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을 통해 성숙하게
참된 목적은 외부에 있는 고정된 결과가 아니라, 경험이 스스로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 있다.
<경험과 교육>, 존 듀이
'늦은 시각, 저 아이들은 지금 집으로 돌아가네'
저녁을 먹고 집 근처를 산책한다. 주택가는 한산하지만 도로는 차로 북적인다. 조금 더 발걸음을 옮겨 번화가로 들어서면 교차로를 통과하는 차량이 꼬리를 물며 서 있고 인도에는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복잡하다. 저녁 8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신호를 기다린다. 아이들은 길거리와 학원 차량에서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낸다. 식당과 술집이 혼재된 번화가 속 아이들의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수없이 마주한 광경이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어느 누구도 그런 모습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듯하다.
어두운 저녁 하늘에 눈송이가 떨어지는 감상적인 날에도, 길에 소복이 눈이 쌓인 새하얀 세상 속에서도, 봄날 길가에 다채로운 꽃이 피고 벚꽃 잎이 눈처럼 아름답게 떨어지는 날에도, 해가 긴 여름날의 몽환적인 다홍빛 노을의 풍경 속에서도, 빨갛고 노란 가을 풍경 속에서도 아이들은 여전히 같은 모습이다.
뛰놀 곳조차 마땅치 않은 도심 속에서 아이들은 뛰놀 시간마저 빼앗긴다. 그들의 미래를 위한다는 어른들의 대의 때문이다. 교육만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선조들의 치열한 교육열이 모태가 되었지만, 실제로 좁은 국토와 부족한 자원 때문에 우리 삶의 질을 바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 교육이라는 말은 기정사실이다. 우리 모두 같은 길을 걸어온 기억을 머금고 아이들의 모습을 당연한 듯 바라본다.
우리가 바라보는 교육의 목표는 성공과 여유로운 삶이다. 좋은 대학과 그럴듯한 직장이라는 좁은 관문을 위해 경쟁해야만 한다. 학벌과 직장으로 얻는 아늑한 삶은 무한 경쟁 속에서 성적으로 증명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무엇인지 생각하면 아이들의 그런 모습이 딱하다. 지금의 어른들은 아이들을 잘 이끌고 있는 걸까?
지금의 풍요로움이 치열한 경쟁 속의 성공과 성과에 따른 것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아이들이 과도한 학업과 치열한 경쟁에 허우적거릴 동안 몸과 마음이 지쳐서 부모와 세상을 향한 분노에 빠지거나 삶의 의지를 놓아버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입시를 위한 공부는 세상을 배우는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의 즐거움이 없다. 아이들이 쌓은 지식을 지혜로 전환하는 경험과 사색의 시간이 한참 부족하니 성인이 되어도 어른이라는 느낌보다 다 자란 청소년의 느낌이 강하다. 뒤늦게 사회생활과 경험을 통해 어른이 되어 가지만, 어떤 사람은 여전히 성숙하지 못한 채 존중받고 대접받기를 원한다.
지식은 우리의 삶에서 올바르게 활용될 수 있는 지혜로 성장해야 한다. 사유와 성찰 없이 쌓은 지식은 최소한의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여 자신뿐 아니라 공동체에 이바지할 것인지가 개인의 삶의 궁극적인 목표여야 한다. 그리고 어른은 아이들이 스스로 지혜를 쌓도록 이끌어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독과 사유의 과정을 통해 지식을 쌓는 공부가 삶을 위해 필요하다고 깨달아야 한다. 독서를 하고 산책을 하며 생각의 깊이를 다듬고 지혜롭고 존경스러운 어른이 되는 것, 작은 영향력이 밤하늘의 별처럼 하나 둘 모여 아름답고 온전한 우주를 형성하는 것, 그 우주를 바라보며 성장한 아이들이 다시 별이 되어 조화롭게 순환하는 모습이 우리가 꿈꿔야 할 세상이지 않을까?
<존 듀이, 1859-1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