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개인적인 옛날이야기이다
회사 탕비실에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지만, 구비되어 있을 때에는 있는 편인 어떤 과자가 있다. 나는 이 과자를 꾸준히 좋아하면서도 옛날에 있었던 일 때문에 홀로 조용히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이 과자로 인해 나는 사람(친구, 즉 우정)을 잃은 적이 있었으며 그때의 교훈으로 적어도 같은 실수를 하지는 않을 수 있었다. 그래도 사람 하나를 날려먹은 것은 변하지 않고, 같은 타입의 과자를 볼 때마다 부끄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청소년 시기 때, 학교 주변에 문방구가 있듯이 학원 주변에도 간단한 간식을 파는 가게들이 있었다. 조리된 것이 아니더라도 간식은 취급하였는데, 내가 이야기한 과자는 말하자면 초콜릿 바 스니커즈를 한 입 사이즈로 해놓은 것들을 낱개로 파는 형태였다고 이해를 도울 수 있겠다.
나는 기본적으로는 과거의 나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지금은 나만이 기억할 미개한 행적들에 나 자신은 기억이 존재하는 한 계속 고통받아야 되기 때문이다. 왜 어렸을 때의 나는 그렇게 얻어먹는 것을 좋아했을까에 대해 반성하게 된다. 그 탕비실의 과자를 먹을 때마다 그러는 것은 저주가 맞다.
정말 크게 쳐서 5000원이고 사실 뭐 한 2000원에서 3000원 정도였을 것 같은데, 제목에는 넉넉하게 5000원이라 잡았다. 당시 시세로 내가 이야기한 과자는 100원이었고 결코 수십 번이나 얻어먹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파국은 상대방이 결국 화를 내면서 찾아왔던 것이다.
지금이든 당시든 객관적으로 큰돈은 아니지만 청소년기라고 하면 용돈 규모가 뻔하니, 상대방이 당시 느낀 주관적인 분노(?)에 대해 당시든 지금이든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저 내 잘못이었다. 그와는 매우 서먹해졌고 학원 친구였으니 아주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하는 문제에 대해 경시하는 편이지만 그것은 아무 상관없는 경우에 한하고, 내가 저지른 것이 있었을 때 그러한 문제를 경시하면 그저 염치가 없는 것이므로 아마 그렇게 멀어져 버리고 말았으니 내가 그의 기억에 남아있다면 썩 좋게 기억되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나와 비슷하게 그 과자(스니커즈는 아닌 무언가)를 보면 내가 떠오르면서 기분이 나빠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이 나름대로 빠른 시기에 헐값(?)으로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을 깨우쳤으니 내 대인 관계에서의 금전적 갹출 한도 및 여러 정책이 다 그때 정해진 것이다. 나는 내가 더 내는 것을 선호하며 여의치 못할 때라도 50%(더치 페이)는 최대한 기억해 둔다. 만약 한 턱을 내 준 사람이 있다면 늦지 않은 시기에 비슷한 규모로 반드시 보답한다. 큰 깨달음으로 남한테 얻어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된 것이다. 사주는 게 속 편하지 반대는 기본적으로 꺼림칙하다. 빚은 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잊고 있었지만 쓰다 보니 비슷한 형태로 몇 백 원에 나 또한 다른 관계에서 익절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버스비를 빌려줬는데 입을 싹 씻길래 갚으라고 하니 화내는 자였는데 역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아마 결국 그 푼 돈은 갚지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냥 입맛이 씁쓸하면서도 발 빠른 식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게 과자 사주던 사람도 내 이 감정과 비슷한 느낌이라면 그렇게 지금까지 피곤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다소 안심이 된다. 저 버스비는 당시에나 조금 짜증 났지 아주 바로 멀어진 것은 아니었고(같은 반인가 그랬는데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냥 "신용 없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인증 도장만 잘 찍혀서 더 이상 안 보고 살게 되니 관심을 끊어버리니 그걸로 그만이었다. 푼돈에 사람을 잃다니 너도 나도 어리석을 뿐인 것이고 맥이 조금 풀리기만 할 뿐이다.
그래도 글을 써보며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는 이것을 평생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인가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른 것을 생각해 보니 결국 그렇게 대단할 것도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르고 있다. 어차피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고, 다만 그것을 바탕으로 절대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사실 아마 그 사람도 이것을 평생 뼈에 새기며 곱씹고 있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그 흔해 빠진 평범한 낱개 과자를 보며 우행을 곱씹을 것은 아니지 않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을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이미 자세는 바뀌었으니 말이다. 내가 나에게 잘못한 자에게 떨떠름하게 넘어갔듯이 아마 그 사람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