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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뮤지엄을 가다

세상에는 의미 없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

by 오성진

연필이라고 하면 한물간 필기도구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나에게

연필뮤지엄이 있다는 소식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늘 사용해 왔던 필기도구로서 단순하기 그지없을 것 같은 물건의 뮤지엄이 있다는 사실.


이번에 동해안을 다녀 올 계획에 반드시 가보아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연필의 숙명.jpg

전시실을 들어갔을 때, 이 글이 마음에 스며들어왔습니다.

연필의 숙명이 소멸이라니......

다양한 연필에 관심을 가져 보았지만,

연필의 숙명이 소멸이라니.....

가슴을 때리는 말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연필처럼 기록을 남기고 사라지는 것이라는 말.

전시실.jpg

전시실에는 연필로 그린 유명인들의 캐리캐쳐가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 번은 본듯한 그림들이었지만

오늘은 새로운 시각으로 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작가의 마음에 새겨진 피사체가 된 사람들의 특징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캐리캐쳐들이었는데,

공감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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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커피원두 분쇄기처럼 보이는 이 기계는 1885년에 만들어진 램슨사의 연필깎기입니다.

연필깎기를 이렇게 정교한 기계로 깎는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솟아나는 생각은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연필이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느껴졌습니다.


쥬피터2.jpg


연필깎기라고는 도저히 생각이 되지 않는 이 기계.

자세히 보니 연필을 꽂는 곳도 있고,

연필이 깎이고 나오는 나무 부스러기와 흑연을 받는 그릇까지 달려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필기도구와 관련된 기구들 중에

이렇게 정교하고 품위 있게 만들어진 것이 있을까요?


연필과 함께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그분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은 철학자들이 이야기해 온 것이 무슨 뜻이었는지가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강병인.jpg


"기술이 발전해 어쩌면 필기도구조차 스마트하게 대체되는 시대‘나는 더 거꾸로 거꾸로,
시간을 거술러 가는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사각사각 연필을 깎고
드르륵 먹을 갈고
찹찹 붓을 씻고.‘


김현.jpg


"10년은 해야 일하는 법을 배우고, 20년은 해야 제 몫을 하기 시작합니다. 30년은 해야 괜찮게 한다고 할 수 있고, 40년은 해야 꽤 많이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50년은 해야 자기만의 세계를 열었다고 할 수 있고, 60년은 해야 정말 잘하는 경지에 다다르겠지요"

“아무리 힘들지언정 스스로 ‘힘들다’고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배부른 투정 부리지 말고,
쉽게 하려고 생각지 말아야 해요. 쉽게 한 공부는 빨리 잊어버리죠. 저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공모전 당선을 두고 천재니 뭐니 하는데 쓸데없는 말입니다 35번이나 떨어진 놈이 무슨 천재인가요.
제 디자인 인생은 성공이 아니라 생존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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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사람은 지우개 달린 연필처럼
끝없이 쓰고 지우고 또 그 위에 새 글씨를 쓴다.
평생 쓰고 지우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 인생이다 “


이어령선생님의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젊은이들에게

“진리는 하나가 아니다.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입장도 하나가 아니다. 이렇게 곁눈의 시각을 강조하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면을 꽉 채우는 , 가장 효율적인 것이 연필의 육각형이다.


옛날에는 축구 골네트를 네모나게 짰다. 어망처럼. 지금은 전부 육각형인데, 그게 실이 제일 적게 든다.

평면을 메울 때는 육각형이 가장 효율적이고, 거리를 잴 때도 그게 제일 좋다. 동그란 것도 아니고 네모난 것도 아닌 그 균형, 가장 이상적인 걸 찾다 보니 육각형이 되었다.

여섯 개의 각, 육각형의 연필.

세모와 네모처럼 각이 진, 편협한 사고가 아니라 원과 사각의 사이에 있는 안정적인 육각형의 다양한 시각을 강조하는 ‘연필을 닮아야 한다 “


에필로그

연필을 보러 갔던 나에게 삶을 보게 만든 시간이었습니다.

무의미한 것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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