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정도 더 시간이 지나면, 내가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도 벌써 10년이 된다. 시간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다. 사회생활을 돌이켜 봤을 때 나는 늙었고 건강을 잃어가고 있으며 그 대가로 약간의 저축을 했고 커리어패스는 완전히 망가진 것으로 생각한다. 애초에 전공과 상관없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았던 대가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무얼 하고 싶은지도 전혀 모르는 비인기 전공 출신의 문과생이 취업이 잘 되고 커리어패스가 탄탄대로일 확률은 낮지 않았을까?
어쨌든 운이 좋아서 내 나름 취향에 맞는 직장을 다니고 있다. 전형적으로 돈은 적게 받는 대신에 그만큼 일도 더욱 조금 하겠다는 투철한 자세로 임직원 대부분이 꽁꽁 싸매고 웅크리고만 있는 아주 진취적인 기업이다. 허구한 날 하는 회의 내용도 포장을 아주 살짝만 벗겨보면 몇 년째 해결하지도 못하고 있는 이슈로 끙끙대거나, 누가 해야 할지 애매하지만 아무튼 해야 하는 일들을 누가 할지에 대한 웅변대회 같은 것이다. 전자는 준비도 되지 않은 자들로 회의를 해봐야 달라질 것이 없으며, 후자는 말발에서 밀리면 그 일을 떠맡게 되니 전심전력으로 안 하겠다고 뻗대며 변명을 늘어놓는 것을 강제로 매번 들어야 하니 정말 지겨운 노릇이다.
현재의 임직원들과는 어떻게 보면 가족이나 친한 친구보다 더 많이 부대끼고 있기 때문에, 특히나 업무 성향이 맞지 않거나 사고방식이 다른 경우에 대해서는 나는 그들을 내 부모자식의 원수를 보듯 하고 있는데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정말 쉽지가 않다. 말이 극복이지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어떤 언행을 하든 그것에 대해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목표일 뿐이다. 문제는 내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환멸과 냉소와 무언의 조롱을 일일이 다~하고 있는 중증 환자라는 점이다.
그래도 직장 생활에서 누적한 시간이 많다 보니 종종 생각해 보게 된 것이 있다. 과거의 내 악연들에 대한 생각을 해보면 머리(이성)로는 지금 이러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 된 것이다.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꽤 많은 사람들을 사회에서 만났다. 그중 잘 지낸 사람도 몇 명 있지만, 대부분은 사회생활 답게도 내 인생의 크고 작은 원수가 되었다. 아마 개인적인 역사(?)를 돌이켜 봤을 때 지금 내 주변의 우수한 원수들 보다도 더 증오스러운 일화들이 많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그런 원수들이 정말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의 원수 구성 환경이 바뀌게 되고 누적 데이터가 쌓이면서, 또 그들이 오고 가며 내 주변에서 사라지면서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겼던 자들, 마치 지금 내 주위에 있는 원수들을 내가 혐오하듯 했던 자들에 대해서도 소 닭 보듯 하는 기분이 어느 시점부터 들기 시작했다. 내 원수들도 그저 먹고살려고 자기네들의 스타일대로 살았을 뿐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게 미워했어도 눈앞에서 없어지고 시간이 지나면 그럴 필요까지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되면서 머리로는 증오의 무가치함을 이해했다. 지금 내 주변의 원수들에게 그렇게 내가 동요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물론 지금의 생활에서 원수들의 언행이 보이면 스트레스가 치솟는 것은 여전히 어떻게 되지 않는 부분이다. 지금껏 쌓인 경험을 바탕으로 머리로 알고 있는 것을 신체에 적용시킬 수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처음 이야기를 시작할 때도 건강 이야기를 했는데, 그렇게 철저한 증오가 결국 내 몸만 상하게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문제의 극복은 내게 있어서 지금 제일 중요한 사항이다. 한껏 미워해봐야 내 몸과 마음만 한껏 병들고 그들에겐 아무런 영향도 없는 것이다. 저주의 성취가 있고 가능하다면 고민해 볼 만 하지만, 내가 잃기만 하고 원수들에게 영향도 미칠 수 없는 일인 것은 확실한 것이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니 이렇게 고통받고 있지만, 혹여 아직 모를 수 있거나 나와 비슷하게 알고만 있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좋은 자극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적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