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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자선생 Oct 20. 2024

쎄쎄쎄는 우리나라의 옛 말이다

일본소학교 음악책에 <한국의 유희요>로 소개

   일명 쎄쎄쎄라는 놀이를 보면 둘이 손을 맞잡고 ‘쎄쎄쎄’를 읊으며 준비 동작을 하는데 이건 서로 장단을 맞추는데 아주 효과적으로 작용합니다. 쎄쎄쎄라는 놀이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일본에서 들어와 급속히 퍼졌습니다. 일본 아이들이 노는 걸 보면 ‘세세세~노 요이요이요이’(せっせっせ~のよいよいよい)라고 시작동작을 하는 걸 볼 수 있는데, 쎄쎄쎄는 놀이와 명칭 모두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세계에 널리 퍼진 쎄쎄쎄 

     필자는 쎄쎄쎄 류의 놀이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고루 퍼져 아이들이 즐기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지구 반대편인 쿠바나 유럽의 스위스에서도 이런 손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건 아이들의 신체능력이나 놀이정서에 맞기 때문에 전 세계에 고루 퍼졌을 겁니다. 그런데 쎄쎄쎄라는 말은 일본말이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하며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과 놀면서 쎄쎄쎄 대신에 ‘손손손’이라고 읊으면서 놀더군요. 즉, 그들이 ‘손손손’이라고 옮긴 건 ‘쎄쎄쎄’가 일본말로 손이라는 의미이겠지요. 그러나 틀렸습니다. 일본말로 손은 테(手て)입니다. 쎄쎄쎄가 아닌 테테테 하면 의미는 맞아떨어집니다. 쎄쎄쎄라는 말은 의미가 없는 것으로 가락이나 장단을 맞추기 위해서 읊조리는 매기는 소리입니다.


    자, 여기서 한 발자국 나아가 생각해보면 일본에서 많고많은 매기는 소리 중에서 왜 쎄쎄쎄가 등장했겠느냐 하는 겁니다. 혹시 아주 옛날에는 쎄쎄쎄가 손이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일본말은 고구려와 백제 등의 영향을 받은 말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쎄쎄쎄가 우리나라 고어가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추측이 가능해집니다. 『우리말의 뿌리』의 저자 서정범교수는 셋(쎄)은 ‘손’의 고어인 솓 →솔 →소이 →쇠 →세 로 변화해 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한국전통문화와 구전전래놀이노래』의 저자 김숙경교수는 일본소학교 음악교과서에 쎄쎄쎄를 <한국의 유희요>라고 소개하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필자의 어렸을 적 경험을 들춰보면, 마당에서 아이들이 놀다가 넘어져 울고 있으면 할머니가 아픈 부위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쎄~쎄~” 해주면 금방 나아 다시 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할머니는 제도교육이나 일본말을 배워본 적이 전혀 없었던 걸 보면 쎄쎄쎄는 분명 아주 오래전부터 흘러 내려온 우리말임에 틀림없습니다.


고대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말

      우리나라와 이웃하고 있는 일본은 고대 시대에 우리말이 건너간 것이 많습니다. 뭔가 시작할 때 일반적으로 많이 외치는 ‘하지메’나, 고구려 시대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진 스모에서는 ‘하케요이’라고 하는데 함경도 사투리인 ‘하기요’가 건너간 것으로 추정합니다. 고도리(ゴドリ)는 다섯 마리의 새라는 것인데 옛 고어에서 새를 ‘도리’라고 불렀습니다. 발음 그대로 돌아온다는 뜻인데 단동십훈의 도리도리는 목(고개)을 좌우로 돌리는 걸 뜻합니다. ‘아침바람’에 나오는 ‘구리구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구리(고리)는 실꾸리, 귀고리, 문고리 등을 보아 알 수 있듯이 둥글다는 것인데 구리(고리)가 축약되어 얼+골_굴(고리_구리)=얼굴이 되고 멍텅구리도 됩니다.     

 

    자장면이나 닭볶음탕보다는 짜장면이나 닭도리탕이 제맛이 나듯 ‘손손손’ 하면서 노는 것보다는 쎄쎄쎄 하면서 놀아야 제맛이 나지 않을까요? 일본말 강박관념에 매이지 말자는 의미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더구나 쎄쎄쎄는 아주 옛날 우리말이기도 하니 당당하게 쎄쎄쎄 하면서 놀 수 있길 바래봅니다. 놀이를 게임이라고 부르고 ‘죽었다’를 아웃이라고 부르는 시대입니다. 아이들은 즐겁게 노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어린이들의 세계관과 정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노래만큼은 최소한 우리 노래를 부르며 노는 게 좋겠단 생각입니다. 노래를 통해 한 인간이나 민족의 정서심리와 정체성이 형성되는데 나라나 민족마다 정체성이 다른 이유입니다. 유명한 음악가인 코다이는 오랫동안 게르만 지배로 인해 헝가리 음악교육이 지나치게 게르만적인 것으로 변했다고 판단하여 50년 동안 민요를 수집하여 헝가리의 모국음악어를 찾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매우 늦어지긴 하였지만 초등학교 교과서가 국민학교 출신들이 부르던 학교종이나 여우야여우야 등 일본풍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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