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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조 Oct 20. 2024

사랑에서 찾아오는 고통 2

식어버린 마음

사랑은 따뜻한 봄날 바람을 타고 흐르는 꽃내음과 같다. 꽃이 핀 것도 모른 채 나선 길에서 꽃내음을 맡고 꽃이 피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이다. 우리는 마음에 자리 잡은 사랑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정성스럽게 자라나 꽃을 피우도록 한다. 하지만 정작 꽃이 만개하여 꽃내음을 퍼뜨릴 즈음에야 비로소 사랑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나 싶다.


꽃내음을 향기롭게 내뿜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에 꽃조차 피우지 못한 사랑에 대해 잠시 언급하려 한다. 누군가에 대한 호감은 따뜻하고 포근한 아기 요람과 같아 그 순수한 존재를 감싸는 느낌으로 마음을 둘러싼다. 이 축복받은 마음은 무척 강한 힘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매우 여려서 아주 작은 상황에도 찢기거나 시들거나 혹은 말라비틀어진다. 강하고 순수하며 견고해 보이는 보석은 사실 너무나도 깨지기 쉬운 유리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이처럼 조심스럽고 순수하게 가꿔야 할 사랑을 자의, 또는 타의로 솎아내기 해야 할 때가 있는데 이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음가짐과 사고방식 등 내부환경의 요소와 외모와 재산, 가족 등의 외부환경의 요소가 우리의 사랑을 방해한다. 사랑의 마음을 가꾸는 것은 오로지 자신만이 해야 하는 일이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스스로를 돕지 않기도 한다. 마음의 상처를 덜 입기 위해 사랑이 더 자라기 전에 뿌리 뽑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랑이 자라면 자랄수록 이를 뽑아내는 고통은 가중된다. 사랑은 가꾸지 않아도 무럭무럭 자라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미 꽃봉오리가 맺혀 향기를 뿜어낼 때가 되어서는 마음이 더 아플 수밖에 없다.


사랑은 꽃을 피워 향기를 뿜어내는 순간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다. 줄기를 더 높이 멀리 뻗어 잎을 많이 내놓은 것은 결국 꽃을 피우기 위해서였다. 형형색색 자태를 뽐내며 활짝 피어난 꽃으로 사랑의 시작을 알리면 그 향기가 눈빛과 행동, 말로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온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지그시 바라보는 눈빛은 얼마나 애절할 것인가! 또한 그 손짓과 배려의 행동들은 어떻고! 온갖 아름다운 언어와 목소리로 사랑을 속삭이는 입술은 생동감이 넘칠 것이다. 두 향기가 한데 모여 섞인다. 널리 퍼지며 향이 옅어질 만도 하지만 오히려 더 짙은 향으로 기분 좋은 봄바람처럼 가슴에서부터 온몸 구석구석을 훑고 지나간다. 이것이야말로 마음을 온기로 가득 채운 봄의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짙은 사랑의 향에 설렘과 흥분이 따른다.


두 사람의 몸과 마음을 휘감은 온기와 사랑은 두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고 주변으로 퍼진다.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사랑의 온기와 에너지는 머물렀던 자리에 고스란히 남아 따뜻한 사랑의 잔상을 남긴다. 주변의 사람들이 사랑을 느끼고, 심지어 그곳을 스쳤던 바람, 주변의 풀, 발밑의 낙엽조차도 온기가 깃든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두 사람이 만들어낸 사랑의 향기가 은은하게 퍼져 주변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물들이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두 사람의 눈빛과 표정, 행동이 공간에 따뜻하게 새겨진다.


이렇게 아름답고 따뜻한 사랑도 큰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니, 사랑의 온도가 낮아지는 것, 꽃내음이 더 이상 뿜어져 나오지 않는 것이다. 강한 향기로 남을 것 같았던 향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잔향을 남기며 흩어진다. 향기에 무뎌진 코는 더 이상 같은 향기를 감지하지 못한다. 서로에게 충만한 시간이 점차 줄어드는 느낌이 든다. 함께 있기만 해도 다채로운 색이 펼쳐지던 시간이, 무채색이 더해지며 탁해지거나 단조로워진다. 반짝이던 눈동자는 생기를 잃어가고 미소는 부자연스러워진다. 무엇이 따뜻했던 그들의 온기를 빼앗는단 말인가? 누가 영원할 것 같았던 두 사람의 향기를 거두어들였단 말인가?


사랑의 향기를 내뿜는 시점이 제각각이듯 내뿜는 향기가 멈추는 시점도 제각각이다. 사랑의 온기가 넘치던 마음이 주변까지 따뜻하게 만들었는데 어느 순간 식어버린 온기에 스스로가 당황한다.


온기를 잃어가는 자신의 마음을 괴롭게 바라보아야 한다. 아직도 마음이 따뜻한 상대를 만날 때 식어버린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 사랑했던 사람을 가슴 아프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지어지지 않던 미소를 애써 지으며 눈을 맞추면 미안한 마음이 가슴을 짓누른다. 자신을 바라보는 상대의 애정 어린 눈빛이 질책으로 느껴진다. 손을 포개며 감싸 쥐려는 움직임도 마음이 괴롭다.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때, 되돌려주어야 하는 같은 말에 죄책감을 느낀다. 입맞춤이, 숨결이, 따뜻한 체온이 모두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온기를 잃어가는 상대를 마주하는 일은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이다. 눈빛이나 말, 행동으로 상대방의 마음이 식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몇 번은 삶의 피로와 성격, 오해로 받아들이며 넘어갈 수 있다. 그 몇 번도 마음은 불편하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더 이상 반짝이지 않거나 입가에 띄운 미소가 어색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갈라져 틈이 느껴진다면, 그래서 외로움이 느껴진다면 불안하고 괴롭다. 사랑한다는 말이 되돌아오지 못한 채 흩어지거나 마지못해 사랑한다는 말을 뗀 떨리는 입술을 본다면 고통이다. 눈을 피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머물고 있는 그 시간은 영원히 기억하고 싶지 않을 기억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단단하고 견고할 것 같던 사랑은 깨지기 쉬운 유리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사랑을 갈망한다. 뜨겁게 사랑하고 행복하고 상처받는다. 세상을 더 이상 딛고 설 수 없겠다 싶을 만큼의 괴로움 속에서도 겨우 몸을 가눈다. 그리고 또 사랑을 꿈꾼다. 왜 이 고통의 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진: UnsplashTom Pumf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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