어 수업을 헤매고 있는 친구들에겐 이 시간이 고통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선생님의 영어 수업에서 한 번도 A를 받지 못했다. 매번 성적표에 영어 과목 점수가 제일 낮은 건 불 보듯 뻔했다. 덕분에 대학도 문과가 아닌 이과 쪽으로 진학하게 되었고 나는 문과 머리가 없다고 굳게 믿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여러 고민이 많았던 어느 봄날, 학교 캠퍼스를 걷다가 길을 건너려고 신호등 앞에 멍하게 서 있었다. 원했던 교대에서 연락이 오지 않아 심란한 마음으로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하던 터였다. 신호등 불이 바뀌고 눈을 드니 건너편에 친근한 형상이 시야에 들어왔다. 복잡했던 마음이 잠시 멈췄다. 어, 누구지? 스르륵~ 내 머릿속 필름이 지나가고, 그 필름은 고등학교라는 시절에 멈춰서 그 친근한 얼굴의 주인공을 찾아냈다.
Mr.Smith!
고등학교 내내 나를 영어의 늪에 빠뜨리고 문학의 미로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들었던 선생님이었다. 어려운 소설과 셰익스피어를 읽으며 문학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 계기를 제공했던, 하지만 3년 동안 꾸준히 정성스러운 피드백을 주며 내 영어실력을 돌봐주셨던 선생님. 감수성이 풍부했던 고등학교 소녀에게 헤밍웨이를 소개해줬던 분. 그때는 이해를 못 했으나 대학 가서 대작가들의 작품을 다시 접했을 때 선생님의 의도를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문학을 전공하겠다는 마음을 일찌감치 접게 되었지만, 방과 후 찾아갈 때마다 싫은 내색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자기 시간을 내어 나를 지도해 주셨던 선생님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칭찬과 돌봄을 아낌없이 주신 덕분에 고등학교 때 따로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대학교에 갈 수 있을 실력으로 영어가 늘었으니까.
저 멀리서 실비아라고 부르며 얼마나 반갑게 인사를 해주시던지. 어떻게 지냈냐며 지난 대학생활 얘기를 하다가 선생님이 문득 물었다.
“아직도 시를 쓰니?”
“네..? 시.. 시요?”
“그때 너 이름에 대해 쓴 시 너무 좋았는데 말이야.”
내가 시를 썼었었다니.
고등학교 영어실력이면 보나 마나 보잘것없는 글이었을 텐데 그중에 반짝이는 내 시 하나를 몇 년이 지난 후에도 기억하고 계신 것이 놀라웠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내 성인 문(Moon)씨를 달에 비유해서 쓴 시였다. 내 이름을 기억한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내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나의 모습까지도 상기시켜 주는 선생님의 진심 어린 관심에 마음이 벅차올라 그날 일기에도 적어놨다. 나 자신도 잊고 있었던 모습을 기억해 주는 타인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잠시나마 고등학교 때 꾸었던 꿈을 다시 펼쳐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오늘 새롭게 꿈을 꿀 희망을 얻었다고. 내 삶의 무대의 고등학교란 챕터에서 비중한 조연 역할을 한 분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선생이 되고 나서 영어수업 시간이 되면 Mr.Smith를 종종 생각한다. 어떤 소설을 읽어야 아이들의 흥미를 이끌까. 어떻게 글쓰기 실력을 향상할 수 있을까. 노력은 해보지만 가르쳤는데도 불구하고 매번 똑같은 문법을 틀리고 형편없는 글을 적어내는 학생들을 볼 때면 더욱더 선생님이 떠오른다. 매번 답답한 영어실력으로 쓴 내 글을 읽는 것이 고통이었을 텐데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지도하셨을까. 거기서 더 나아가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까지 수면 위로 끌어올리셨을까.
학생들의 숙제에 빨간펜으로 찍찍 줄을 긋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한다.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고 다시 읽어보자. 흐트러진 글 사이에 숨겨진 보석이 있을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