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해지고 싶었으나 욱아해진 엄마
결혼을 하고 아이 낳고 키우다 보니 어벤저스 헐크의 대사 한 마디에도 뜬금없이 눈물이 나기도 한다.
I'm always angry
나는 언제나 화가 나있어
*그러니까, 굳이 일부러 화를 내지 않고, 그냥 화내는 내 본연의 모습을 감추지만 않으면 난 그냥 헐크인 거야,라고 말하는 듯한 브루스 배너박사의 모습이 쿨하고 멋있으면서도 '화'라는 말에 흠칫 깊은 공감을 느낀다.
20대엔 전혀 공감이 되지도 않았을 이 대사가, 30대엔 부당한 일엔 언제나 싫다고 할 말 다 하고 살았다고 생각해서 화도 별로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때도 욱하긴 했었나;;;) 40대가 되고 아이들 앞에서 꾹꾹 눌렀던 감정들이 하나하나씩 팡팡 터지는데, 마치 킹스맨의 마지막 피날레,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1번 op.39」과 함께 머리가 하나씩 폭죽처럼 팡팡 터지는 것처럼, 붙잡을 것도 없이 감정이 순식간에 안드로메다로 팡팡 터지는 것처럼 화가 울컥하고 터질 때가 있다. 터졌던 화는 폭죽처럼 후련하고 순식간이지만, 곧 화약냄새가 진동하는 후기처럼 씁쓸하고 허무해진다.
아이에게 화를 내는 순간조차 이런 생각을 한다.
[강력한 마음의 소리] 아, 어서 빨리 이 화를 주워 담아서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 다른 장소로 이동해서 심호흡을, 그래 심호흡을 하고 사태를 수습해야 해!
후아, 후아, 천천히 숫자를 세다가 7까지 가기도 전에 이미 버럭하고 성질 나서 씩씩 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쯤 되면 수습이고 뭐고 일단 버럭 나온 화가 먼저 아이들에게 호통으로 바뀐다. 슬프게도, 전부 쏟아 놓고서야 "사과"를 생각하며 고개를 떨군다. 꾸우욱 눌러야 하는 감정의 버튼 하나를 누르지 못해, 참지 못해서 또 내 감정에 내 기분과 상황에 나를 온통 다 빼앗겼다는 생각이 지배한다. 밀려오는 죄책감과 후회, 숨어버리고 싶어진다.
나는 이런 순간이 육아를 하면서도 꽤 잦았으며 상담과 기록, 성찰을 통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라진 줄 알았던 '버럭' 헐크가 또다시 등장했다. 오랜만에 등장이라 나 역시 더 놀라고 당황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고쳐진 줄 알았는데 다 사라진건줄 알았는데, 투둑, 커다란 실밥이 한 번에 뜯기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최근에도 신랑의 장기 출장으로 아이들과 함께 지지고 볶으며 하하 호호 웃으며 즐겁게 지내다가도 이런 순간을 또 맞닥뜨렸다. 10일 정도 되는 긴 시간에 하루 이렇게 크게 노할 일이면 뭐, 할 수도 있는데 나도 오랜만에 한 내 버럭이의 등장에 당황스러웠고 그날 바로 일기를 썼다. 펜을 들어 빠르게 날아가는 글씨체로 계속 또 쓰고 쓰고 쓰다 보니 나, 아...!
나는 욱하는 나 자신에게, 할 말이 되게 많았구나, 새로운 걸 깨달았다.
일기를 쓰다가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걸 연재해서 브런치에 일기로 써보면 어떨까, 부끄럽고도 창피한 민낯 그대로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흠 투성일지라도 내가 왜 이런 감정을 품게 됐는지, 나는 그 이후에 또 어떻게 대처했는지?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욱
▷ 부사
▶ 앞뒤를 헤아림 없이 격한 마음이 불끈 일어나는 모양
※ 예문 : 내 안에서 무엇이 욱 치밀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조세희 ,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중에서
그러니까 연재를 하게 된다면,
욱씨일기 같은 걸까.
욱을 품고 표출하는 엄마가
옥으로 다듬어지고 싶은 마음을 정리한 글이라고 해야겠다.
어른이 아닌, 그것도 내가 기르는 아이들에게 화를 낸다는 건 화를 낼만한 이유야 당연히 있지만 쏟아놓고 나면 기분이 안 좋다. 그냥 넘길걸 하는 후회와 나의 감정을 넘어, 나의 오랜 습성과 뭔가 감춰준 내면의 불안까지 터져서 폭발하는 기분, 건드려선 안 되는 폭탄의 마지막 선을 내 손으로 자른 기분이 들어 잔상이 남는다. 심지어 아이들 기분은 또 어떨까, 싶지만 내가 낳았다고 다 알 수도 없는 속이니 여기선 나의 마음을 좀 파헤쳐서 들여다보려고 한다.
◇ 내 심장이 대략 느낄 때 500번 정도 뛴다고 생각할 때
쥐의 심장박동이 1분간 660회라고 한다. 쥐가 흥분하게 되면 900회까지! 최근 읽은 로알드 달 책에서 쥐의 심박동 이야기가 각기 다른 책 두 권에서 모두 나온다는 걸 발견했다. 나는 어쩐지 이 사실이 신기하고 재밌어서 메모를 해두었다. 사람은 200만 돼도 어마어마한 거니까, 나는 좀 과장을 보태 500이라고 ;;;
◆ 아이 눈이 동그래지고 당황해서 눈물이 아니라 아무 말도 못 할 때
둘 다 쌍꺼풀이 없는 아이들이지만 화를 내고 있는 내 앞에선 처음엔 둘 다 눈동자부터 반응한다. 놀란 눈엔 눈물조차 흘릴 틈이 없다. 눈과 입은 점점 벌어지고 커진다.
◇ 이제 그만, 여기서 멈춰야지 하고 머리로 제어하고 싶어도 무언가 더 큰 힘으로 와다다다 말이 먼저 쏟아질 때
아까 했던 심호흡 기법처럼 어떤 것도 시도할 수 조차 없이 먼저 터진 화가 이미 먼저 뱉어진 순간, 그 순간이 버럭의 시작점이 아닐까.
여기까진 상태와 상황이었다면 제일 중요한 건 이거다.
나는 먼저, 왜 화가 났을까?
아이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했는지
아이에게 다시 접근하고 말을 건 방법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다짐)
하지만 인식하고 인지하고만 있어도 두 번째 화낼 때, 세 번째 화낼 때 그 속도가 늦춰진다는 것도. 부족한 나에게 쓰는 편지지만, 사랑하는 내 아이들에게 그리고 미래의 좀 더 단단해진 나에게 보내는 박수 같은 글이 되길 바라본다. ^^
#화내는엄마
#버럭
#욱
#몹시쓸모있는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