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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자선생 Oct 22. 2024

단동십훈을 왜곡시킨 한자 숭배자들 1.

꼬끼요穀氣要(곡기요)와 깍꿍覺躬(각궁)을 문자유희화하는 한자사대주의

한자로 고유말을 왜곡시키는 한자 사대주의

    전래(전통)놀이 중 가장 잘못 알고 있는 놀이가 일명 단동치기십계훈이라는 놀이입니다. 이렇게 된 까닭은 2008년 10월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단동십훈’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단동십훈’이란 단군 이래 전해 오는 놀이육아법이다. ‘도리도리 짝짜꿍’이나 ‘곤지곤지 잼잼’은 우리가 어릴 적에 영문 모르고 즐겼던 것들이다. 하지만 거기엔 심오한 세계관과 생활철학이 스며 있다. 어른들이 아이에게 ‘깍꿍’이라 말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깍꿍’은 ‘각궁(覺躬)’이다. “자신을 깨달아라!”는 뜻이다.”라고 썼는데, 이런 식의 해석이 이후 정설인 양 2011년 초 EBS에서 '다큐 프라임' <오래된 미래, 전통육아의 비밀>이 방송된 뒤 급속하게 퍼지게 되었습니다.      


    EBS의 ‘전통육아의 비밀’에 소개된 단동십훈 중 몇 개를 살펴보면, “불아불아(弗亞弗亞)는 아니 불(弗)과 버금 아(亞)로 ‘버금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인 아이가 하느님과 같은 생명력을 갖고 살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곤지곤지(坤地坤地)는 땅의 이치를 본받아 음양의 조화를 이루며 덕을 쌓으라는 의미라고 설명합니다. ‘전통육아의 비밀’에서 단동십훈 모두를 이렇게 한자의 훈음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이나 양육자들은 이렇게 깊은 뜻이 있는 줄 몰랐다며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단동십훈은 고조선 단군시대 육아법으로 전해져 온 걸로 알려져 있으며, 두말할 것 없이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의 전통놀이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한자 중심으로 해석하다보니 지역마다 이름이 다른 죔죔, 쟘쟘, 쥐암쥐암, 쪼막쪼막을 持闇持闇(지암지암)이라는 하나의 명칭으로 말하며 ‘지암은 가질 지(持)와 어두울 암(闇)으로 세상의 혼미한 것을 두고두고 헤아리며 가려서 파악하라’는 의미라고 해석합니다. 도대체 왜 이런 해석이 나왔을까요? 여기에는 뿌리 깊은 한자 사대주의가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EBS는 대관절 어디에 근거를 두고 이런 주장을 펼쳤는지 봤더니 <단동치기 십계훈의 교육관과 유아교육적 의미>(김주현.박찬옥, 2011)라는 논문이었습니다. 위 논문을 따라가 보더라도 단동십훈 놀이 명칭에 대한 유래나 출처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연구가 안 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단동십훈에 대한 얘기는 일찌감치 1962년 『빛나는 겨레의 얼』(안명선, 성문각)에서부터 등장한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책 역시 놀이 이름에 대한 출처나 유래는 언급되지 않으며 궁을가(弓乙歌) 등을 얘기하는 걸로 봐서 민족종교 계통의 해석입니다.      


말이 먼저 생기고 문자는 나중에 생겨

    2008년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단동십훈’ 칼럼을 보고 단국대 중국어과 안희진 교수가 반박문을 독자칼럼 형식으로 올렸는데 내용은, ‘“곤지곤지, 도리도리, 짝짜꿍, 까꿍” 등 아이들의 육아 과정에서 자연스레 형성된 우리말이 그렇게 깊은 의미를 감춘 한자 문구라고 하니 억지를 부려도 그렇게 부리면 안 된다. 그건 과거에 한자가 주요 문자였던 시절, 순수 우리말을 유사한 발음이 나는 한자로 음역해서 기록한 자료일 뿐이다. 또 그 이론은 일부 한자적 사고를 즐기는 사람들이 꾸며낸 재미난 길거리 얘기’일 뿐라고 일갈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한자 감상주의자들은 순수한 우리말에 한자를 집어넣음으로써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닭이 우는 소리가 “꼬끼요∼” 하는 것도 “곡기요”(穀氣要), 헛기침 소리 “어험∼”도 “어험”(語驗)이라고 하는 식이다. 고유한 우리말이지만 불가피하게 한자로 표기하는 음역의 필요가 있을 때나, 한자로 문자 유희를 할 때 하는 이런 투의 말이 점차 머리와 꼬리를 갖추고 앞뒤가 그럴싸하게 갖춰지면 한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믿을 수밖에 없는 신비한 학설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곤지곤지는 집게손가락으로 손바닥 중앙을 찌르면서 노는 손놀이입니다. 손가락에는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소지 등이 있는데 여기서 ‘지’는 나무에서 뻗어나간 가지가 있듯 손에서 뻗어나간 것을 지(손가락)라고 합니다. 곤지곤지는 한자어가 아니라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주로 사용하는 오른손 검지를 왼쪽 손바닥 중심에 꽂는 행위를 하며 노는 놀이인데 ‘검지검지’가 아닌 ‘곤지곤지’라고 했던 이유는 손가락을 손바닥에 꽂으라는 의미일 겁니다.(어떤 지역에서는 지게지게 또는 지검지검이라고 하기도 함) ‘꽂는다’의 옛말은 지금은 쓰이지 않는 ‘꼱다’에서 왔습니다. 한 예로 꼱아본다라는 행위에서 나온 꼬니(누)→고니(누)라는 놀이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꼱아 →꼰아 →꼬나 ⇒곰방대를 꼬나물고/ 꼱이다 →꼰지다 ⇒상대 선수를 메꼰져버렸다 등으로 변화되었다고 보입니다. 현재 우리가 쓰는 말은 임진왜란 이후 격음화, 경화화된 말인데 ‘곶(곳)’이 ‘꽃’으로 바뀌고, ‘것거’가 ‘꺾어’로 바뀌었듯이 곤지곤지를 현대말로 바꾸면 꼰지꼰지일 겁니다.   

   

   말이 먼저 생기고 문자는 나중에 생겼습니다.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이 있기 전에도 말이 있었고 한자가 생기기 전에도 사람들끼리 통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한글이 있기 전에는 우리말을 한자라는 문자를 빌어 사용했는데 이두문자나 향찰 같은 것입니다. 한자_제국주의 시대에 문자깨나 아는 사람들은 생각을 굳이 生覺이라고 쓰기도 하였습니다. 영어_제국주의 시대에 일상생활 용어에 영어가 습관적으로 쓰이는 현상과 같습니다. 단동십훈이 단군시대에 만들어졌다면 한자의 유래가 된 갑골문의 역사가 3천 년이니 이미 사용하던 놀이 이름이 있었을 겁니다. 후에 그걸 문자화하기 위해 한자로 표기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불아불아(弗亞弗亞)나 곤지곤지(坤地坤地)를 한자 중심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시대착오적인 오류에 빠진 셈입니다. 언제부터 불렸는지 모를 정도로 오래된 아리랑이나 강강술래를 갖고 한자로 장난(作亂)치는 것도 문자유희 놀이일 뿐입니다.      

독창적인 고유놀이, 고유언어

    곤지곤지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한국의 독창적인 손놀이입니다. 이 놀이를 통해 유아 때부터 정교한 손기술에 대한 기초를 다집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엄지와 검지를 사용하면서 두뇌가 비약적으로 발달되며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곤지곤지는 주 사용 손인 오른손 집게손가락의 협응력과 정확성을 일찌감치 익힐 수 있는 아주 과학적인 놀이입니다. 우리나라 손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은 이런 놀이로부터 비롯됩니다. 백제 금동대향로는 21세기 최첨단 과학기술로도 재현할 수 없는 7세기 때의 위대한 작품입니다. 이걸 만든 ‘금손’은 유아 때부터 곤지곤지로부터 구슬치기, 공기놀이 등을 통해 예민한 감각과 기술을 익혔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아이에게 영문 모를 작작궁(作作弓)의 도를 가르치기보다 짝짝쿵 손뼉 치면서 즐겁게 노는 게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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