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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리더 메이커의 노트

리더 메이커


 나는 대학에서 매주 화요일 그리고 목요일에 2시간씩 강의를 한다. 교수는 아니다.  ‘학군사관후보생 과정’에 지원하여 선발된 후보생들에게만 군사안보분야 과목을 강의하는 장교다. 국방부에서는 학생군사교육단을 설치하고자 하는 대학에 교육단을 설치하고 교관을 파견한다. 그중의 하나가 나다.


 평범한 대학생이 학군사관후보생 과정에 선발되면 후보생이 된다. 후보생은 소정의 군사훈련프로그램을 통해 장교로 임관한다. 기간은 3, 4학년 2년이지만 군사교육프로그램으로는 총 16주다.   전국에 있는 모든 학생군사교육단에서 동일한 내용을 교육한다. 따라서 규정된 교육시간에 어떤 내용을 전달해야 하는지 교재와 프레젠테이션 자료, 설명하는 시나리오까지도 제공된다. 


  가장 대표적인 관료제 조직인 군대, 대한민국 리더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에서 근무하면서 꽤 많은 것을 보고 들었다. 책과 논문을 읽고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전략 기획 분야를 리더 양성 프로그램과 연결하는 쪽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4주간 1,000명에서 2,000명에 달하는 후보생을 대면해 교육하기도 한다. 어떤 데이터 하나를 알고자 하면 꽤 방대한 양을 관찰할 수 있는 환경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병과학교에서 보수교육을 지도하는 직책에서 2년, 대학에서 학생들을 장교로 양성하는 과정에서 4년을 근무했다. 그들에게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도서관 서대에 꽂혀있는 수많은 리더십 관련 서적이 대변하는 것처럼 리더십에 대한 관심이 높은 듯하다. 그런데 정작 리더를 만드는 프로그램에 관한 것은 많지 않다. 리더십 프로그램이 리더 프로그램이 되기는 어렵다. 상사와 부하의 관계에 작용하는 말과 행동이 그 사람의 전부도 아니다.  정보혁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클로드 새넌처럼 말없이 조용한 사람이지만 그가 가진 통찰력으로 인해 혁신이 일어나고 세상이 변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엄청난 논문을 써놓고도 발표하지 않아 주변 동료들이 설득해서 냈을 정도다. 


 대한민국 육군은 창군이래 지금까지 매년 3월에 임관할 리더, 장교를 만들고 있다. 그렇다. 나는 이미 '리더메이커'다. 선언적 의미가 아니다. 심지어 그들의 직위 명에 ‘리더’라는 글자도 들어간다. Platoon leader, 소대장이다. 이렇게 장교 양성과정을 이수하면 임관과 동시에 각 병과학교에서 16주의 보수교육 과정을 거쳐 전국에 배치된 부대로 보내진다. 



리더 메이커 노트를 만든 계기

 

  수업 시작 시각은 8시. 장교가 될 후보생들이지만 아직 대학생이다 보니 시간에 맞춰 전원 출석하지 못한다. 그랬던 적은 있었던가? 가물가물. 이들이 게을러서 늦는 것이라면 혼내겠지만 랩 실에서 밤새 실험하거나  밤새 팀 과제를 하다가 겨우겨우 뛰어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간간이 과음하고 늦기도 한다. 알기에 기다리는 편이다. 규정을 어기지 않게 하려고 학생들에게는 수업시간을 10분 빠르게 알려준다. 늦은 줄 알겠지만 늦지 않았다. 


 먼저 출석한 학생들의 시간이 허비되지 않게 하고 싶었다. 출석 부르고 날씨 이야기, 막연한 안부를 나누며 기다리기보다 리더로서 인사이트를 가질 수 있는 스토리와 질문을 던져 주고 싶었다. 리더메이커 강의록을 만들게 된 이유다.  정규 수업 교안대로 하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 10분 정도는 내 재량범위에 있는 출석확인, 소개,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인 만큼 늦지 않은 자들에게 무언가 이득이 될 지식을 전하고 싶었다.


 나는 이 노트의 이름을 '리더메이커'로 정했다. 수업 시작할 때 '아이스브레이킹'하기 위한 스토리들이다. 키워드만 적혀 있다. 수업을 위해 강단에 오를 때 '규정된' 강의록과 내가 만든 리더메이커 노트 두 개 모두 들고 간다. 정규 강의록이 경기규칙, 즉 '스탠더드'라면 리더메이커 노트는 '그라운드 룰'이다. 내가 만든 리더메이커 노트는 학생들이 아무리 정규교육을 이수하더라도 채울 수 없는 부분에 관한 내용이다.  


 스포츠 선수들은 실력에 따라 A, B, C로 나눈다고 하는데 A급 선수는 연봉부터 대우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한다. 앞서 말했던 규정된 교육자료에 의한 스탠더드 룰인 정규 프로그램은 A급 선수를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이미 그 정도 클래스를 갖춘 학생들에게는 또 다른 레벨의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대체로 내가 썼던 책이나 보고서, 읽은 책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을 전한다. 이때 마이너한 의견을 귀 기울여 볼 수 있게 약간 궤변을 가미한 의견을 넣어 질문하는 편이다. 


리더메이커 노트의 가치는 통찰력 


 앞서 언급한 노트들은 죽음과 맞닿아 있는 생존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리더메이커 노트에서 기본 개념으로 설정해 두는 것 역시 '결정'이다. 결정권을 행사해야 하는 어려운 자리에서 탁월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꽤 진지하고 깊이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래야 스스로 살아남는다. 그랬을 때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산다. 그를 따라가면 죽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야 사람들은 따른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합류한다. 그래서 리더다. 그렇게 위대한 사람이 될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리더십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리더'에 포커스를 둔다. 갑자기 일상과 다른 일이 생기면 순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할 수 없는 시공간에 머무르게 되는데 이때 홀연히 나타나 상황을 정리하고 리드하는 사람들이 리더다. 어찌할 바를 몰라 어리둥절한 사람들을 리드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더메이커 노트는 통찰력에 관한 내용이다.  책을 많이 읽으라는 잔소리를 할 이유가 없다.  앞서 제시한 리더메이커 노트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스토리를 전할 때마다 틈틈이 책의 내용을 인용해서 알려주면 된다. 관심이 생기면 학생들은 그 책을 찾아볼 것이다. 흘려 들었더라도 기억의 저편 어딘가에 들어가 자리 잡아 있을 것이다. 언젠가 급박한 순간이 왔을 때 희미하게나마 기억이 날 것이고 필요하면 쥐어짜 내서 찾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번도 안 들었다면 모를까.

 

학생군사교육단과 관련된 리더메이커로서 나의 관점은 이렇다.

첫째, 학군단의 학생이 우수한 자질을 갖추었다면 A 클래스 인재 개발 프로세스를 적용해야 한다. 

둘째, 그들은 단기 복무 간 군에서, 전역 후 대한민국의 리드그룹에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일을 할 것이다. 

셋째, 장기복무를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인재들이 전역한다면 그 이유를 피드백해야 한다.

 

리더 메이커는 역사를 리드할 사람을 '만들려고' 해야 한다.


2023년 3월, CNN은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인터뷰는 나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그의 발언은 논리적이면서도 크리에이티브했다. 맞다. 그는 성공했다. 부럽다. 한국의 문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하이브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BTS. 이들은 K-POP 아티스트들이 세계 음악시장에서 리드그룹이 될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이런 사실들을 지켜보보다 가만히 나열해 보니 퍼즐이 완성되었다. 

"우리는 기획사처럼 리더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리더십 연구의 초기로 되돌아가서 위대한 사람을 만들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한국의 연예기획사 프로그램이 BTS와 같은 아티스트를 론칭시킬 수 있었던 모델을 연구해야 한다. 지금과는 다른 관점으로 보기 시작할 때다. 최소한 리더십 세계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는 리더메이커라는 분야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이 책을 쓰고 있다. 증명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말하는 리더메이커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리더메이커’는 말 그대로 리더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리더십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리더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의미죠. 우리가 무엇을 만든다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결과물을 의미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리더십을 만들겠다고 하지 않은 겁니다. 리더메이커의 관점은 리더십 이론과 다르게 접근합니다. BTS를 만든 방시혁 의장이 제 롤모델입니다. K-POP  아티스트는 한국의 수준 높은 기획사를 통해 특정 수준까지 끌어올린 후 데뷔합니다. 세계 정상급 수준에 오르는 것은 아티스트 본인에게 달려있습니다. 한국의 리더들 역시 그렇게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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