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영, <박소영의 해방>
얼마 전에 <우리의 자리> 시리즈의 신간이 나왔다. tv조선의 박소영 문화부 기자가 쓴 <박소영의 해방>이다. 분량은 조금 짧아서 잠들기 전에 간단히 읽고 자야겠다 생각하고 집어들었는데, 끝까지 후루룩 읽었다. 이 사람, 재미있는 사람이구나. (아무래도 나는 회사의 성향과 자본의 논리로부터 약간은 어긋난 채로 존재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문장, 몸짓을 좋아하는 것 같다)
문장들 군데군데 숨길 수 없는 시니컬함이 피어 있었다. 작가 같지 않은 작가들을 만나고, 자기의 주의주장을 배반하는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이율배반적인 작가들을 만나고, 물어야 할 것을 물어볼 수 없고, 물어봐도 메아리만 돌아오는 답변을 들으면서 쌓인... 시니컬함일텐데, 그래서 역으로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간결하고, 시원하게 언젠가 '취재원'이었을, 취재원이 될 지도 모르는 분야의 사람들을 향해 서늘하게 칼날을 세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무디지 않은 사람의 글만이 줄 수 있는 어떤 쾌감이, 여기에서도 느껴졌다.
다양한 작품과 문헌들이 책 안에 인용된다. 그리고 그것들은 간결히 자신의 언어로 다시 쓰여진다. 나 같으면 아마 길고, 장황하게, 조금 더 정확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온갖 변죽을 울렸을텐데.
그리고... 기자도 '중학생 정도의 교육'을 받은 사람도 이해할 수 있게 생산하라는 말을 징글징글하게 듣고, 그에 진절머리를 내는구나 싶어 '동료' 같아 웃었다. 기실 어렵고 복잡한 게 세계고, 그런 세계 표현하자고 다양한 표현과 개념이 만들어진 것일텐데, 그걸 포기하고 적당히 오해하고 넘어가게 만드는 게 우리 할 일은 맞나? 그럴 거라면 우리는 왜 애써 이 일을 하는 걸까? 시간과 열정이 아깝구로...
“요즈음에는 ‘쉽게 쓰자’는 말이 어쩌면 언론을 망가뜨린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86)
그리고 마지막이 압권. 강연이든 저작물이든, 예술이든 아니면... 프로그램이든 그것이 세상에 내놓을만한 가치가 있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런 가치를 애써 설명하려는 시도라도 하는 생산자들은 얼마나 될까? 생산자인 동시에 비평자의 입장에서 저자가 요청하는 '엄격한 몸짓'이라는 말을 무겁게 받아들이게 된다. 나의 말, 글, 일은 가치가 있는가. 아니, 가치가 있기 위해 노력하는가. 그런 가치를 제대로 설명하려 하는가.
짧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아주,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자료로 찾기 위해서 거들떠 본 게 아니라, 그저 읽고 싶어 읽은. 근 3주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