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일상을 위한 당연하지 않은 노력
추석이 돌아왔다.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할 수 있는 추석이 돌아왔다.
코로나19로 인해 각자 추석을 보내는 방식은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백신 접종도 속도를 내면서 점차 일상의 모습으로 복귀하고 있는 듯하다. 명절이면 모든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밥을 먹으며, 가족끼리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곳으로 기나긴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추석의 의미는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어왔다.
추석(秋夕)은 '가을 저녁'이라는 의미로 달이 밝은 좋은 명절을 뜻한다. 농경사회에서 비롯된 추석은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대가족이 한데 모여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오랜만에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는 날로 변화하였다. 최근에는 가족의 형태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모하고,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과거의 전통, 관습, 관행이 모두 바뀌었다. 비대면으로 영상을 통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거나, 추석 연휴 기간을 활용하여 각자의 니즈(needs)에 맞게 자유로운 활동을 계획하고, 휴식을 취한다. 사회 구성원의 인식이 달라지고 '추석'을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변화하면서 '우리가 항상 그래 왔던 것'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추석'이라는 귀한 시간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았으면 한다.
'행복총량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인생 전반에서 행복의 양은 정해져 있기에 지금 힘들고 불행하더라도 그 고통을 이겨내면 행복이 다가올 것이라는 의미이다. 사실 '행복총량의 법칙'은 개인의 인생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전체에 적용될 수 있다. 우리가 추석 연휴를 통해 엄청난 행복을 누리는 대가로, 어디선가 우리의 행복을 위해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을 하며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추석에 가족들과 짧게나마 만나서 인사할 수 있는 것은,
가족과 여행을 떠나 지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집에서 편하게 누워서 나만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 기간에도 507개의 응급실은 평소와 동일하게 24시간 진료를 한다. 추석 당일에도 보건소를 포함한 코로나19 선별 진료소도 정상적으로 운영된다. 무려 235개의 공공보건의료기관과 6525개의 민간의료기관, 6352개의 약국, 564개의 선별 진료소 및 임시 선별 검사소가 추석 연휴 동안 문을 닫지 않는다.
소방서나 경찰서에도 언제나 그렇듯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CCTV를 바탕으로 특별 경계근무를 실시하고, 혹시 모를 화재를 막기 위해 24시간 상시 대기한다. 또한 추석 연휴 기간 많은 사람들이 집을 비우기 때문에 혹시 모를 빈집털이 예방을 위해 경찰 또한 순찰을 강화한다.
추석 연휴라고 해서 지하철이 멈추거나 버스가 운행하지 않는 일은 없다. 우리의 편리한 이동을 위해 언제나 똑같은 시간 간격으로 지하철은 강남역을 지나가고, 20분마다 버스는 서울역에서 승객을 태운다. 사람들의 귀성길을 책임지는 KTX 및 SRT 등의 고속철도도 바쁘게 운영된다.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해바라기센터와 가출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쉼터를 비롯한 여성긴급전화, 가족상담전화도 상시 운영된다. 평소와 다름없이 24시간 청소년 상담전화를 운영하여 청소년 안전에 만전을 기하며, 연휴 기간에도 출근하여 아이를 돌보기 어려운 가정을 위해 추가 요금 가산 없이 아이 돌봄 서비스도 진행된다.
해외에서는 군인들이 태극기를 휘날리며 강력한 안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국격을 든든히 하고 있다. 최근 문무대왕함의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인해 청해부해로 임무 교대한 충무공이순신함 장병들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지원활동을 펼치는 한빛부대, 아랍에미리트와 군사 협력을 위해 현지에 파병된 아크부대, 레바논에서 유엔평화유지 활동을 하는 동명부대 등 지구촌 곳곳에서 제각기 다른 임무를 맡아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가 함께 쉬고, 즐겨야 하는 '추석'에도 자신의 위치에서 맡은 업무를 묵묵히 해 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마음 편히 추석 연휴를 보낼 수 있다.
이번 연도의 시작부터 우리는 너무나 빠르게, 앞만 보며 달려왔다. 마치 경주마처럼 스스로의 일에만 집중해서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의 '나'가 되려고만 노력했다.
벌써 9월이 끝나가고 10월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맞이하여 이제 경주마의 눈가리개를 벗어던지고, 우리 주위의 이웃들을 바라볼 시간이다. 나도 모르게 자신의 위치에서 꿋꿋이 버텨 왔던 소중한 이웃의 노력을 존중하고, 그들을 배려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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