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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제 Dec 30. 2023

나의 TMI를 아는 것이 곧 내가 나를 존중하는 길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최인아) 읽기 중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갓 대학생이 되었을 무렵 다이어리를 하나 샀다. 1년 365일 매일 서로 다른 질문에 대해 서너줄의 분량으로 기록하고 그걸 5년 동안 반복하는 다이어리였다.

(네이버에 질문 다이어리로 찾아보니 ‘Q&A for me: 나만의 시크릿 다이어리’가 제품명인 것으로 나온다. 정확히 이 제품이다.)

꾸준히 다 쓰지는 못하였고 한 2년 정도 어쩌다 생각이 나거나 덜 바쁠 때 며칠 연달아 열심히 쓰다가 나중에는 흐지부지 시들하게 한 글자도 못 채운 페이지가 훨씬 많은 채로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된 다이어리이다. (사실 대학교 1-2학년 때는 바깥으로 마구 쏘다니면서 놀기 바빠서 다이어리를 차분하게 쓰는 습관을 들이기에 상당히 취약한 생활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딱히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질문들이 대체로 특정한 컨셉이나 결이 정해져 있지 않고 다채로운 방향과 깊이로 흩어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이를테면 <안전을 추구하는가, 모험을 추구하는가?>와 같이 매우 추상적인 질문을 하는가 하면 <주량이 얼마나 되는가?>와 같이 가벼운 앙케이트 수준의 질문을 하기도 했다.

기억이 안 나서 예시 질문까지 참고했다. 개정판이 있는 건 아니겠지?…

나는 글을 쓰다 보면 분량 조절을 잘 못한다. 도통 관심 없거나 할말 없는 주제가 아니고서야, 내가 하고 싶은 말까지 도달하는 데 이런저런 서문과 잡설이 뒤룩뒤룩(?) 붙는 편이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그래서 할말을 하기도 전에 먼저 지쳐서 글을 완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일쑤이기도 하다. 이미 나와 버린 문장과 표현 들에 미안해서 지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하여튼 그렇다.


이러한 글쓰기 습관은 365 다이어리를 쓰는 경우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었는데, 더군다나 다른 어떤 주제도 아닌 바로 ‘나’에 대해 묻는 질문이니 오늘의 질문에서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 내용까지 신이 나서 꾸역꾸역 좁은 종이 안에 집어 넣으려 했음은 두말할 여지 없이 사실이고 매우 잦게 반복되었다.


TMI: ‘Too Much Information’의 준말


요새는 인터넷 상에서 그렇게 자주 보이는 것 같지는 않지만, 내가 대학 새내기였을 무렵에는 한창 TMI라는 말이 갓 탄생하여 현실에서도 넷상에서도 열심히 사용되던 시기였다.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대학 동기의 한때 말버릇은 “너무 TMI일 수도 있는데”라는 서두로 말문을 여는 것이었다. (대학 친구는 고등학교 친구처럼 허물없이 가깝게 지내지 못한다는 짐짓 두려운(?) 이야기에 아직 서로 조심스러운 시기였다)


갓 탄생해서 펄떡펄떡 힘이 넘치는 신조어는, 아직 mz라는 이름을 부여받기 이전의 젊은이들의 무의식에도 자연스럽게 침투했고 나의 그것 또한 순조롭게 침투당했다. 다이어리를 쓰다가 문득 깨달은 것이랄지, 작게 얻은 인사이트랄지 하는 생각에도 tmi라는 용어가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에 대해 잘 아는 것은, 내가 나에 관한 TMI를 잘 알고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공부하느라 바빴고 더군다나 전교1등 자리를 유지하느라 대부분의 감정은 사치이고 나에 대해 탐구하는 것은 자소설을 쓰는 때가 전부였던 고등학교 시절. 성인이 되고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의 나는 명백하게, 내가 나를 잘 모르는 시기였다. 나는 안전추구형인지 모험추구형인지, 이런 거대한 질문은 커녕 나는 내가 무슨 옷을 입었을 때 가장 잘 어울리는지, 어떤 유형의 사람들과 만났을 때 편안함을 느끼고 가장 나다워지는지, 나의 독서취향 음악취향 등등을 다 모르고 있었다. 물론 패션이든 사람이든 책이든 노래든 취향은 존재했지만, 나의 무의식이 어떤 것에 끌리는지 감지하고, 그것을 언어화하는 작업을 하는 데 매우 서툴렀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자신에 대해 묻고 생각하다 보면 묻지 않을 땐 그냥 지나쳤을 것들을 하나하나 알아가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축적되어 있다가 중요한 선택을 할 때 바탕이 되는 거죠. (215쪽)


주체적으로 산다는 건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며 존중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중략) 자신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그저 세상의 흐름을 좇기 전에 자신의 뜻을 물으세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그 뜻에 따라 인생을 운영하는 겁니다. (214쪽)


앉은 자리에서 이백 쪽이 넘는 분량을 홀린 듯이 읽다가, ’자기 존중 = 자문자답’의 솔루션을 내놓는 챕터를 읽으니 문득 대학교 1학년 때 365 다이어리를 쓰다가 느꼈던 점이 생각이 나, 이렇게 기록하게 되었다. 최인아 대표가 책을 저술하는 방식 - 북토크 질의응답 중 작가의 답변과 자신이 과거 직장생활을 하며 스스로 찾아 낸 인사이트를 서로 연결짓는 것 - 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은, 역시 문장 다이어트를 하지 못하는 내가 굳이 따로 덧붙이는 사설이다.


그런데, 단순히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는 것과 그 생각을 언어로 기록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더니. 당시 핫한 신조어였던 TMI라는 표현에 얽힌 나의 일화를 적다보니, 내 생각에 틀린 부분이 있음이 이제서야 보인다. 그것은 나의 취향, 성향, 가치관, 삶에서 추구하는 목표 등 결코 일회성이 아닌 질문들에 대한 나의 고민과 답변들은 결코 ‘Too Much’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과도하게 비대해진 자아를 시도때도 없이 밖으로 드러내지 못해 순전히 저밖에 모르는, 자아에 매몰된 우매한이 되는 것은 지양해야겠지만 말이다. 웬만한 인성과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우리들에게는, 내 인생의 리더로서 삶을 ’잘‘ 운영하기 위해 끊임없이 나 자신에 대한 Information을 탐색하고 포착해내기 위해 애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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