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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 광 Nov 08. 2021

은희 2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말했다. 그날 밤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버린 것이. 아니, 그가 내민 제안에 미련 없이 돌아서야 했었다. 아니, 그는 내가 도망치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눈치채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1년 후 연락이 닿았다. 어떻게 지내느냐 안부를 물어왔고 엄마는 새 가정을 꾸렸다고 했다. 부디 좋은 사람이길 바라며 잘 살라는 짧은 대화를 끝으로 마지막이 되었다. 아빠의 폭력 끝에는 엄마의 가출로 이어졌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엄마의 흔적이 사라졌음을 알고 나면 동생과 대문 앞에서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렸다. 내일이면 오겠지. 일주일 있으면 올 거야. 부질없는 기다림은 남매를 지치게 했다. 계속되는 기다림은 남매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고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이 엄마보다 먼저였다. 마지막이 아프지 않았던 건 배고픔보다 아프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아빠도 새 가정을 꾸렸다. 아빠는 같이 살자 했지만 낯선 여자와 그녀의 아들과 한 집에 사는 건 거북했다. 돈을 벌 수 있는 성인이 될 때까지 보호자 역할만 해달라고 했다. 그건 금전적으로도 조금 도움을 달라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3년 내내 소일거리로 벌어오는 돈으로 동생의 간식은 사 줄 수 있었다. 대학은 꿈도 꾸지 않았고 빨리 취직해서 아빠의 그늘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대학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껏 멋을 부리고 삼삼오오 모여 다니는 여유로움이 부러웠다. 엄마 아빠의 딸이 아니었다면 저들처럼 살 수 있었을까. 그러다가 화가 났다. 원망도 해보았다. 달라지는 건 없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동생과 나를 지키며 사는 것이 최선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가끔 들려서 가게 안을 쓱 돌아보고는 나가버리는 그가 계속 신경 쓰였다. 올 때마다 별말도 없이 곁눈질로 힐끗 쳐다보고는 피해버리기가 여러 번이었다. 사기꾼인가. 도둑놈인가. 그가 뇌리에서 벗어나지 않던 그날 밤, 가게 뒷정리를 하고 문을 여는 순간 그가 떡하니 서 있었다. 깜짝 놀란 나는 그를 멀뚱멀뚱 쳐다보았고 그는 애먼 머리만 긁어대고 있었다.

"저한테 할 말이 있는 건가요?"

"저.. 저기.. 커피 한잔하시지요?"

"제가 왜 그쪽이랑 커피를..."

"..............."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연을 맺는 어리석은 인간들. 너 없이는 못 산다 해놓고 너 때문에 죽겠다고 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당연지사다. 밑바닥까지 추한 꼴을 보아서인지 사랑은 믿지 않는다. 설령 지독한 사랑에 빠져 결혼이라는 걸 한다 해도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은 없었다. 사랑받지 못한 내가, 나 자신조차도 사랑하지 않는 내가, 자신 없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의미는 곧 독약과 같은 것이다.



"저는 그쪽이랑 커피를 마실 이유가 없습니다."

"저.. 저기.."



냉정하게 돌아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숫기도 박력도 없고 재미도 없겠다. 저래서 연예는 하겠나? 저런 스타일은 질색이다. 정신 차리라, 뭔 상관인데..' 괜한 심통인지 그를 신경 쓰고 있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는 나를 찾아왔고 주위를 맴돌았다. 못 이기는 척 그와 마주 앉았다. 그는 사범대 국어교육과 졸업반 학생이고 누나가 네 명 있고 부모님은 연세가 많으시고..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 어느새 나의 이야기도 털어놓게 되었다. 통했다. 그리고 점점 그를 의지하고 있었다. 독약을 벌컥벌컥 마셔버린 것이다. 그가 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교사로 발령이 난 후 그의 본가로 인사를 드리러 갔다.



평탄하고 넓고 앞이 탁 트인 곳에 자리한 집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나는 그의 허리춤을 살짝 잡았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팔작지붕의 거대한 안채가 보였다. 양옆으로는 별채가, 마당에는 우물이 있고 그 옆에 수돗가가 있었다. 대나무로 높이 세운 빨랫줄도 보였다. 꽤나 높은 기단 위에 앉은 안채는 보통 양반가의 집안은 아닌 듯했다. 국사 시간에 기단이 높을수록 권위가 높다고 들은 것 같기도 하다. 마루에 한 발짝을 올리는 순간 다시 재빨리 올렸던 발을 내려놓았다. 사돈에 팔촌까지 다 모인 건지 연세 많은 어른들이 줄을 지어 앉아 있었고 나이가 많건 적건 여인들은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다. 그의 집은 종갓집이었고, 그는 종갓집 장손이었던 것이다.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들의 질문 세례를 받았다. 어느 집안인지, 시조는 누구인지. 얼버무리고 앉아있으니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종갓집 며느리로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머님은 어른들을 설득해 결혼을 서둘렀고 본격적인 종갓집 며느리의 삶이 시작되었다. 또래 친구들은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를 바를 때 고춧가루로 물을 들였고, 손이 틀까 로션을 바를 때 달걀 물을 손에 입혔다. 뒤돌아 서면 제사 또 제사. 불러오는 배를 부여잡고 허리 한번 펴지 못했다. 출산이 다가오는데 300포기가 넘는 김장을 해야 했고 점점 강도가 세지는 시집살이도 견뎌야 했다. 어머님의 구박은 첫 딸을 낳고 더 심해졌다. '도대체 뭘 배웠노?' '너그 엄마는 이런 것도 안 갈쳐 시집보내나?' '남들 다 낳는 아들도 못 낳나?'

내리 딸을 넷을 낳고 장손을 낳은 자신의 모습이 보여서 였을까?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친정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가슴을 후벼팠다. 요즘 시대에 종갓집에 시집와 한 달에 두서너 번씩 지내는 제사를 감당해 낼 여자가 없다고 조금 모자란 집안에 딸과 결혼해야 한다고 그를 구워삶은 건 어머니였다. 결혼을 완강하게 밀어붙인 건 어머니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벌레 취급하는 날도 허다했다. 그럴 때면 언제나 그는 어머님 편에 서서 어머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 했던가. 아들을 낳고 어머님의 시집살이는 한풀 꺾였다. 하지만 고단한 종갓집 며느리의 삶은 여전했다.





"그래서 아직도 그 많은 제사를 지내나?"

"안 그래도 내가 선포를 하고 안 왔나. 여행 갔다 올 때까지 제사 정리 안 하면 이혼이라고."

"뭐라고ㅎㅎ 종갓집 제사를 어찌 정리할 낀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못할게 뭐 있노? 남들은 줄이고 없애고 한다 카더라. 시어른들도 다 돌아가시고. 사촌 아재, 육촌 아재도 다 돌아가시고. 내는 고마 베짱이다."

"으따, 우리 은희 마이 컸네ㅋㅋㅋ"

"야들아, 우리 지금 이라고 있어도 되나? 비행기 시간 다 안됐나?"



후다닥 짐을 챙겨 출국 수속을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승무원의 안내 방송도, 그 어떤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들의 이야기는 속닥속닥 계속 이어졌다.

                                                  

"은희야, 진짜 이혼할 기가?"

"이혼은 무슨. 이혼할라 했으모 애저녁에 했지. 새끼들은 내처럼 설움 안 받게 할라고 악착같이 버텼다이가."

"참, 동생은?"

"잘 산다. 말도 마라. 동생 때문에도 얼마나 구박을 받았노. 그때 종갓집이라는 걸 알고 헤어질라 했는데 어머님이 내를 붙잡았잖아. 그 사람은 눈치가 뻔해가지고 내가 거절 안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 또 이미 우리 딸이 뱃속에 안 있었나. 그래서 조건을 걸었지. 동생 대학까지 공부시켜주고 같이 데리고 사는 걸로. 사실 그건 참 고맙게 생각한다. 딱 저그 매형이랑 같은 길을 걷고 안 있나. 동생이 잘 사는 거 보면 뿌듯하다ㅎㅎㅎ"

"어릴 적에 참 고생 마이 했다. 너그 남매는 잘 살아야 된다."

끝도 없는 은희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먹먹하다.


"연희야, 니는 요새 몸은 좀 어떻노?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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