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속의 정신 단련
현대인들은 일을 하지 않으면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말하건대, 세상에는 '노동이 미덕'이라는 믿음 때문에 엄청난 해악이 발생하고 있다. 만약 모든 이가 하루에 4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을 게으르게 보낼 수 있다면, 세상은 훨씬 더 행복해질 것이다. 여가 시간은 단순히 노는 시간이 아니라, 문명과 예술과 과학이 꽃피는 비옥한 토양이 된다. 현명하게 여가를 즐길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문명의 최종 단계이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트런드 러셀
산업사회가 낳은 인간의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러셀의 대표적 에세이로 70여 년의 시간차를 뛰어넘는 통찰과 예지가 돋보인다. 러셀의 저작 중에서 특히 주목받는 이 책에서 러셀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과 달리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주체성 확립을 위해서는 오히려 여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러셀의 역설적인 주장이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그의 이야기가 '우리의 어제'가 아니라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말해 주기 때문이며 정신없이 지나치는 일상을 꿰뚫어 볼 수 있게 하는 철학자의 지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러셀은 흔히 자신의 무능력과 게으름에서 불행의 원인을 찾는 현대인들에게 '행복해지려면 게을러지라'는 처방을 내린다. 러셀은 현대의 기술 문명이 모두가 편안하고 안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는데도 기계가 없던 예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현대인은 과잉노동과 과잉생산을 하고 있고, 과로와 굶주림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그리고 과거에 소수 특권층에게만 부여되었던 게으름의 기회가 구성원 모두에게 제공되고 개인들이 근로의 미덕이 최고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누구나 자유롭게 즐겁고, 가치 있고, 재미있는 활동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역설한다.-출판사 서평
냉동고에 잘 보관된 베이글 하나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으면 금세 따뜻하게 데워진다. 커피머신에 캡슐을 끼우고 버튼만 누르면 향기로운 커피가 한가득이다. 인덕션으로 계란을 조리하면 훌륭한 한 끼의 식사가 완성된다. 다 사용한 식기는 식기세척기에 넣어주기만 하면 설거지 완료. 깊은 바구니에 수북이 쌓인 빨래는 세탁기에서 한 시간 만에 깨끗하게 세탁되고 이어 건조기가 뽀송하게 말려주기까지 한다. 로봇 청소기는 집구석구석을 알아서 청소하고 컴퓨터와 모바일로 관공서와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버스와 지하철의 도착 시각을 정확히 알고 그에 맞춰 이동하여 추운 날씨에도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수고를 덜 수 있고, 궂은 날씨와 늦은 시간에도 먼 곳에 있는 택시를 호출할 수도 있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삶은 꽤나 여유롭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면 우리의 삶은 더욱 여유롭게 될 것이다. 게으름을 찬양한 버트런드 러셀은 산업혁명을 거쳐 노동의 가치가 최고조에 달한 세상을 살았다. 분명 그러한 산업의 발달이 세상을 발전시켰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사람들은 경제적인 풍요로움, 잘 살고 싶은 희망을 위해 노동에 과도하게 매달리고 시달렸다. 그러나 고강도의 노동으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갔다.
러셀은 여유로운 삶을 위해 일을 하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여유와 거리가 아주 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노동의 성과가 낮은 사람들이 무력감에 짓눌리는 것도 안쓰러워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게으름의 찬양론을 펼쳤다. 그가 게으름이라는 말을 빌어 표현했지만 사실 그의 예찬은 게으름 자체에 있지 않다. 단순히 노는 시간이 아니라 현명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말한다.
편리해진 삶 속에서 우리의 여가는 노는 시간과 현명한 시간을 조화롭게 구성해야 한다. 고독으로 사색하고 사유하여 얻은 현명한 지혜가 더욱 빛을 발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시대를 앞선 거인의 어깨에 올라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진정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삶을 꿈꾼다.
<버트런드 러셀, 1872-1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