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과 마흔이 술한잔과 함께 나누는 이야기 -1(단편)
10월 어느 하루 고단한 몸을 이끌고 약속 장소로 나는 가고 있는 중이었다. 불과 몇달 전에 이직하게 새롭게 시작하게 된 지금 회사의 일은 낯설고 어렵고 난해한 업무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출근하고 퇴근하기 까지 반 녹초가 되어야지만이 겨우 일을 마감할 수 있는 처지였다. 그런 나의 상황에서 유일한 안식처이자 힐링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퇴근 후 가볍게 마시는 소주한잔 이었다. 올해 무난히도 더웠던 여름날의 열기는 어디갔는지 온데간데 없고 갑작스럽게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반갑기도 하면서도 너무 극적으로 바뀌어져버린 날씨에 한편으로는 놀랐다.
사실 지금의 회사로 이직을 하기 전 다녔었던 전 직장은 나에게 있어서 매우 낯선 장소였다. 그동안 내가 쌓아온 커리어와는 아주 이질적인 곳을 다니면서 나름의 적응을 한답시고 즐겨 마셨던 소주 였다. 그리고 그가 있었다. 그 녀석은 나와는 무려 10살이나 차이나는 서른 언저리에 있던 친구였는데 직장생활에 환멸을 느낄 때면 항상 그와 저녁과 함께 마셨던 소주에 그 힘겨움을 버텨왔던 것 같다.
그런 그와의 술 약속이 있는 날이 바로 오늘이다.
밀린 업무가 제법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금요일이라는 핑계와 그 동안 열심히 일했다는 나 나름의 합리화로 일찍 퇴근을 한 터였다. 물론 사수들의 따가운 눈초리와 함께 나의 팀장으로부터도 다가오는 점검기관에 대한 대비 계획안에 부족함으로 한바탕 잔소리를 들었던 오늘이었다.
사실 오늘 약속은 취소하고 싶었다. 이직을 한 후 부터 줄곧 새벽잠을 설쳐가며 가장 먼저 일찍 출근하다 보니 체력의 고갈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어쩔수 없지 않은가? 가벼운 술자리라는 오늘 같은 만남을 갖기 위해서도 반드시 적당한 벌이는 필요한 법이니깐
나는 그와의 약속을 지키기위해 일주일 중 가장 붐빈다는 금요일 저녁 서둘러 발걸음 재촉하며 이제 막 지하철을 내려 그 장소로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 녀석과 나는 늘 서로 다른 생각을 했지만, 술잔을 기울일 때만큼은 그 차이가 희미해졌다
오늘의 주메뉴는 그와 즐겨먹었던 치소다. 치킨과 맥주가 제법 저녁 술자리의 안주로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져있기는 하나 우리는 늘 치킨에는 원래 소주가 짝꿈이라고 애기하듯이 그렇게 우리는 늘 치킨과 소주를 마셨었다. 수많은 메뉴 중에 치킨을 선택한 것은 그와의 추억이 있었던 메뉴를 먹어야지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했던 상대에 대한 추억만들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의 건강에 부쩍 심각성을 알게 된 후 일주일에는 최소 3번 정도는 운동을 하게 되면서 몸의 근력을 키우기 위한 기본재료로 치킨을 먹어야 하는 이유가 내게는 있었다.
처음에는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갑자기 나의 곁으로 다가온 그는 이전 직장을 떠나기 전의 마지막 그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그동안의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아니면 나와의 만남에 그렇게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많이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10년이라는 나이차를 감안해서라도 이건 너무 심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는 많이 상해있었다.
[오랜만이네, 근데 얼굴이 왜 이렇게 변했냐]
[형, 잘 지내셨어요]
그는 어색하리만치 자신이 상대에게 비춰지는 아주 상한 얼굴을 신경쓰지 않은 것처럼 애써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인사했다. 나는 그의 미소로 갑작스럽게 바뀐 그의 얼굴에 대한 걱정을 순식간에 망각해버리고 그동안 안부를 물어보았다.
[형 이직한 곳은 어때요? 예전 거기보다는 낮죠?]
[글쎄, 그냥 아직은 초보니깐 열심히 하는 거지. 아직은 적응이 필요하니깐]
[그렇군요, 여하튼 반가워요. 형 우리 진짜 오랜만에 먹는 거네요. 치소]
[벌써 시간이 그렇게나 지났나? 우리 지난번에 자주 갔던 치킨집과 맛이 아주 꼭 닮은 곳이 있으니깐 우선 거기로 가자]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메뉴 선택이 참으로 중요한데 예전에 우리가 자주 갔던 치킨집과 맛이 아주 똑같이 곳이 있다고 하니 그도 아주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의 메뉴선택과 장소에 대한 그 어떠한 거부반응 없이 나의 옆으로 다가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