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영혼은 따뜻합니까?

마음의 풍요를 꿈꾸며

by 타조

가장 끔찍한 빈곤은 외로움과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마더 테레사>




외로움은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이다. 혼자 생활하는 일인 가족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혼자 사는 사람이 모두 외롭다는 발상 자체는 우습다. 직장이나 모임, 여러 활동에서 외로움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밤에 불을 끄고 누웠을 때 마주한 고요함은 외로움을 가장 많이 느끼는 순간이 아닐까?


그런데 시간과 거리에 구애받지 않는 소통의 도구가 발달했고, 그것들은 외로움을 느낄 시간과 기회조차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떠 sns로 여러 사람과 소식을 나누고 홀로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으면서 쉬지 않고 재생되는 영상에 시선을 빼앗긴다. 심지어는 길을 걸을 때와 버스, 지하철로 이동할 때까지 쉴 틈 없이 이어진다. 끊임없는 소통과 재미있는 볼거리가 가득한 도구의 사용은 잠자리에 누워 무의식의 세계로 입장하고 나서야 강제로 종료된다.


그러나 도구를 이용하여 끊임없이 펼치는 소통과 즐거움이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완벽하게 대체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빈틈없이 소통하고 즐거운 와중에 얼핏 느끼는 외로움은 우리의 본능이 단지 무엇과 연결되느냐보다 고차원적인 욕구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소통과 즐거움이 가득한 세상에서도 외로운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통계 자료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바쁘고 정신이 없거나 즐거움이 가득할 때에도 무언가 놓친 것 같은 허전함이 짐짓 마음을 두드릴 때가 있다. 평소에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느끼지 못하던 감정이 어느 날 문득 마음 가까이 느껴질 듯 말 듯 살며시 다가온다. 하지만 업무와 여러 관계, 또 다른 즐거움으로 인해 다가온 감정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와 내적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지만 철저히 외면당하기 일쑤다.


고독이란 나를 찾아왔다가 외면당한 정체 모를 감정과의 대화이다. 책상 앞에 앉아 깍지를 낀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 잠시 눈을 감는다. 사방은 고요하고 이내 자기 숨소리가 느껴지며 그간 정리되지 않은 채 미뤄온 다양한 생각이 머리에 하나 둘 떠오른다. 큰 숨을 들이켜고 눈을 떠 시선을 한 곳에 두지만 초점이 없다. 이미 시선은 빛을 따르지 않고 생각을 따르고 있다.


고독의 사색 중 가치 있다고 판단한 생각들을 정리하다 보면 희미하고 어렴풋하게 가라앉은 감정이 다시금 살며시 다가온다. 수줍게 다가와 마음을 두드렸으나 외면당하고 잊혔던 감정이 조금은 또렷해진다. 바쁜 일상과 즐거움에 묻혀 잊고 지내던 외로움과 드디어 마주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끝없이 눈을 맞춰야 하고 숨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며 체온을 느껴야 한다. 하지만 물질적인 관계로 본질적인 외로움을 달랠 수 없다.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는 본질적인 부분을 이해해야 한다. 누군가와 함께 살면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까? 단순히 물질적인 결합 이상의 관계가 형성되어야 우리는 외롭지 않다. 정신적 공허가 우리를 행복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정신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이 사랑이고, 사랑은 마음을 풍요롭게 만든다. 양보다 질의 문제이기도 하다.


고독은 자기 선택의 문제지만 외로움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외로움에 못 견뎌 마구잡이로 소모적인 관계를 맺으려 하기보다는 마음을 따뜻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 사랑은 혼자 품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니까. 그래야 더 따뜻하고 아늑하고 함께 행복하니까.


<마더 테레사, 1910-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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