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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Nov 25. 2024

소설을 쓰고 읽는 사람들

지난밤 줌 모임

몹*글(:몹시 쓸모 있는 글쓰기) 방에서 알게 된 영글음 작가님과 현이 작가님과 함께 금요일 밤, 줌으로 만났다. 따로 운영하는 소모임 『소설 쓰고 앉아 있네』방에서 함께 그동안 쓴 소설 이야기를 합평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한 것이다. 


함께 완성된, 혹은 완성되어 가는 중인 작품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비평하기로 한 것인데 베테랑 영글음 작가님이 계셔서 든든했다. 신기하게도 스코틀랜드에 거주 중인 작가님이 내가 쓴 몇몇 작품들을 꼼꼼하게 읽으시고 그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시간이 모자랄 것 같다며 보이스톡으로도 먼저 통화를 하고 싶다고 해서 반갑기도 하고 감사했다. 궁금한 게 많아서 질문을 잔뜩 쏟아내기도 했는데 하나하나 진지하게 답해주시고 특유의 통통 튀는 에너지와 유머가 있어서 통화 내내 즐거웠다. 




대학교에 올라가자마자, 어떻게 소설을 쓰는지에 대해선 전혀 배우지도 않았는데 다짜고짜 소설을 한 편씩 제출하라고 하셨다. 이미 다 글을 쓰고 싶어서, 글을 잘 써서 들어온 학생들이니(실기평가가 있었다) 굳이 작법이 필요 없다고 판단하신 걸까, 아니면 합평을 통해서 아마추어도 안 되는 우리 작품으로 또 다른 수업을 펼쳐주겠다는 건지 뭔지 알 수는 없지만 황당하고 허허, 웃음만 나왔다. 읽는 건 재밌어도 소설을 무작정 한 편 써서 완성한다는 것은 너무 머리 아프고 복잡하고 내 뜻대로 안 되는 일이었기에. 


미루고 미룬 끝에 기한은 다가오고, 그간 소설 완성 전까지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으로 수업을 했는데 기존 작가의 작품들마저 비문을 쏙쏙 뽑아내고 분석해 주는 교수님의 솜씨에 오히려 더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기성작가의 작품마저 이런 비평을 받는데 내 작품은 아주 산산이 박살 나겠구나, 파스스 가루가 될 때까지 도마에 오를 것 같았다.

사실은 여기서 내가 놓쳤던 부분까지 세밀하게 읽었던 교수님의 매의 눈과 독서 태도를 배웠어야 했는데 이런 건 졸업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어떻게, 뭘 써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고 내가 쓰는 게 소설인지 일기인지 동화인지 희곡인지 대사로만 나열된 극본인지, 콩트인지 뭐가 뭔지도 모를 때쯤 기한은 다가왔고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노래 가사처럼 역시 혹평에 이은 혹평, 처참히 깨져버리고 말았다.


산만한 만연체의 긴 문장들은 비문 천지였고 주술 호응은 물론 기본적인 맞춤법 띄어쓰기 마저 엉망이었다. 하...;;;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쉬는 시간에도 내가 틀린 비문을 체크하며 잡아내는 교수님이 너무도 야속했던 첫 번째 비평수업. 합평이라고 했지만 그날도 역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다들 날카롭고 공격적으로 내 작품을 요모조모 뜯어서 추측하고 형이상학적(?)이란 평까지 들었을 땐 내 작품이 얼마나 이상한 건지 평가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부끄럽고 숨고만 싶었다. 이건 무슨, 내가 쓴 것보다 여기에 할애한 시간보다 더 열심히 내 글을 읽고 들여다본 것 같기에, 그래 맞아, 읽은 사람보다 쓰는 시간에 그만큼 투자를 안 했네, 내 '작품에'... 이런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이제와 생각해 보니 엄청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나는 퇴고를 싫어해서(지금도 퇴고 과정/ 블로그나 브런치에서 맞춤법 검사 과정도 어찌나 귀찮고 싫은지;;) 한방에 와르르 쓰는 건 쉽고 재밌지만 완성된 걸 다시 고치고 읽고 또 읽어보고 바꾸는 과정을 무척 싫어한다. 나는 가장 중요한 '꼭 있어야 할' 과정을 빼먹고 오롯이 '쓰는 기쁨'만 누리고픈 사람인 걸까. 그렇다고 내 글이 엄청 신중하고 오랜 생각 끝에 탄생해서 처음부터 대단한 완성작도 아닌데 말이다. 


졸업을 하고 보니 엉망진창 심경이 됐던 그때의  '소설 합평 시간'마저 무척 귀하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내가 생략한 그 중간 과정을 동기들과 교수님께서 대신해 준 덕분에 나의 허점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어린 마음에 시작하기도 전에 '상처받을까'조마조마한 마음에만 초점이 맞춰졌지만 합평이라는 - 귀한 시간을 내서 누군가의 습작을 진심을 다해 읽는 시간이 없다면 - 내가 쓴 소설이 어떤 모양인지 제대로 볼 수 없었을 것 같다. 물론 합평하는 사람들이 상대방을 배려하고 진심으로 다정하게 말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신기한 일이다. 대학교 때는 그렇게 쓰기도 싫고 쳐다보기도 싫었던 일들이 이제 와서 자꾸만 쓰고 싶고 자발적으로 쓰고 있는 나를 마주한다. 부족하고 느리지만, 어느 날은 성급하게 빠르지만 '하게 된다'. 그렇기에 같이 읽고 서로 작품을 봐주고 합평을 해주자는 영글음 작가님의 의견이 반갑고 좋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작품을 쓰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 먼저 '봐주겠다는'독자가 있고 손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시작부터 기쁜 일이다. 소설 쓰기 첫 버튼을 이어나갈, 나에게도 러닝메이트가 생긴 기분이 든다. 





현이작가님 ▶  40대 여성의 홀로서기와 사랑 이야기

영글음작가님 ▷ **으로 대표되는 사람들의 욕망, 욕구에 대한 이야기

나 ▶ 고백, 유년의 기억, 혐오하는 대상이 자기가 되는 이야기





우리는 기획의도는 밝히지 않고 언제까지 어떤 내용의 소설을 쓸 건지 공표했다. 내용은 한 두줄이어도 상관없었고 마감일도 스스로 정해서 만들기로 했다.

1. 제목

2. 내용

3. 목표 마감일



이미 출간 경험도 있으신 영글음 작가님이 자연스럽게 모임을 이끌고 진행해 주신 덕분에 각자의 내용을 공유하고 지난 금요일 밤에 줌으로 만날 수 있었다. 예상 시간은 1시간 반 안에 마치는 거였지만 예상보다 넘겨버린 시간이어도 서로의 소설 이야기를 읽고 감상을 나누고 저마다의 주제를 찾아보고 기획의도를 듣고 말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서로의 안부, 일상 이야기 스몰토크를 할 시간도 없이 '소설' 이야기만으로도 채워갔는데 사실 각자의 소설 이야기가 결국의 '나의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가장 맞닿은 나의 삶, 경험, 생각, 가치관이 또 다른 이야기 속에 펼쳐져 있었기에 이렇게 꺼내보고 싶은 각자의 바람이 이야기로 재탄생된 느낌을 받았다. 대학시절에도 합평 시간이 이렇게 즐거웠으면 더 좋으련만, 아니 그때는 과제로 제출하는 것부터가 부담이었고 그냥 싫었던 것 같다. 서로의 글을 시간 내서 읽어주고 재밌고 좋았던 부분도 말해주고 아쉬운 부분과 보완할 점을 넣어서 말해줬더라면 퇴고가 좀 더 즐겁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뒤늦은 소설 쓰고 앉아있네 모임과 합평 시간이 나의 과거를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의 길을 보여주는 것 같다. 


늦은 밤 줌 모임을 마치고 우리는 왜 소설을 쓰는 걸까, 소설을 읽는 감정을 넘어서 스스로 한 번 '이야기'를 짓고 만들려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봤다. 





어떤 인물과 이야기를 짓고 싶을까 /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한밤중 책 동학(심선생님께선 '도반'이라고도 불러주시는) 우리의 첫 모임이 시작된 이유도 바로 김탁환의 '소설'때문이었다. 나는 이 책이 그냥 제목부터 좋았던 것 같다. 

대체, 무엇이, 왜? 

잊혀진다는 것이 왜 서러운가 말인가. 우리가 살았던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끊임없이 표현하고 잊지 않기 위해 '소설'을 만들고 누군가 '읽어주고', 알아채주길 바라기에 우리는 소설을 쓴다. 



이번 합평으로 저마다의 기획 의도와 작품에 대한 생각과 달리 다른 방향으로 혹은 엉뚱하게 생각의 방향이 전환되고 흘러가기도 했다는 걸 알았다. 감춰준 은유와 비유를 긴 글 안에서 찾아내기 쉬우면서도 어려운 장르가 바로 '소설'아닐까. 서포 김만중이 《구운몽》을 쓴 게 분명 어머님을 위한 것은 아닐 것 같다는 느낌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어, 소설 한 권은 잊고 있었던 「구운몽」을, 「사씨남정기」를 다시 읽게 하고 「창선감의록」에 대한 궁금증으로도 이어지게 했다. 제목 그대로 착함을 드러내어 의롭게 감화시키는 이야기라니, 제목부터 무릎을 치게 만든다. 





소설 읽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





이번에 줌으로 이야기하면서 


너무 재밌어요, 그걸 이야기로 얼른 써보세요. 쓰세요, 그거 그대로를 활용해서! 좋은데요!

영글음 작가님의 반달이 돼서 웃는 눈과 이야기를 들으며 한 번 더 느낀 건, 


아...

이야기로는 재밌게 잘하겠는데 이야기로 쉽고 재밌게 소설을 쓴다는 건 역시 어렵다는 거! 나에게 말하는 걸 그대로 소설로 써보면 되겠다는 교수님 말씀이 한 번 더 떠올랐다. 현이 작가님께서 퇴고하면서 내 글을 찬찬히 다시 소리 내서 읽어보는 게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셨다. 쓰기만 했지, 내 목소리로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는 이야기를 이번엔 한 번 소리로도 읽어보고 싶다. 갈고닦는 나만의 시간이 더 필요하겠다는 거, 물론 잘 알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기대되고 설렌다.


현이작가님의 침착하고 꾸준한 모습도 자꾸만 닮고 싶고 응원하게 된다. 든든하고 다정한 동료들을 얻었으니 혼자 쓰기 힘들고 넘어질 때도 안부를 물어주고 무엇보다 서로의 글을 '집중'해서 진심으로 읽어주고 또 읽어주고 싶다.


읽으려면, 우선 써놓은 '글', 나만의 소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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