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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진 Jun 21. 2024

오늘의 시작

허락된 축복의 시간

글을 써 나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쉽지 않다는 것은, 얻을 것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편하고 싶어 하지만, 그 속에 빠져 들면 게을러져 가는 것이 본성이라서

쉽지 않은 일을 한다는 것은 삶을 더욱 건전하게 만들어 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 내 기억으로는 1964년경 쯤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당시의 모니터 브라운관은 9인치였고, 채널(찬넬)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둥그런 다이얼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래도 불편함을 모르고 화면에 나오는 영상을 보면서 즐거워했습니다.

채널이 늘면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자, 서로 보고 싶은 방송을 보려고 작은 다툼도 생겼습니다.

집에 오로자 한 대 밖에 없는 텔레비전이었기 때문이죠.


1982년 무렵에 컬러텔레비전이 보급이 되기 시작했고, 화면의 크기도 20인치로 커졌습니다.

채널의 선택은 버튼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때에도 텔레비전은 집에 한 대 정도였습니다.

거실이라는 독립된 공간이 아직 보편화되지는 않았고

마루 바닥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시청해야 했기 때문에

누워서 시청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리모컨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소파도 보편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소파에 기대서 리모컨으로 채널을 선택하는 시대가 된 것이죠.


그때부터 삶의 모습들이 많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채널 수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전 세계로부터 감당하기 힘든 새로운 정보들이 각 집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몰라도 전혀 문제가 안 되는 정보들입니다)


비스듬히 기대어 보기 시작하다가 서서히 소파에 눕기 시작합니다.

이 채널이나 저 채널이나 모양만 다를 뿐 내용은 별 차이가 없는 것들이 선택을 어렵게 합니다.

10초도 되기 전에 다음 채널의 버튼을 누르고, 이어서 다음 채널로.......


시간이 흘러서 소파에서 일어나면 어느새 잘 시간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무엇을 했는가 생각을 해 보니, 그냥 살았을 뿐이라는 허탈함이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그리고는 그 마음으로 잠에 빠져 들어갑니다.



아마도 이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거실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으면 아내로부터 소리를 들었습니다.

"무슨 남자가 그렇게 텔리비만 보냐!"

그것이 벌써 20여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텔레비전을 안 보게 되었습니다.

불편한 마음을 품고 말이죠.


그 시간에 책을 읽거나 업무 정리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20여 년을 상아 왔습니다.


당시의 아내의 질책이 나를 불편하게 했지만,

지금은 감사한 마음입니다.


소파에 눕는 일도 없어졌고,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도 나에게는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습관을 떨어 버리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귀한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이 기적과 같은 시간으로서 나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나아가 허락된 특별한 시간입니다.

축복의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의미로 채우기 위해서 오늘도 마음을 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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