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은 기술사회를 극복하고 서구의 빛인 전깃불 앞에 굴복하지 않는 슬기로운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는 까닭입니다. 그 슬기란 <조화의 재능>이지요. 나는 그것을 관현악의 지휘자 같은 재능이라고 비유했습니다. 서양인들에겐 그것이 없었기 때문에 성벽을 쌓았고 모든 인간의 재능과 슬기를 그 성벽 안에서만 길러왔던 것입니다. 조화가 아니라 성벽에 의해서 인간의 환경을 주위로부터 단절시키려 한 데 그 비극이 있었지요. 성벽은 도시문명을 낳았고 도시문명은 인간의 오만 그리고 조화의 힘이 아니라 지배의 힘을 낳았습니다. 그 궁극에서 얻어진 것이 기술의 발전이었습니다. - 1974년 한국을 방문하기 전 파리 자택에서 이어령 교수와 가졌던 대담” K 스피릿 윤한주 기자 (2016.09.08)
출처 : K스피릿(http://www.ikoreanspirit.com)
의재 허백련의 삶과 예술
우리나라 남종 문인화의 마지막 대가로 유감이 없는 의재 허백련 선생의 일생은 문인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추사 김정희, 호치 허련 등의 옛 문인들을 통해 이어받은 남종화의 전통, 오랜 여행에서 얻은 폭넓은 견문과 두루 익힌 동양의 고전들을 바탕으로, 그는 일찍이 예술가로서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시와 서예, 회화는 서로 구분이 될 수 없는 하나이고, 그 진정성은 격조 높은 정신과 올바른 삶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 문인의 이상입니다. 활달하면서도 힘찬 필묵과 깊고도 맑은 동양사상 부드러운 남도의 풍취와 시적인 ㅎ흥취를 지닌 선생의 작품들은 문인이 지녀야 할 삶의 태도를 고스란히 담아낸 그릇입니다. 그 그릇 속에는 우리 민족이 간직해야 할 건강한 정서도 담겨 있습니다.
의재 선생은 그처럼 올곧은 정신과 비범한 예술혼으로 이미 1920년대에 최고의 남종화로 인정받았습니다. 그것은 출발에 불과했습니다. 의재 선생은 손에 쥔 붓을 더욱 단단히 잡고 한결 고아한 경지에 들었습니다. 그는 세속절인 성공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등산에 계속에 은거합니다. 겸허하고 청빈한 사상가로, 계몽가로 거듭난 의재선생의 살은 건강한 실천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자는 의재 선생의 삼애사상은 그의 삶과 예술이 딛고 있는 흔들림 없는 땅입니다. 그는 차와 그 정신을 알리고 농촌 부흥에 힘쓰면서 농업학교를 설립해 운영하는 한편, 단군의 홍익인간 이념을 널리 전하고자 끝까지 노력했습니다. 한국성이나 문인 남종화라는 말이 그 의미조차 희마한 오늘날, 의재 허벽련 선생의 예술과 삶은 더욱 빛을 냅니다. 아직도 선생의 향기가 가득 고여 있는 무등산 자락에 지어 올린 미술관이 삶과 자연, 학문과 실천, 개인과 사회가 언제나 조화롭기를 바랐던 의재 선생의 생애에 숨을 불어넣는 자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작품은 문인화 팔 폭 병풍 중 포도 그림으로, 의재산인 시기인 허백련 50대 때의 작품이다. 농묵과 담묵을 과감하게 사용하여 힘 있고 분방하며, 함께 쓴 제화 시와 판지 또한 활달하다.
푸른 구름 차가운데 검은 용이 졸고 있어
놓친 구슬 주어 달 아래 돌아오네
의재 허백련이 해서로 쓴 시병풍이다. 여러 시에서 좋은 구절을 골라 적었다.
섬돌 앞엔 의남초를 가득히 심어 두고
방 안에선 장명사를 자주 올리는 도다
소동파 옛 거사를 떠올려 보노라니
간데없는 천축 땅 옛 선생이시로다
보답을 따지지 않고 착한 일을 행할진저
어이 공명 위하여 독서를 시작하리
누대에 찬란한 건 장군의 그림이요
물과 나무 청화함(맑은 꽃)은 복야의 시로세
대붕도 유월에는 한가한 뜻이 있고
선학은 천년 세월 조급한 모습 없네
이 병풍은 규모는 작지만 의재 허백련의 산수화풍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팔 쪽에는 각가 두 폭씩 사계절을 표현하였고, 각 폭에는 풍광에 어울리는 칠언 절구 한 구 씩을 적어 분위기를 나타내었다.
성긴 가지 가로 비끼니 물 맑고 얕아
복숭아꽃이 흐르는 물에는 쏘가리 살찌네
발을 걷고 홀로 안자 황정경을 보네
창을 여니 미불의 산수가 그려져 있네
배 가득 공연히 밝은 달빛만 싣고 돌아오네
몇몇 고기잡이 배그림 소게 숨겨져 있다네
부들 돛배는 근심도 없이 추풍에 떠 가네
모든 나무는 다 꽃이 진 다음이네
1958년에 그린 산수병풍이다. 사계절을 10폭에 나누어 그렸으며, 각 폭에는 그림과 어울리는 화제를 적었다.
제1폭
눈 내린 차운 숲에 매화가 이미 피었는데
갈바람 불어오니 기러기 떼 비껴 나네
계산은 쓸쓸하고 사람자취 없는데도
임포 처사 살던 고 잘도 물어보는구나
제2폭
건너편 산 봉우리들은 비를 만나 싱그럽고
복숭아꽃 피고 물은 따듯해
푸른빛은 더욱 맑다
뉘 집 고깃배가 한가로이 오가는가
봄빛을 실어을 뿐 사람은 없네
제3폭
푸른 산은 첩첩하니 구름은 평풍처럼 보호하며
구른 나무 그늘 깊어 새들은 스스로 우네
가장 좋은 것은 산사람은 한 가지 일도 없어
발을 걷고 홀로 앉아 황정경을 보네
제4폭
안개 빽빽한 나무에 잠기고 푸른 산 어둡네
물결은 긴 하늘에 말리고 흰 새는 돌아가네
가는 비와 빗긴 바람은 도롱이 삿갓 갖추고
낚시질하던 늙은이는 무슨 일로 돌아오는가
제5폭
처와 아이 몇 이서 그물을 펼치니
조각배가 집이고 물이 마을일세
강남도 강북도 그림 같은 산인데
뱃노래 속에 저녁놀 보내누나
제6폭
관청 말을 달려 세상의 번거로운 일 쫒기를
십 년토록 호수와 강을 봄이 다하도록 지났네
푸른 나무 그늘 짙어져 서늘하지 미는 그친 듯
물가 정자의 글 읽는 사람에게 흥을 보내주네
제7폭
아득한 들길 콩꽃 속에는
어촌의 나무마다 조생감이 붉다
머리 흰 농부 옛 그림 같아
강바람 맞으며 누렁이 끌고 간다
제8폭
푸른 절벽 붉은 벼랑 비가 막 지나더니
흰 구름 붉은 나무 가을이라 변했구나
들 늙은이 나부끼는 지팡이 짚고 가서
제9폭
십리 빈 강에 한 물건도 없거니
도롱이로 누길 가는 늙은 어부 외롭구나
술자리 황어가 풀 익기를 기다리며
스멀스멀 한기 돋는 부들 잎과 마주하네
무술년(1058) 봄에 그리다. 의도인
1m 40cm의 길고 좁은 화폭에 사군자와 산수를 이어 그린 것이다. 난과 대나무, 매화 국화를 그리고 계절의 변화에 따른 산수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하였다. 여름 산은 미점을 써 습윤한 느낌을 살렸고, 이어서 잎이 떨어진 나무 몇 그루로 가을의 정취를 표현하였다.
이 화첩은 11점의 산수화와 6점의 화조화가 수록된 화첩이다.
이 작품은 그 중 한 폭으로 선비가 여름날 강에서 낚시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미점과 발묵의 기법으로 여름의 습윤한 풍경을 묘사하였다.
산과 강의 풍경이 친숙하게 느껴져 우리나라 산수를 연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