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느리지만, 괜찮아요.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는 하나는, 바로 접근이 좋으면서 수준이 높은 의료 시스템이다. 반대로 미국은 비싸고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데, 복지가 좋다는 캐나다는 과연 어떨까? 지난 글에서도 조금 소개되었듯, 캐나다의 의료는 한국과 다르고 또 미국과도 다르다. 만 3년이 지난 이민자로서 나는 전반적으로 캐나다 의료에 만족하는데 오늘은 신생아와 영아에 대해 초점을 맞춰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캐나다는 주마다 시행되는 시스템이 다르므로 아래 글은 철저히 BC주와 나의 개인 경험에 기반한 내용이다.
MSP는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과 비슷한 것으로 MSP가 있다면, 기본적으로 필요한 치료를 하는 데 비용이 들지 않는다. 나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출산 후 치료 및 각종 검사와 예방 접종 모두를 무료로 받고 있다. 반면, 처방받은 약 혹은 필수가 아닌 추가 검사/처치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비용이 든다. 특히 추가적인 검사/처치는 내가 원한다고 모두 받을 수 없고 실제로 의사를 보기까지 많이 기다려야 한다.
# 가정의와 전문의
한국은 집 앞 상가에 피부과, 안과 등 병원이 있어 필요할 때마다 방문해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캐나다는 가정의와 전문의(Specialist)가 분리되어 있는데, 가정의는 한국으로 치면 가정의학과로 보면 된다. 가정의가 우선 진료를 먼저 보고 전문의와 함께 전문적인 검사나 치료가 필요한 경우 의뢰(Referral)를 보낸다. 병과 증상의 경중에 따라 전문의를 보는 시간은 달라지는데 일반적인 염증, 고통 등은 1~2달이 기본이다. (...)
가정의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내가 필요할 때마다 방문하는 Walk in Clinic과 우리 가족을 전담하는 가족주치의(Family doctor)가 있다. 개인적으로 임신을 계획하거나 자녀가 있다면 가족주치의를 만들 것을 강력 추천한다. 후에 서술하겠지만 아이의 건강 상태뿐 아니라 발달 상태까지 체크해 주고, 추가 검사나 치료가 필요할 때 전문의로 연결도 훨씬 쉽게 해 준다.
# 임신하셨어요?
집에서 임신테스트기로 임신을 확인했다면, 그다음엔 무엇을 해야 할까? 한국처럼 산부인과를 바로 찾아갈 수 없다. 가족주치의나 Walk in Clinic을 방문해 임신한 것 같다고 이야기하자. 그럼 임신을 확인하기 위한 피/소변검사와 8주 초음파 검사를 잡아줄 것이다. 캐나다는 특별한 이슈가 없는 경우, 40주 임신 기간 동안 8주 차와 20주 차, 총 2번 초음파를 한다. 원하는 경우 사설기관에서 비용을 내고 초음파 검사를 할 수 있으나 비용이 상당하니 추천하지 않는다. 중간에 아이가 잘 있는지 궁금하다면 아이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계를 개인적으로 구입하도록 하자.
만 35살이 지난 산모라면 12주경 기형아 피검사, 목 투명대초음파(NT)를 무료로 해준다. 35세 이하인 산모인데 기형아 검사를 받고 싶다면 가정의와 상의해 보자. 의사에 따라 가족력도 없는데 왜 하냐고 안 해주는 의사도 많다고 한다. 피검사와 NT검사에서 이상소견이 나온 경우 정밀 검사를 진행한다. NIPT는 피검사로 하는 기형아 검사인데 다른 검사보다 정확도가 높은 대신 개인의 선택으로 진행한다면 $500 정도의 비용을 지불한다. 나는 남은 임신기간 동안 마음 편히 지내고 싶어 사비를 내고 NIPT검사를 진행했고, 만족했다. 이후 기본적인 임신당뇨 검사도 주수에 맞춰 진행해 준다.
# 산부인과 전문의, 산파 중 하나를 선택하세요.
임신 초기가 지날 무렵, 가족주치의는 산부인과 전문의(OB)와 산파(Midwife)중 어떤 것을 골라 출산을 할 것인지 물어봤다." 네? 선생님과 같이 가는 거 아니었나요.. 그게 뭐죠?" 대부분의 가정의는 임신 초기 기본적인 검사를 도와주고 이후는 부인과를 전문으로 하는 기관에 넘긴다.
산모에게는 두 가지 옵션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의료적으로 문제가 없고 초산인 경우에는 산파를 추천한다. 산파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출산 전문인으로 임신과 출산에 대해 다양한 정보도 주고 질의응답도 적극적으로 해주며, 다양한 분만에 대해 소개해주고 도와준다. 분만은 집, 분만 센터 혹은 병원에서 진행되는데 기관의 경우 산파와 연계된 곳이 있으니 가까운 병원과 연계된 산파를 구하는 게 좋다. 3주에 한 번씩 산파를 방문해 아이 심장 소리도 듣고 혈압 등 기본적인 검사를 한다. 아, 출산 전까지 아이의 몸무게나 크기를 재지 않으니 기다리지 말자. 줄자로 배 둘레와 길이를 재는 것이 전부다.
산파와 진행하더라도 산부인과 전문의를 보는 경우도 있는데, 나의 경우 33주 차가 지나서도 아이가 역아라 산부인과 전문의를 보게 되었다. 역아 회전술에 대한 옵션을 알려주었으나 내가 거절했고,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 수술 날짜를 잡았다. 산파의 입장에서 병원의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산부인과 전문의에 연결해 준다. 양수가 터져 응급으로 아이를 낳을 때도 시작과 끝에 모두 산파가 있었고, 출산 후 집에 방문해 아이를 기르는 환경도 점검해 준다.
# 출산
출산은 지난 글에서 조금 언급했지만, 병원의 경우 자연분만은 1박 2일/ 제왕절개는 2박 3일 입원을 한다. 비용은 역시 무료. 특히 내가 지낸 병원은 무조건 산모에게 1인실을 지급하는 병원이라 편하게 회복할 수 있었다. 무료인 대신 기부를 받는데,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보험(extended health benefit)이 있는 경우 병원에서 보험사에 일부 비용을 청구해 받을 수 있어 나의 의사를 물었고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 예방접종
한국의 보건소와 같은 health unit에서 예약을 잡아 받을 수 있다. 한국처럼 개월수별로 맞아야 하는 백신이 정해져 있고 문자로 알림을 받을 수도 있다.
# 발달 점검
가족주치의가 있다면 주기적으로 아이의 발달을 점검하고 우려 사항을 상담할 수 있다. 추가적으로 소아과 전문의나 다른 과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한 경우 연결해 주기도 한다. 한국과 같이 대근육, 소근육, 언어 등의 전체적인 발달과 식사에 대한 점검도 해주니 반드시 받는 게 좋다.
# 응급실
아이가 해열제를 먹어도 열이 안 내리는 등 아픈 경우, 응급실을 방문하게 된다. 응급실 또한 MSP가 있으면 무료이고, 아이가 어릴수록, 상태가 좋지 않을수록 빨리 진료를 해주니 참고하자. 운이 나쁜 경우 몇 시간을 기다리기도 한다.
캐나다 의료는 전반적으로 필요한 치료, 재활, 공중보건, Home care health, 장기 요양에 강하고 조기 진단에 굉장히 취약하다. 특히 구하는 자를 구하는 시스템인데, 즉 내가 끊임없이 요청해야 진료나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캐나다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답답할 때는 아이가 아픈데 바로 병원을 갈 수 없을 때다. 응급실을 가도 특별한 증상이 나오지 않으면 진단도, 검사도 해주지 않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강하니 2~3일 지켜보고 특별한 증상이 나오면 다시 응급실을 가도록 하고, 혹 조금이라도 특별하게 생각되면 엄마의 촉을 믿자. 응급실이나 가족주치의에게 강력하게 이야기해 검사를 받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