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과 소통의 반복 속에서의 고민
승강장 안전문 너머의 어둠 속 먼 곳에서 지하철의 밝은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빛은 어둠을 뚫고 점차 밝아졌고 선로와 바퀴의 금속 마찰음이 선명해졌다. 이윽고 지하철이 승강장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지하철의 출입구가 열리자 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보였다. 일부 사람이 지하철에서 내려 빈 공간이 만들어졌으나 더 많은 사람이 지하철에 탑승하면서 조금이나마 여유로웠던 공간은 금세 사라졌다. 다음 지하철을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이 지하철로 무리하게 들어오면서 앞사람을 밀었고 다닥다닥 붙은 사람들은 도미노처럼 이어지며 차례차례 밀렸다. 그 와중에 온몸에 힘을 주어 두 다리를 떼지 않은 채 굳건히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도 있고 자연스럽게 휩쓸려 밀려나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출입문 안쪽 양옆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배수의 진을 친 장수처럼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출입문이 닫히고 지하철은 다시 짙은 어둠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속도를 내기 시작하는 복잡한 지하철과 대조적으로 승강장은 고요하고 평온했다.
<일기>
나는 30분이면 승용차로 출퇴근할 수 있다. 출퇴근의 교통비는 대중교통과 차이가 나지 않으며 걸리는 시간도 같다. 승용차는 개인적인 공간의 아늑함과 다양한 편리함을 제공한다. 추운 겨울에는 좌석의 열선과 온풍으로, 더운 여름에는 좌석의 송풍과 냉방으로 쾌적한 환경 속에서 이동할 수 있다. 비가 내리거나 눈이 오는 날씨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옷차림도 거추장할 필요가 없고 번거롭게 물건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무거운 물건도 언제든 실어 나를 수 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을 때에도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일을 마치고 가까운 교외로 나가 흥겨운 음악과 함께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반면에 지하철은 승용차의 모든 장점을 누릴 수 없다. 대중교통의 최대 장점은 운전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점인데 만원인 버스와 지하철에서는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마스크 없이 기침을 계속하는 사람, 큰 소리로 영상을 시청하는 사람, 통로를 막은 사람, 다른 사람의 불편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 무례한 사람 등 출근부터 정신을 피로하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앉지도 못한 채 목적지까지 왕복하면서 발생하는 신체적 피로도 결코 빠질 수 없다.
환경을 위한 목적 외에 대중교통이 가져다주는 이점이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지금까지 이어온 또 하나의 습관 때문이다. 건강을 위해 많이 걷고 움직이는 것. 그러나 차라리 신체적, 정신적으로 나를 고갈시키는 대중교통 이용을 그만두고 따로 운동하는 편이 나의 건강을 향상시키는 더 나은 지름길이라고 느낀다.
그런데 대중교통이 안기는 불편함과 불쾌함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대중교통을 계속 이용하게 되는 것은 내가 속한 사회 구성원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내 주변 사람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는 호기심. 또 호기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욕구. 잘 모르는 사람과의 만남, 눈 맞춤, 가벼운 어깨 부딪힘, 다양한 사람을 관찰하면서 드는 생각들이 무언가 나의 존재를 확장시키고 어딘가 연결되는 느낌이다. 이미 많은 인연과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어 외롭다고 느끼지 않음에도 본능적으로 공동체라는 안정감을 추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공동체 속에서 염증을 느끼고 고립을 선택하지만 또, 고립 속에서 다시 공동체를 갈구하는 인간의 욕구가 반복적으로 이어지며 끝없는 내적 갈등에 놓인다.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순간, 승강장에 질서 정연히 줄 맞춰 서 있는 순간, 지하철의 공간을 함께 채우고 있는 순간에서 비언어적 소통으로 소속감이 형성되는 것은 아닐까? 너무 익숙한 나머지 비언어적 소통에 무뎌져 자기 욕구에만 민감하고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건강한 고립과 행복한 소통의 지혜를 얻기 위해 고독의 사색과 사유로 성찰할 수 있는 태도를 갖추려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 '자기 자신을 소유하는 특권을 위해 치르는 대가는 아무리 커도 지나치지 않다.'라는 말과 유교 사상에 등장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뜻을 되짚으며 바람직한 개인적 성장, 그리고 사회적 확장을 통해 타인의 삶을 고민할 수 있는 여유를 갖추면 좋겠다. 그런 여유가 함께 모여 있는 곳에서 향기롭게 흩날리기를...
<프리드리히 니체, 1844-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