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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 광 Apr 23. 2024

400년 전에 쓴 편지에는

능소화

어느 날 대문 앞 전봇대를 휘감은 주황빛 꽃을 보았다. 마치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고 왜군 장수를 끌어안은 여인처럼 말이다. 가까이 다가가 보았더니 나팔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하기엔 꽃송이가 나팔꽃보다 작았다. 시간이 지난 후 문인화를 하면서 그 꽃이 능소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물 못지않게 그림으로 본 능소화의 고고한 자태가 양반집 규수와 닮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책에서 능소화는 한마디로 무서운 꽃이었다. 운명 앞에선 그 어떤 것도 소용없었다. 뽑아버리고 없애버려도 정해진 운명은 그들을 만나게 했고 가슴 절절한 그들의 사랑을 갈라놓았다.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쌓여 자식마저도 그리워하게 만드는 야멸찬 운명은 여린 여자를 더욱더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

'운명이라, 정말 정해진 걸까?' 다시 한번 삶을 돌아보게 했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다보게 했다. 나를 눈물짓게 했고 밥도 굶고 읽을 만큼 몰입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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