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우성 Oct 05. 2020

[남자의 클래식] 3회. 슬기로운 취미 생활,

바흐 <커피 칸타타>





음악의 아버지 바흐. 누가 붙인 별명인지 그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음악가들 중 이 수식어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고전 음악의 대명사 격인 모차르트나 베토벤, 슈베르트 등 바흐 이후 모든 위대한 음악가가 이루어놓은 음악의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그곳엔 클래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 ‘바흐’라는 원천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너무 당연히 연주되는, 두 개 이상의 멜로디를 결합시키는 대위법이나 높이가 다른 두 개 이상의 음이 동시에 울려 화음을 이루며 선율을 만들어가는 화성법은 모두 바흐가 정리하고 확립한 작곡 기법이다.


다시 말하면 바흐 이후의 모든 작곡가가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작곡법은 모두 바흐가 정립하고 구축한 질서를 따르고 있다. 베토벤이 “바흐는 냇물bach이 아니라 바다meer”라고 말한 것처럼(바흐는 독일어로 시냇가라는 뜻을 갖고 있다.) 바다와 같이 넓고 깊은 그의 업적에 필적할 만한 작곡가는 아무도 없다.


이렇게 위대한 그의 업적 때문인지 사람들은 바흐에 대해 고상하고 거룩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바흐도 성격이 있는 남자였고 흥과 풍류를 아는 남자였다. 두툼한 얼굴을 한 그의 초상화에서 알 수 있듯이 바흐는 굉장히 건장한 체구였다. 그의 유골을 분석한 결과 당시 유럽 남성의 평균 신장인 160cm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180cm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엔 칼을 들고 싸움을 벌여 재판까지 받았을 만큼 다혈질적인 기질도 있었다. 대식가로도 알려져 있는 바흐는 외향적이고 친화력도 좋아 늘 사람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며 춤추기를 좋아했다.




커피 마니아의 <커피 칸타타>


독일의 고전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3인을 일컬어 3B라고 한다. 그 선두에 바흐가 있고 베토벤, 브람스가 뒤를 잇는다. 이 세 작곡가의 또 다른 공통점은 ‘커피 마니아’였다는 점이다. 베토벤은 “60알의 원두는 나에게 60가지 음악적 영감을 준다”며 매일 아침 원두를 한 알 한 알 세어가며 커피를 내렸다고 한다. 또 브람스는 “그 누구도 나처럼 진하고 깊은 향의 커피를 내릴 수 없다”며 커피 메이킹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매일 아침을 담배 한 개비와 손수 내린 진한 커피 한 잔으로 열었다고 한다. 이에 한 술 더 떠 바흐는 아예 커피를 주제로 한 작품을 작곡했다. 커피를 두고 벌어지는 실랑이를 다룬 작품이다.
 
 <커피 칸타타>로 잘 알려진 이 작품은 “조용, 조용. 잡담하지 마세요!”라는 테너 가수의 서창으로 관객의 주의를 집중시키며 연주를 시작한다. 1732년에서 1735년 사이에 작곡된 <커피 칸타타>는 그 제목만 보아도 18세기 바흐를 비롯한 독일인들의 커피**에 대한 사랑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 독일 최초의 커피숍은 1721년 베를린에 있었다. 당시 독일의 커피숍은 지식인들의 사교의 장이자 토론의 장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전국적으로 커피 열풍이 불었다. 독일의 보수층은 커피를 두고 저급하고 천박한 외래 문화의 유입이라며 연신 비난했으며, 의사들은 여성의 불임을 유발시키며 피부를 검게 한다고 거짓 경고를 하기도 했다.




ⓒ groupmuse


바흐는 ‘콜레기움 무지쿰collegium musicum’이라는, 대학생들로 구성된 연주 단체를 이끌었다.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의 음악 감독으로 바쁜 와중에도 1729년부터 1742년까지 13년간이나 이 연주 단체의 비공식 음악 감독을 맡은 걸 보면 이 악단에 대한 바흐의 열정을 짐작할 수 있다.
 
 <커피 칸타타>라는 이름의 고상할 것만 같은 이 작품은 자신이 이끄는 대학생 악단과 함께 본인이 즐겨 찾던 ‘짐머만 커피하우스’에서 연주하기 위해 작곡한 작품이다. 지금은 오픈 에어라는 형태의, 시민들을 위한 야외 연주가 흔해졌지만 바흐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음악은 궁정이나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이런 형태의 연주는 음악의 아버지 바흐가 남기고 싶었던 또 하나의 유산이었을까? 궁정이나 귀족의 살롱에서나 흘러나오던 음악을 모두의 장소에서 모두를 위해 들려주기 위해서 말이다.
 
 재능과 열정에 취미까지 더해지니 해내지 못할 일이 없다. 본업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바흐였지만 ‘콜레기움 무지쿰’과 함께 하는 음악 작업은 그에게 새로운 활력과 열정을 불어넣어주었다. 이전에 작곡했던 작품들을 다시 꺼내어 연마하고 보완하는 계기가 되었고 새로운 세속 작품들을 작곡하며 다양한 실험적인 무대를 펼칠 수 있었다. 날씨가 좋은 계절엔 야외 광장에서, 추운 겨울엔 커피 하우스에서 모두에게 개방된 열린 음악회를 약 600회나 열었다고 한다.





이렇게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기 전 바흐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업무가 많은 것에 비해 자신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나 처우가 좋지 않다고 여겼고, 자신만의 돌파구와 리프레시가 필요했다. 결국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음악을 시도해 보는 것만으로도 활동 영역이 달라졌고 교회나 궁궐이 아닌 카페에서 연주하고자 하는 아이디어와 실행력이 생겨났다. 본업에 쫓기는 와중에도 새로운 일을 벌이고 밖에서 사람들과 캐주얼하게 어울리다 보니 가능했던 일들이다.


현대인은 바쁘다. 업무에 온 신경을 쏟다 보면 취향을 좇거나 취미 생활을 갖는다는 게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취미를 갖고 삶의 영역을 바꿔보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바뀌고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질 수 있다. 바흐처럼 대학생들과 함께 연주하며 다시금 일에 대한 열정을 채울 수도 있고 자신이 사랑하던 커피 이야기로 명작을 남길 수도 있다. 바흐의 ‘슬기로운 라이프스타일’로 탄생한 <커피 칸타타> 같은 작품들은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리프레시와 감동을 준다.


Play list


아! 커피는 어찌나 달콤한지, <커피 칸타타> 바흐 작품 번호 211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1685~1750)


cantata   ‘Ei, wie schmeckt der Coffee süsse,’ BWV. 211


by   Johann Sebastian Bach



  https://youtu.be/VQzT09BgeWY



커피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딸 리스헨에게 아버지 슐레드리안은 이제 그만 커피를 끊을 것을 강요한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산책도 못 하게 하고, 스커트를 사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딸은 다른 건 다 없어도 괜찮지만 커피만은 마셔야겠다며 아버지에게 맞선다. 결국 아버지가 최후의 수단으로 약혼자와 결혼을 시키지 않겠다고 위협하자 딸은 이 말에 아버지에게 항복하고 만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다시는 커피를 마시지 않겠노라며 결혼 승낙을 받아낸 후 혼인 계약서에는 아버지 몰래 ‘커피의 자유 섭취’라는 조항을 적어 넣는다. 결국 딸은 커피와 결혼을 모두를 쟁취해 낸다는 희극적 내용이다.

작가의 이전글 [남자의 클래식] 2회.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