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가 뭔지도 모르는 한자 사대주의가 망친 우리말
질라라비가 뭔지도 모르는 한자 사대주의가 망친 우리말 질라라비가 뭔지도 모르는 한자 사대주의가
단동십훈이 언제부턴가 이상한 한자 풀이식 해석만 난무하고 있어 바로잡아 드리려고 합니다. 질라라비활활의를 한자로 풀이하는 사람들은 疾羅腓活活議(질나비활활의) 또는 支娜阿備活活議(지나아비활활의)로 한자 훈음을 만들어 해석하고 있는데, ‘어떤 질병도 오지 말고 훨훨 날아가 버리라’ 또는 ‘아이의 팔을 잡고 영과 육이 고루 잘 자라도록 기원하고 축복하며 함께 춤추는 모습이다. 결국 천지자연의 모든 이치를 담고 지기(地氣)를 받은 몸이 잘 자라나서 작궁무(作弓舞)를 추며 즐겁게 살라는 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단동십훈 중 맨 마지막인 열 번째에 해당하는데 드디어 아이를 도통한 지경까지 만든 느낌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질라라비훨훨은 ‘질라라비’와 ‘훨훨’이합쳐진 말로 둘 다 우리 고유어입니다. 훨훨 앞에 질라라비가 있는 거 보니 분명 하늘을 나는 ‘무엇’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질라라비에 대한 탐구를 하기에 앞서 어떻게 한자화해볼까를 우선하니 위와 같은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필자는 이 단어를 본 순간 고등학교 고어 시간에 배운 하야로비가 떠올랐습니다. 두시언해에 나온 걸로 기억되는데 해오라비 또는 해오라기라고도 하는데 백로의 순우리말입니다. 해오라비난초꽃은 그래서 백로처럼 생겼습니다.
질라라비는 사람이 잡아서 기르기 전의 닭 이름이라고 합니다. 모꼬지, 새내기 등 한글에 조예가 깊은 백기완선생의 주장입니다. 예전에 시집 장가갈 때 초례상 위에 암탉과 수탉을 묶어놨다가 날려 보내면서 “질라라비 훨훨”하고 외쳤다고 합니다. 분명 우리 조상들은 질라라비 훨훨 이라는 말을 근세기까지 사용해왔는데 까마득히 까먹고 만 셈이지요. 신랑 신부에게 질라라비 훨훨 외치는 것은 닭이 꼬끼오 외치며 첫새벽을 알리듯 첫출발을 힘차게 잘하라는 메시지일 겁니다. 걸음을 막 뗀 아이에게 질라라비 훨훨 하면서 뒤에서 잡았던 팔을 놓는 것도 인생의 첫출발을 잘하라는 응원의 메시지일 겁니다. 마치 자전거를 배우는 아이의 자전거를 뒤에서 잡아주다가 곧잘 타면 살짝 놓듯이 말입니다. 이제 세상의 아이들은 질라라비 훨훨 응원 소리를 들으며 뚜벅뚜벅 스스로 제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단동십훈에 나오는 말들은 한자어가 아닌 모두 고유의 우리말입니다. 짝짜쿵은 손뼉소리를 표현한 것입니다. 좀 더 풀어드리자면 앞의 두 음절 짝짝은 손바닥을 서로 마주칠 때 나는 소리이고 쿵은 마주쳐 멈출 때 나는 소리를 3박자 민족답게 3음절로 나타낸 것입니다. 지암지암(죔죔=쪼막쪼막)은 주먹을 쥐었다 펴는 동작을 나타낸 것입니다. 단동십훈 10가지 중 3개가 손놀이에 해당하는데 캐나다의 뇌의학자 팬필드가 얘기한 뇌 지도 호문쿨러스의 비율과 딱 맞아떨어집니다. 뇌에서 손 영역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걸 우리 선조들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 섬마섬마는 ‘일서섬’의 <섬>에+<아>가 붙어 섬아 →섬마가 된 것입니다. 바다에 서(떠)있는 섬과 같은 의미입니다. 아기가 다리에 힘이 생겨 잘 서게 되면 섬마섬마 용타 하는데 ‘용타’는 응원의 감탄사입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따로따로’라는 음률로 전해지기도 합니다. 아기의 근육은 중앙(허리/배)에서 바깥 방향으로 성장이 이뤄지는데 섬마섬마가 다리 근육을 키워주기 위한 육아법이라면 불아불아는 발의 힘을 키워주기 위한 것입니다. 아기의 허리를 잡고 왼편 오른편 기우뚱거리며 “불아불아” 들려주는데 <불>은 발(足)의 옛말입니다. 일본말에 ‘부라부라 아쿠루’라는 말이 있는데 천천히 걷는다는 말로 고대 시대에 우리말이 일본으로 건너간 흔적입니다.
애비애비는 위험 회피능력을 키워주기 위한 경고음입니다. 아이가 불이나 물가, 더러운 곳으로 다가서면 가지 말라고 뭔가 경고성 신호를 줘야하는데 그게 바로 “애비애비”입니다. 애비애비를 한자화 하다보니 업비업비(業非業非)가 된 것입니다.
아함은 아기들이 즐거워하는 발성법입니다. 제일 쉽게 낼 수 있는 ‘아’ 소리를 길게 낼 때 손바닥으로 막아주면 ‘함’이라는 소리로 끊기는데 이런 변화를 아이들은 좋아합니다. 즉, 아 소리를 길게 낼 수 있는 날숨 능력을 키워주는 발성법입니다.
시상시상_서성서성_달궁달궁(달쿵달쿵)_달강달강(달캉달캉)은 ‘아기를 세우거나 마주 앉아서 양손을 잡고 앞뒤로 밀었다 당겼다 하는 동작’이라고 국어사전에 풀이되어 있습니다. 즉, 앞뒤로 흔들리면서도 아기는 몸의 중심을 잡으려고 용을 쓰는데 평형_균형감각을 키워주는 허리운동입니다.
도리도리는 빙빙 돌다의 뜻으로 돌리돌리 →도리도리로 ‘돌’의 ㄹ탈락 현상입니다. 밀닫이 →미닫이 열닫이 →여닫이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돌’은 머리의 옛말이기도 합니다. 좌우로 머리를 돌리면서 노는 육아법으로 아기의 목 가누기와 뇌발달을 돕습니다.
마지막으로 깍꿍은 각궁(覺弓)이라는 한자어에서 온 말이 아니고 어거지로 한자화 한 것입니다. 각설이(覺說理)타령을 도를 깨우친 소리라는 격입니다. 엄마가 손바닥이나 보자기로 얼굴을 덮었다가 벗기면서 깍꿍 하고 놀래키는데 벗기는 행위는 보자기나 거죽(손)을 까는 행위입니다. 깠군 →깟꾼 →깍꿍으로 변화되었다고 보는 게 설득력 있을 겁니다.
영유아기 때 통과의례처럼 행해지는 깍꿍놀이는 아기의 대상영속성과 분리불안을 해소해주는 인류 공통의 놀이입니다. ‘대상이 눈앞에서 사라지거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그것이 계속 존재한다’는 것이 대상영속성인데 4개월부터 시작하여 10개월 정도에 형성되고 24개월이면 완전히 확립됩니다.
한편 아이는 12~24개월이 되면 다른 사람을 따라서 하는 숨바꼭질 흉내 내기가 가능한데 내 몸을 숨길 수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구분하며 관찰 능력을 키워 나갑니다. 그러나 4세까지의 아이는 자신의 관점이 세상의 관점이라고 생각하는 피아제가 말한 ‘전조작기’로 타인의 관점을 생각할 수 있는 두뇌의 형편이 아직 안 됩니다. 어린아이들의 숨바꼭질에 나타나는 유형의 특징이 하나같이 급하면 도망가다가 땅이나 숲풀에 머리만 숨기는 꿩처럼 자신의 눈만 가리는 건 이런 까닭입니다. 7세 정도가 되어야 다른 사람의 관점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또 자기 눈을 가린다고 해서 술래가 자신을 찾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타인의 시각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을 ‘타인 조망능력’이라고 합니다.
놀이를 많이 해봐야 분리불안 없는 정서적 안정감과 세상을 제대로(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머리가 발달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