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간 책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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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일이 바쁘다고 해서 읽는 것을 게을리 할 수는 없는 법이지만, 솔직히 꽤나 바빠졌다. 몸이 힘든 건 아닌데 머리가 복잡하다. 여러 일을 동시에 하도록 태어난 인간이 아니다보니, 집중을 잠깐만 잃어도 실수가 잦다. 책을 깊이 읽고 오래 보고 싶은데, 책이라는 게 꽤나 집중력을 빨아가는 매체라서 다른 일과 동시에 독서를 진행하는 게 벅차다. 쉬는 시간이 짬짬이 나긴 하지만 '읽을 마음'을 먹는 데 시간을 다 써버리기 일쑤다.
그래도 등한시하고 싶지 않을 때 주로 쓰는 방법이, 등짝을 쓰윽 훑어보는 거다. 책의 앞면에 적혀 있는 제목, 날개에 붙은 저자 소개, 배면에 붙은 간략한 설명, 둘러진 띠지를 장식한 추천사 등 책의 '주변부'를 훑고 뽑아든다. 그리고 서문과 후기가 있다면 후루룩 읽고 요지를 파악해 내가 얼마만큼의 공력을 들여 이 책을 봐야 하는지를 가늠한다. 그리고 남은 나의 시간과 집중력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보고 책을 읽을 깜냥이 된다 싶으면 책 속으로 들어간다.
독서에 돌입하기 전엔 보통 이 과정을 거치는데, 요샌 거의 저 맨 마지막 단계에서 멈춘다. 남은 시간과 집중력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별다른 노력이 필요치 않을 것 같은 책은 잘 집어들지 못한다. 이 돈이면 좀만 더 보태서 자본론을 사지... 하는 생각이 마음 속에 스물스물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요 앞까지의 과정에서 요새 내가 뭐에 관심이 있고 어떻게 책을 고르는지는 드러난다. 책을 읽고 글을 남기지 않으면 이 앞의 과정이 다 물거품처럼 사라지곤 했다. 그게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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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훑어보는 책들의 목록을 적어두는 것도 내게 쓸모있겠다 싶었다. 왜 그 시기에 나는 그 책들의 표지를 훑고, 서가에 꽂아두었을까. 그리고 왜 읽지 못했을까. 읽지 못한 책들이 산더미인데, 그 책들이 읽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말해주는 건 없을까. 남겨두기로 했다. 매주 그렇게 짧게 내 관심을 끌었다가 영영 독서 목록에 오르지 못한 책들의 긴 행렬을. 언젠가 다시 읽어볼 수도 있을 그 관심의 흔적들을.
대충 본다고 해서 꼭 틀린 건 아니더라. 책을 고를 때 뭔 내용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해도, 누군가 믿을만한 사람이나 계정의 소개로 보는 책들이라면 꽤 적당히 읽을 만 했다. 제목에 끌려서, 추천사에 끌려서, 간단한 요약이나 서평에 끌려서 본 책들도 성공률이 그렇게 낮진 않았다. 실패가 없는 건 아닌데, 경험이 축적될수록 실패 확률은 계속 떨어졌다. 내 '쪼'에 어울리는 책들에겐 고유의 '쪼'가 있으니, 그걸 정확히 파악하면 적당히 괜찮았다. 적당히만 괜찮아도 이 정보의 쓰레기더미에서 헤메는 시간에 비해 낫지 않을...까?
사람이란 응당 여전히 질 좋고 재미있는 텍스트를 원한다. 뉴스도 그렇게 발명되지 않았을까? 더 정확하고 더 재미있고 더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소식을 어떻게 하면 높은 확률로 접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사람들이 책읽기를 싫어한다고 하지만, 좋은 글에 대한 탐닉은 여전하다. 다만 그런 좋은 글을 접할 확률이 점차 낮아지는 상황에서 피곤에 지쳐가는 게 아닐까? 그 확률을 높일 수 있다면, 그래서 투자한 시간 대비 수확이 좋다면 책도 좀 더 보게 되지 않을까? (비슷한 생각을 김지원의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에서도 읽을 수 있다)
정기적으로 쓰기로 했다. 깊고 두껍게 쓰는 건 별건으로 하더라도, 매주 뭔가 쓰는 일을 계속해야 글 근육이 붙겠다 싶었다. 요샌 거의 글쓰기 근육이 사라지고 앙상한 뼈만 남아 삐그덕거리는 중인데, 이것 때문에 다른 글쓰기도 안되는 것 같아서 걱정이었다. 잘 써야겠다는 압박감이 매번 뭔가 길든 짧든 글을 쓰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런 부담감도 좀 내려놓으려면, 즐겁게 쓰면 어떨까 싶기도 해서.
쓸 수 있을 때까지는 매주 주말마다 일기처럼 쓸 요량이다. 마감을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무사태평인 삶이라 이게 또 언제까지 갈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나는 P가 맞는 것 같다. MBTI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매주 개똥같은 글이 될지 아니면 나중에 한 번씩 궁금해서 찾아보게 되는 글이 될지는 결국 내 근성에 달려 있는 문제겠지... 하지만 어렸을 때에도 일기장을 쓰기 싫어서 발버둥치던 사람이니 끝이 어떻게 될지 솔직히 보이긴 하는데, 나이가 들어서 솔직하게 말을 못하는 것도 있고 뭐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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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아직 로쟈님도 꾸준히 관심일기를 쓰고 계시는군. 생각 날 때마다 놀란다. 아직도? 글쓰기에서 길이나 깊이나 형식 같은 것보다 중요한 건 꾸준함이라고 생각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쓰는 것. 인생도 매번 뭐가 되어야만 하는 게 아니라, 되든 안되든 꾸준히 살아가는 게 중요하지 않나 싶고. (하지만 그 살아가는 방식이 재미가 있어야 타인이 관심을 가지는 법...)
재미있고 싶다. 재미있게 쓰고, 재미있게 살고 싶다. 재담꾼이 되는 게 목표였는데, 나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내가 별로 웃기지 않다고 친절하게 말해줬다. 웃길려고 애를 쓰면 좀 안쓰러워요. 대문호가 되려는 건 아니지만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은 진지한 내용들 중간 중간 회심의 유머를 집어 넣고 사람들이 계속 그 유머들을 징검다리 삼아서 읽도록 만드는데, 그건 내가 볼 땐 좀 타고난 게 있는 거 같고. 나의 글은 누가 재미있게 읽어줄까... 어떻게 하면 재미가 좀 있을까. 읽으면 느나? 아직은 그렇진 못한 것 같다. 살면서 계속 뭔가를 쓰려고 하는데 앞으로도 계속 재미 없으면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