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또는 에세이 #34
* 영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타인의 고통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강가에서 내려오는 여학생 시신을 롱테이크로 촬영한 장면으로 프롤로그를 시작하는 영화<시>.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단출하다.
영화의 주인공은 늙은 할머니, 미자다. 그녀는 그 나이답게 모르는 사람과도 편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리고 자주 깜박깜박하는 그저 그런 평범한 할머니다. 딸의 부탁으로 중3 손자 하나를 맡아 키우고 있다. 사춘기 아이답게 평소 말이 없는 손자의 끼니를 챙겨주는 것도 미자의 일이다. 미자는 소일거리로 생전 써본 적 없는 ‘시’를 배우기 위해 동네에서 열리는 강의를 다녀보기로 한다. 평소에 헛소리를 많이 하는 자신은 시를 좀 잘 쓸 수 있을 거라 농담 반 진담 반, 딸에게 통화하며.
한편 미자는 한 주에 몇 번, 오후에 부유한 집에서 지내는 거동이 불편한 늙은 회장님을 씻기고 보살피는 일을 하고 있다. 고된 일을 하고와서도 시를 쓰기 위해 골몰해보지만, 시 쓰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작중에 출연한 김용택 시인의 대사를 빌리자면, ‘시를 쓸 마음을 먹기란 쉽지가 않다.’
요양 일을 마친 미자는 회장님 며느리가 일하는 마트에서 걸어나오며, 어떤 중년의 여인이 혼이 나간 표정으로 장터에 주저앉은 모습을 발견한다. 이름 모를 여인의 얼굴은 햇빛에 그을린 것인지, 슬픔에 그을린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검고 또 검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대로 미자는 별 탈 없이 귀가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여인을 미자가 다시 만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며.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고통에 관한 이야기다. 그 고통이 너무도 흔해, 그 고통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무도 관심이 없는 끔찍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타인의 고통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작중 김용택 시인의 대사를 빌리자면, ‘시상은 스스로 오는 게 아니라 직접 찾아야 하는 것’이라는 말의 의미를 영화 내내 미자는 우리에게 그대로 보여준다.
장터에서 마주한 여인의 주저앉은 고통 속으로, 그리고 그 여인의 죽은 딸아이의 고통 속으로 미자는 기꺼이 걸어 들어간다. 그녀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어서. 고통이란 그런 것이다.
미자는 그제야 시를 쓴다. 자신이 체화한 타인의 고통을 쓴다.
불교의 유명한 가르침 팔정도(八正道)에는 정견(正見)이라는 가르침이 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시를 쓴다’는 것은 내가 아닌 것을 정견 하는 일이다. 우리의 고통까지도.
그러나 우리는 이 바쁜 세상을 살면서 남의 고통에 감흥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시를 쓸 마음을 먹기란 정말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더욱이 요즘같이 경쟁에 치우치고, 인간의 도리라는 게 희미해지는 때에는, ‘개인주의’라는 명목하에 우리는 타인을 그저 ‘타자화’시키는 것에 익숙한 때에는 더욱더. 이해한다. 나도 그렇다.
데이터가 넘치는 세상을 살면서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 게, ‘뭐든지 검색하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대상을 온전히 바로 본, 그러니까 이해한 것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전혀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잘 안다’는 베일에 싸여 상대를 함부로 바라보기에 십상인 위험한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단 하나는, ‘결국 세상에는 모르는 것이 투성이’라는 사실이어야한다. 그래서 내 주변을 이해하려고 배우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이후에도 함부로 당신을 안다고 오판하지 않는 것. 나는 그것이 ‘인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세기의 명작들은 우리에게 어떤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해결하지 못한 욕망을 비로소 해소하는 경험. 이를 통해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실마리를 찾아내곤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타인을 바로 볼 용기,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시를 쓰는 마음과 타인을 사랑할 용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움직이는 화랑 <비껴서기> 운영 |
코스미안뉴스 인문 칼럼니스트
브런치 작가
bkk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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