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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제 Jun 10. 2023

가끔은 시집 읽기가 효율적인 일기 쓰기가 될 수 있다

황인찬,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 내가 매일매일 쓰는 일기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



조명도 없고, 울림도 없는

방이었다

이곳에 단 하나의 백자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나는 알았다

그것은 하얗고,

그것은 둥글다

빛나는 것처럼

아니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있었다


나는 단 하나의 질문을 쥐고

서 있었다

백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많은 여름이 지나갔는데

나는 그것들에 대고 백자라고 말했다

모든 것이 여전했다


조명도 없고, 울림도 없는

방에서 나는 단 하나의 여름을 발견한다


사라지면서

점층적으로 사라지게 되면서

믿을 수 없는 일은

여전히 백자로 남아 있는 그

마음


여름이 지나가면서

나는 사라졌다

빛나는 것처럼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구관조 씻기기』(민음사, 2012) 1부의 두 번째 시.


나에게 이 시는 잊혀지지 않는 옛사랑에 대한 시로 읽힌다.

만성적인 쓸쓸함의 근원. 놓쳐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의 구심점. 은은하되 오랜 바람에도 사라지지 않는 잔향.

어떤 때에는 내 마음을 높은 곳까지 올려다 주기도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나에게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사람.

더는 나와 너를 믿지 않는 사람으로 나를 바꾼 사람.


나의 첫,

수많은 첫,

이 되고 싶던 것들의 잘린 줄기 밑바닥.


이제는

숨이

턱 하고 막히지 않지만 더 이상 내 관자놀이를 축으로 세상이 회전하지 않지만


절대 침묵하는 나의

단 하나의 여름


여름은 지나가고 다시 또 돌아오지만

너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




*진은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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