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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May 22. 2023

치사해지면 관계는 무너진다

   인간관계에 균열이 일어나는 순간이야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중 개인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전개 양상이 있다. 인간관계에서 누구 한 명이 치사해지기 시작하면 속절없이 무너져버리는 것에 대한 것이다. 경험과 견문을 통해 잠시 생각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는 간접적으로 들은 나의 지인들의 이야기다. 그들 중 하나에게서 들은 것이다. 꽤 오랜 기간 끈끈하고 친밀하게 잘 지내고 있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공통의 시공간을 공유하던 시기가 아니라 각자의 생활에 바쁘다 보니 모이는 것도 일이 된 것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여러 장소에서 여러 명이 시간과 장소를 맞춘다면, 양보와 타협이 알게 모르게 이뤄지는 법이다. 최근 그들 사이의 물밑의 갈등은 그것에 대한 것이었다. 서로 자신은 편의를 다른 인원을 위해 양보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 서운하다는 생각을 모임 인원 전체가 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치사해지는 것보다는 서운해지는 것이 위 사례에서는 조금 더 정확하겠지만, 큰 궤는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비슷하게 양보했을 것이고, 절대적인 존재가 저울질을 해본다면 그 차이는 경미할 것이다. 이 부분의 크나큰 함정은 이것을 따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비로소 빠져드는 것이 아닐까.


   치사해지고 서운해지는 것을 감정을 가진 한 차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이러한 것에서 자신을 내세우는 것은 분명 큰 불행을 야기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울질을 한 결과가 크든 작든, 그 행위를 실제로 객관적으로 할 수도 없을뿐더러 결과 분석 또한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게 될 것이니 관계는 파탄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회사에서 갈등을 빚는 경우 중 대표적인 것이 업무 분장에 대한 갈등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일을 누가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회의, 갈등, 언쟁 등이 많다. 대개 그 일을 해도 안 해도 자신이 받는 평가나 금전에 영향이 없는 경우가 많다. 보상은 없고 일만 생기니 전력으로 회피하려고 하는 것은 그 상황이 되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이때 서로 얼마 간 양보하는 식으로 하지 않고, 이렇게 회색 지대에 있는 많은 일들을 쳐내기에 특화된 사람이나 부서가 있으면, 회사 전체가 실시간으로 치사해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양보로 인해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당신들이 할 일이다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으면 불 보듯 뻔하고도 암울한 미래가 그려지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야말로, 어느 정도 서로 협력하는 유대 관계를 단번에 박살 내는 회사의 암이다. 좋은 회사는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한 회사의 업무는 대부분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 A라는 일을 갑 부서가 해도 그럴싸하고, 을 부서가 해도 그럴싸한 경우가 많다.


   이때 A 업무를 회피한 부서가 당연히 자신의 일이 아니었다고 우긴다면, 업무를 떠넘김 당한 부서에서는 다음부터는 비슷한 과정을 거쳐야 되는 B 업무가 등장했을 때 자신들의 일이 아닐 것이라는 대장경을 집필할 것이다. 해당 업무를 어떤 식으로 할지 시간을 들여도 부족할 판에, 해당 업무를 어느 부서가 할지에 대해 지루한 다툼이 벌어지는 곳이라면 미래는 어둡다.


   서로 잘해보자고 혼연일체가 돼도 쉽지 않은 것이 성공이다. 친목 관계에서 원활하고 돈독한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도 성공이고, 경쟁 등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얻지 못한 이윤을 얻는 것도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들을 이루는 것에 기반이 되는 것은 관계가 바탕이 된다. 이 관계는 대부분 엇비슷하며, 잘 따져본다고 해도 명백히 밝히기도 어렵다. 되려 이러한 행동 때문에 모든 것을 그르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치사해지는 것에 대해 매우 큰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치사해진다면 그것도 큰 문제가 된다. 관계를 순식간에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이 치사해진다면(또는 그런 징후를 보인다면) 나는 그런 자와는 천천히, 지속적인 교류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접근한다.


   치사한 사람은 기본적으로 상대하기가 피곤하다. 그러니까 주위 사람을 잃거나 다른 사람들이랑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싸우게 된다. 이런 사람들이 "별 것도 아닌 것" 운운할 때가 제일 냉소가 나오는 부분이다. 대개 처음 그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피로스의 승리를 거둔 것들이 그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가 치사함과 서운함을 내세우면, 상대도 치사함과 서운함을 내세우는 것이 이어지는 보통의 상황이다. 아예 관계를 끝내고 싶으면 저것을 터트리는 것도 방법이긴 한데, 대부분은 관계를 이어가고자 할 것이다. 결국 치사해지는 쪽이 지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이기기 위해 노력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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