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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은성 Dec 13. 2020

제목을 입력하세요.

항상 설레이는 문구.

'제목을 입력하세요.'

적혀있는 문구가 나를 설레게 한다.

언제부터였는지 내 생각들을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다. 웬만한 한국인들은 하지 않던 외국인이 가득했던 페이스북 초창기에도, 트위터 붐이 일었을 때도, 싸이월드 비밀게시물부터 시작하여 친구들에게 '감성충'이라는 수식어를 얻곤 했다. 편하게 또는 짧게 세상에 대한 생각들과 인생살이들을 적어내곤 했다. 


나 혼자만의 특별한 생각이라고 생각했는데 브런치 작가가 되고 보니 나보다 훨씬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도 글을 잘 쓴다는 것을 알았다. 예전에는 편하게 죽죽 써내려갔다면 지금은 설레지만 힘든? 

극세사 이불은 덮으면서 문은 열어놓고 있는 겨울 같은 느낌이랄까.


초등학생 때,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아닌 두께가 두터운 핸드폰이 가득했을 때 일이다.

지금은 웹 상에서도 손쉽게 만화책이나 글을 읽을 수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만화책방이 꽤나 많았더랬다.

엄마가게 옆에 '비디오클럽' 이라고 하는 만화책방이 있었다. 나는 그 곳에 붙박이였다.


만화책은 하루에 수십권을 읽어대고 신작을 기다리는 꼬마아이였다. (가끔 연체가 되어 몰래 수거함에 넣어두고 시간이 좀 흘러 가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멜로부터 스릴러물까지 말 그대로 장르 불문이였다.

19금 딱지가 붙은 만화가 궁금해 힐끗 거리기도 했고 희대의 로맨스 물인 궁, 다정다감, 꽃보다남자는 두 세번씩 반복해 읽기도 했다. 빌려가서 보기도 했지만 그 자리에 서서 몇시간이고 책을 골라 읽기도 했다.

괴짜가족, 도라에몽, 코난 대표적인 일본만화들을 좋아하기도 했고 무서운걸 못보면서도 이토준지의 소용돌이는 왜 그렇게 봐댔는지. 그 날은 꿈에 키리에(여주인공. 무섭게 생김.)가 나오는 날이다. 


그렇게 만화책만 보다가 중학생이 된 내가 만난 책은 귀여니의 '늑대의 유혹'.

그 당시만 해도 소위 말하는 인소. 인터넷 소설이 한참 유행을 일으켰다.

글이 많은 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인소 빠순이가 된 것. 귀여니의 신작을 기다리는 광팬이 되었다.


그놈은 멋있었다, 도레미파솔라시도, 내 남자친구에게, 아웃싸이더, 신드롬 등등.. 진짜 많다.

거의 다 본것 같다. 나오는 족족 봐댔으니.

공감력이 매우 높은 나는 소설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되어 울고 웃고 책을 끼고 살았다.

특히 좋아하던 이모티콘 -0-. -_-^. 요새도 사실 가끔 쓴다. 아날로그 감성이랄까 ^0^


다음카페에 인터넷 소설을 연재하는 카페가 있었는데 책으로 출간 하지 않아도 어느정도 등급이 되면 소설을 쓸 자격이 주어졌다. 열심히 등업신청을 하고 활동을 해서 드디어 소설을 쓸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그 당시 내가 잡았던 컨셉은 귀여니 소설에 한참 빠져있었을 때라, 제목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약간 

[ 왕자님에게 ] 뭐 이런. 뻔한 로맨스 물이였던 듯? 


그래도 나름 나만의 소설이였다. 컨셉은 유행을 따랐어도.

이모티콘 쓰는 것도 재밌고 매일 솟아나는 아이디어에 말도 안되는 소설을 지어 썼는데 신기하게도 매니아층이 생긴 것! 나에게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팬들이 생겼고 이메일로 다음화는 언제 나오냐며 회신이 오기도 하고 주인공은 어떻게 되는거냐며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일주일에 한번씩 연재를 했었는데 마음이 급해지니 그 요일이 꼭 마감일 처럼 느껴지고 부담감은 쌓여갔다.

부담감이 생기다 보니 글은 더욱 안써졌다. 이런 마음을 중학교 때 느끼다니. 

생각해보니 난 이미 중학교 때 '작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나를 작가라고 생각하며 카페에서 글을 쓸 때의 설레임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내가 과연 작가 자격이 있을까? 예전과 다르게 작가의 진입장벽이 조금 낮아지면서 작가들이 많아지는 추세이지만 내 생각을 적는 나 같은 사람이 작가를 할 수 있을까?


글을 적다보면 그때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 구두를 몰래 신고 집 안에서 이브의 모든 것이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을 따라하던 나.

인터넷 소설과 만화책에 빠져 밥도 안먹고 보던 나.

SES의 꿈을 모아서 안무를 외워 노래를 부르던 나.

싸이월드 또는 트위터에 수많은 글을 쓰던 나.


과연 나는 무엇을 하며 살까.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늘 머릿속에 있던 생각인데 내 인생은 아직도 미완성이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해라.

꿈을 쫓아라.

잘하는 일을 해야한다.

그래도 직업은 잘하는 일을 택해야지.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 순 없어.


사회에 여러가지 요구와 환경과 나의 불안감이 합쳐져 30대가 되었다.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니었지만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도 이제는 알게 되었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 없는 것=인생

이라는 공식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내 자아를 들여다 볼수록 내가 잊었던 나의 어린시절과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평소에도 생각이 많은 편인데 시간이 많다보니 생각은 더욱 커져간다.


오늘은 엄마와 함께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김은희 작가님 편을 보는데 나에게 물었다.

"계속 글 쓰고 있니? 엄마는 너가 작가가되면 참 좋을거 같아."


나의 30대는 어떨까,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까.

어떻게 살아야할까. 40대는 어떠할까. 그때까지 살 순 있을까?


꾸준히 습관처럼 무엇인가 오래 하다보면 빛을 본다는 말을 믿는 편이다.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글이나 음악이나, 나에게도 기회가 있겠지?


지금 브런치 작가가 되어 마음껏 글을 쓸 수 있는 것처럼.

나에게 첫 구독자가 생겼을 때, 첫 라이킷이 눌렸을 때, 첫 댓글이 달렸을 때.

모두를 소리지르며 기뻐하고 캡쳐해두고 본다.

아직도 나에게 작가 라는 말이 설레인다. 


싸이월드 감성충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도 마음껏 글을 쓸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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