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습관을 넘어
방은 깨끗했다.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요리용 가스레인지 위에는 냄비가 하나 놓여 있었고, 그 곁에는 법랑 컵이 하나 있었다. 선반 위에는 접시 두 개, 유리컵 두 개, 나이프와 포크와 스푼이 각각 두 개씩, 그리고 티스푼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침대보가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하게 당겨진 침대, 바닥의 리놀륨 깔개, 책상, 의자, 옷장, 세면대, 그리고 문 곁에 서 있는 칸막이. 이 가구들은 지난 24년 동안 한 번도 그 위치가 바뀌지 않았다.
<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소설의 주인공 조나단 노엘은 자신의 작은 방을 질서 정연하게 관리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그의 방에 가볼 수는 없지만 그의 작은 방을 실제로 목격한 것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작은 방의 문은 다소 낡았지만 특유의 허술함 속에서도 오랜 세월을 견딘 단단함이 묻어 있고, 수없이 위아래로 움직이며 느슨해진 손잡이가 꽤나 잘 관리된 유물처럼 적당한 세월이 묻은 채 자연스럽게 문에 달려 있다. 차가운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금속이 부드럽게 마찰음을 일으키며 미끄러지다가 어느 순간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맞물렸던 금속이 서로 자유로워지며 문이 열린다. 적당한 빛이 쏟아지는 방안은 오랜 세월의 손때가 묻은 가구와 물건이 어느 것 하나 어색하지 않게 어우러지며 반듯하게 놓여 있다. 물건들은 단지 제자리라는 위치만 지정된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부여한 특정 방향성까지도 갖추었다. 법랑 컵의 손잡이가 언제나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과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아이들의 생활공간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어떤 놀이에 흥미를 갖고 놀다가도 금세 놀이에 싫증을 느끼거나 순식간에 주의가 다른 곳으로 옮겨 붙으며 머물던 공간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놀잇감이 언제든지 손에 잡히는 난장판이야말로 최고의 놀이터이다. 어쩌면 잘 정돈되어 있는 상황이 그들에게는 가장 불편한 공간 배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수선한 공간 속에서 필요한 특정 물건을 찾기가 더 어렵고 이동에 불편이 따른다는 점을 점점 깨닫게 되며 그간 훌륭한 놀이터라고 생각한 난장판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때 부모나 어른이 반복적으로 어지럽혀진 공간의 불편한 점을 상기시키고 정돈의 당위성을 알려주면서 정리 정돈의 습관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주변을 정리하고 정돈하는 습관에서 세심함이 큰 차이를 만든다. 책상 위에 책을 올려 보관하는 것과 책상 위에 책을 어떻게 올려 보관하는 것의 차이다. 단지 책이 책상 위에 올려져 있으면 되는 상태와 책의 방향과 위치까지 설정되어 올려진 꼼꼼한 상태가 다르다는 뜻이다. 전자는 정신적으로는 조금 덜 피곤하고 후자는 작은 부분까지 신경을 쓰니 정신적 에너지가 많이 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습관으로 굳어지기 전까지만 정신적 피로도의 차이가 발생할 뿐, 한 번 습관으로 굳어지면 그 차이는 의미가 없어진다.
자신뿐 아니라 함께 사는 가족, 더 나아가 주변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가장 기본 소양 중 하나는 세심함일 것이다. 세심함이 몸에 익어 습관이 되면 센스로 나타난다. 센스는 단지 재치와 번뜩임이 아니라 수많은 상황 속에서 쌓여 사회화된 섬세함이다.
물론 개인적 섬세함이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로 무조건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조금 각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따뜻한 인류애와 타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개인주의의 무관심함에 묻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을 아닐까?
<파트리크 쥐스킨트,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