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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진 Jun 08. 2024

자존감

누구든지 지금의 자신 보다 나은 모습이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특히 브런치 작가들은 그런 마음이 보통 사람들보다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모습이 나아지고 싶은데, 어떤 모습으로 나아지기를 원하고 있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만

좀 더 경쾌하 자신이 되고 싶겠지요?

누구를 만나더라도 호감을 줄 수 있는 자신.

누구를 만나더라도 가슴을 활짝 펴고 대할 수 있는 성격의 자신

자신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중을 해 주는 사람.


그런데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표현이 되고 있지만

이러한 모습은 아주 간단한 한 마디로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자존감"의 사람


사람들은 자존감과 자존심을 혼동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단어는 전혀 다른 뜻을 가지고 있고

어떤 마음을 가지는가에 따라서 정서 수준이 전혀 달라집니다.


자존심과 자존감


정서라는 것, 영어로 emotion입니다.

이것은 energy + motion -> e-motion입니다.

즉, 에너지의 흐름입니다.

이 에너지의 흐름에 따라서 자신과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도 있고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과 같이 있고 싶습니까?

부담스럽지 않습니까? 자존심 강한 사람과 마주 하고 있으면 말이죠.

자존심은 자기를 중요하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자기 방어적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이 될 때엔 마음에 큰 상처를 입기 쉽습니다.

분노하기 쉬운 마음 상태에 있는 것이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상처를 입기 쉽습니다.

세상 일이 원하는 것보다 원하지 않는 일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존감은 매우 부드럽습니다.

자존감도 자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다른 사람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자기만큼 존중해 주고 싶은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맨 끝자 하나가 다른데도 이렇게 차이가 납니다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은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존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어서

같이 있는 사람이 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정서라는 것은 에너지의 흐름입니다.

가슴으로부터 에너지가 방사되면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대화도 하고 있지 않더라도 

자신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영향의 결과로 자신의 주위의 사람들이 결정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매우 다정다감하셨습니다.

남자 4형제를 키우셨으니 참 고생이 많으셨지요.

아들이 넷이니, 먹이고 입히는 일이 보통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맏아들은 늘 새 옷을 입었고,

둘째인 저는 늘 형의 옷을 물려받았습니다.

아쉽기는 했지만, 그렇게 낡은 것도 아니고 해서 싫지는 않았습니다.


식탁에는 늘 깨소금이 있었고, 멸치 볶음, 감자볶음이 있었습니다.

귀가하시는 아버지 손에는 자주 맛있는 것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우리들 몫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거의 그것을 드시지 않았기 때문에요.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과 다르게 맛있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 입맛이 변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는

아버지 어머니께서 우리들을 위해서 참으셨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깨달음이 참 늦은 저입니다.


워낙 물자가 귀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멋진 옷을 입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스스로 재봉틀로 내 반바지며 상의를 만들어서 입히곤 하셨습니다.

새 학기가 되면 어머니는, 벽에 걸려 있던 달력으로 교과서의 책가위를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책가위는 달력으로 하는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연필로 글씨를 쓰던 시절이라서, 연필칼로 깎아 썼습니다만,

몽당연필이 되면, 연필 뒤에 기다란 막대리를 연결해서 

흑연 봉이 거의 없어질 때까지 연필을 사용하곤 했습니다.


물자가 부족했지만, 정성이 들어간 물건들 뿐이라서 마음은 늘 즐거웠습니다.


지금의 풍요로운 시대보다도 훨씬 행복했다고 굳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나고 나면 좋은 기억만 남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시의 사람들의 정서와 지금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실 때에는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아무런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지냈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말이죠.


두 분의 사랑 덕분에 이만큼 세상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두 분께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많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 마음은 깊이가 더 해 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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