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 않게 무심하게 한 행동에 나는 욱한다
어른이 되니 좋은 점은 더 이상 키가 크지 않아(이미 성장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짧은 키로 멈춰버렸지만;;) 내 옷을 더 이상 살 필요가 없다는 거다. 옷가게를 했던 엄마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다양하고 예쁜 옷이 많아서 옷 욕심보다는 특이한 나만의 스타일의 옷이 좋았는데 결혼을 하면서 점점 커가는 아이들 옷이며 신발을 사기에도 바빴고 나는 그냥, 뭐 입는 거 입지 했더니 내 옷을 쇼핑 안 한 지가 꽤 오래된 것 같다. 어쩌다 외출하게 되면 신랑이 이제 애들 거 그만 사고 네 옷 좀 사라고 한 말을 반복해서 들었을 때 아이들이 받은 세뱃돈을 가지고 큰 마음을 먹고 내 옷을 샀다. 연분홍빛 짧은 니트, 앞에는 머리를 쫑쫑 땋은 것처럼 두 줄로 꼬아놓은 무늬가 들어간 게 예뻐 보였다. 1+1도, 할인품목도 아니었는데 그날따라 갑자기 쇼핑 지름신이 오신 건지 입고 싶은 옷 몇 벌을 고른 것 같다. 세뱃돈 주인들에게 미안해서 아이 들 거도 한 두벌씩 사고 내 옷을 세네 벌 정도 쇼핑해서 나오는데 기분이 참 좋았다. 그래, 그동안 자라지 않는다고 내 건 제대로 쇼핑한 지도 오래됐는데 신랑말처럼 바지들은 전부 무릎이 튀어나오고 헐렁해져서 핏이 예쁘지 않았는데 새 날, 새 기운, 새해를 맞이해서 내 옷을 먼저 고르니 뭔가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집에 건조기가 없어서 세탁기를 열심히 돌리고 건조대에 걸어놓고 늘 내 옷을 식탁 의자 등받이 쪽에 한 두벌 걸어났다. 아이 들 건 양말 하나도 쫙쫙 펴고 털어서 작은 건조대에 널어놓았는데 늘 내 옷은 대충대충 뭐 마르면 입지, 이런 심리였던 걸까. 그래도 새로 기분 좋게 손빨래까지 한 니트랑 폴로스타일 셔츠는 새것, 아끼는 마음으로 주름이 펴지게 쫙쫙 접어서 털고 의자 등받이에 고이 모셔뒀던 것 같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밥을 먹는데 둘째 아이는 뭔가 자기 몸에 걸리적거리는 게 싫은지 등받이에 수건이 있거나 작은 행주가 잠시 걸쳐 있어도 무조건 바닥으로 스윽 밀어 넣고 의자에 앉는 편인데 그날따라 의자에 앉으면서 내 옷을 아무렇지 않게 바닥으로 툭 떨어뜨렸다. 자주 하는 습관이니 다시 털어서 옆에 다른 의자에 걸쳐놨는데 아이는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다가 다시 한번 반대쪽 의자에 걸린 내 옷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때 뭔가가 툭 하고 끊어져 버리면서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면 되는데 그런 말조차 안 나오고 다시 걸었다. 세 번째 반복되자, 이를 꽉 물고
흐지마라 (이를 악물어서 거의 이런 발음이었겠다. 하지 마라!) 옷이 없는 의자에 가서 앉아.
하지만 계란 프라이가 채 나오기도 전에 아이는 한 번 더 내 옷을 무심하게 툭 바닥으로 떨어뜨렸고 나의 감춰뒀던 Wooc이 또 오랜만에 까꿍하고 그것 봐라, 사라진 줄 알았지? 하고 나를 약 올리듯 등장했다.
전광석화, 붙잡을 틈도 없이 예고도 없이 순식간이었다.
그만하랬지! 내 거라고! 내 옷!
엄마 옷이야!
그냥 아무 데나 앉으면 되고 치워달라고 하든지,
옷이 없는 의자에 앉든지 말든지
눈치를 좀 보란 말이야!
엄마가 세 번 넘게 참은 거 안 보여!
아, 내가 말하고 있지만 내 목소리가 지나치게 큰 괴물의 표효처럼 들렸다. 내 것, 내 옷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했는지 모르겠다. 나의 짜증과 분노를 동시에 쏟아내는데 아이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망설이면서 멍하게 나를 찾아봤다. 더한 실수를 했을 때도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 엄마가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왜 분노를 나에게 뿜어대는 거지?
무슨 상황인지 눈만 꿈뻑꿈뻑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뭔가 우물쭈물 입을 오물거리다가 웅얼웅얼 입 밖으로 내려다 말하기를 관두고 아이는 내 다리를 꽉 잡고 흔들었다. 스킨십으로 안아달라는 신호를 보내는데,
아. 도저히 안아줄 수가 없었다. 화가 나고 짜증이 밀려오고, 그런데도 아침상은 차리다 만 채여서 아이 어깨를 잡아떼서 자리에 앉힌 뒤에 신경질적으로 계란 프라이까지 식탁에 올린 후에 방 안으로 들어왔다.
도망치듯 들어왔다.
엄마 이상하다, 그렇지?
그러니까, 엄마 옷을 왜 자꾸 떨어뜨려? 옷이 없는 데로 앉아, 이리 와.
부엌에서 아이들이 주고받는 소리가 안방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내 침대까지 들렸다. 더 이상 어떤 말도 안 하고 꾹 참았던 화가 눈물이 돼서 터져 나왔다.
신랑이 일주일 넘게 출장 중이라 오랜만에 간 출장으로 방학 중인 아이들을 돌보는 게 체력적으로 후달리고 심적으로도 많이 지쳤던 것 같다. 특히 방학을 좀 더 특별하게 보내주고 놀아주고 싶었는데 늘 뜻과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부터 스스로 죄책감이 들었다. 둘째 아이 목욕부터 놀이까지 이제 커버린 첫째 아이 학습을 한 번 더 점검해 주는 것도 정신없고 바빴던 것 같다. 와중에 그날 아침, 내 자리는 늘 가득 찬 건조대에 빠져 대충 널었는데 나는 그 '대충대충'이 뭔가 나의 처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공기처럼 당연하게 그냥 엄마 옷은, 엄마 자리는, 원래가 여기인 것처럼.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아이는 그냥 옷을 떨어뜨린 것뿐인데 내가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것만 같았고 나의 속에 꽁꽁 묶어 놓은 감정도 툭 떨어져 버렸다.
반복된 집안일과 해소할 수 없는 육체 피로, 와중에도 계속 놀아달라는 둘째 아이에게 미운 감정이 점점 올라와 있었다
아이에게 뭐가 중요하고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제대로 뚜렷하게 가르쳐 준 적이 없다. 둘째가 늘 반복적으로 내 옷이나 부엌 식탁 의자 등받이에 걸린 수건을 떨어뜨렸을 때도 그냥 말없이 내가 걸면서
-아, 목이 긴 폴라티나 카라가 있는 셔츠도 불편해하는 아이니까 저렇게 또 몸에 닿는 게 싫은가 보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넘어가는 편이었다. 첫째 아이는 당연히 뭐가 걸려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잘 앉았고 거슬려하지 않았으니까 그냥 그대로 쓱 밀어버리는 행동이 왜 싫은지, 둘째에겐 설명조차 제대로 해 준 적이 없다. 사실 반복됐던 거슬리는 습관을 그때그때 잡아서 말해주면 충분히 이해하고 고칠 수 있는 아이임에도 이것쯤이야, 하고 내가 스스로 희생한다는 생각으로 지나친 적은 없었는지 돌아봤다. 생각보다 꽤 많았다. 사소하지만 내가 하면서 투덜거렸던 일들, 다시 정리한 습관들이 집안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늘 한숨을 쉬며 그냥 내가 잠깐 다시 걸면 되지, 다시 정리하면 되지, 했던 일이 결국은 아이가 스스로 알 거라고 기다리고 기대했던 거였는데, 나는 그렇게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도 올바른 생활습관을 알고 쌓아갈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나 혼자서 마음으로 반복했던 일에 피로와 불만이 쌓여왔다는 걸 알았다.
아이에게 엄마가 지쳐있는 감정이나 이렇게 했을 때 한 번 더 줍는 일이 얼마나 귀찮은 건지, 어떻게 행동해야 했는지 설명해 주거나 가르쳐 준 적이 없다. 아이가 스스로 때가 되면 알겠지, 했던 마음이 결국은 육체 피로로 인해 그날따라 폭발했다.
한 번의 사자후 같은 거대한 분노였지만 상담에서 배운 대로 바로 자리를 떠나 잠시라도 내 방(안방)으로 돌아와서 혼자 울고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더 이상 큰 분노와 잔소리 폭발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엄마의 큰 소리를 들은 아이들에게 밥을 다 먹을 즘에 다시 이야기를 하자고 불렀다.
쭈뼛쭈뼛 눈치를 보는 아이들은
-엄마는 배 안 고프세요?
화를 낸 엄마에게는 꼭 존댓말로 정중한 말씨가 나온다. ㅋㅋㅋ 국룰인가. 이제 좀 컸다고 바로 공부할 준비를 하는 첫째.(아마도 열심히 공부하면 엄마의 화가 누그러지고 자기에게 불똥이 튀지 않을 것 같기에;;;) 굳이 열심을 내서 안 했던 수학 문제집을 내 앞에서 열심히 푼다.
감정정리가 되면 심호흡을 하고 눈물도 닦고 거울로 내 얼굴도 점검해 본 후 아이들을 마주하는 게 좋다. 그러니까 화가 나는 장소로부터 탈출이 일 번이고 내가 왜 갑자기 심하게 화를 냈는지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 느껴진다. 내가 쏟아낸 분노를 고스란히 느꼈을 '욱'의 촉발점이 된 둘째 아이를 먼저 불렀다. 그리고 따로 작은 방에서 이야기를 꺼냈다. 쭈뼛거리면서도 나에게 와서 손을 흔들고 계속 안아달라 애교를 부리는 아이.
엄마가, 아까 갑자기 기분 좋게 밥 먹으려고 하는데 버럭하고 화를 냈잖아, 많이 놀랐지? 엄마는 엄마 소중한 옷을 선율이가 그냥 바닥에 슥 밀어서 던지는 게 싫었어. 선율이도 선율이 옷을 누가 밟거나 그냥 쓱 밀어서 바닥에 놓으면 기분이 어떨까? 우리 집 바닥이긴 해도 엄마도 엄마가 입는 옷, 좋아하는 책, 물건 모두 소중하게 취급받고 싶었는데 엄마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났어. 제대로 설명도 못해주고 어떤 행동이 옳은 거고 나쁜 건지 알려주지도 않고 화부터 내서 미안해.
계속 열심히 문제풀이 중인 첫째에겐 똑같이 *무표정을 유지하며 좀 더 문제 풀이를 하게 둔 뒤(하하, 미리 밝힐 필요가 없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스스로 공부하게 둔다.)
자기 전에 엄마가 밥상 앞에서 왜 그리 버럭 했는지 어떤 감정이었는 설명 해주고 옆에서 본 네 기분은 어땠니? 큰 아이에게 물어봤다. 엄마가 스스로 다스리지 못한 태도를 큰 아이에게도 사과했다. 엄마는 부족하지만 달라지고 싶다고 덧붙이며.
찰나의 순간을, 내 욱하는 마음하나 어른스럽게 통제하고 붙잡지 못한 나 스스로가, 야속하고 미웠다. 나도 모른 상태에서 주체하지 못한 감정이 튀어나오면 그 후에 몰려오는 죄책감이나 후회 같은 감정에 오래 사로잡히는 편이라 그게 너무 싫다는 걸 알면서도 반복했던 지난날도 떠올랐다. 그래도 토닥토닥, 아이들에게 짧고 굵은 버럭 한 번에 나만의 공간으로 피신해서 '화가 난 이유'를 생각했다는 점을 스스로 토닥토닥해 줬다.
오늘 화를 내지 않았으면 또다시 말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고 지나쳤을 다른 사소한 습관들을 일기장에 적고 아이에게 어떤 엄마로 되길 다짐하기에 앞서 내가 현재 가장 지쳐있고 힘든 부분을 살펴보기로 했다. 와르르 쏟아지는 내 불평과 한계를 글자로 마주하면 오히려 정리된 기분이 들어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나도 몰랐던 마음의 한 자락 가운데 아, 내가 여기에서 욱 버튼이 또 눌러졌던 거구나 느낄 수 있었다.
아이에게 하지 마! 그만! 말하기 전에 왜 하면 안 되는지 충분한 설명과 가르침이 우선돼야 한다. 엄마 눈치를 살피느라 안아달라고 매달리고 다가오는 아이랑 거리를 두고 충분히 이야기한 후 사과는 시간이 좀 지나서 마음이 안정 됐을 때, 진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감정적 엄마라 말하면서 내가 운 적도 우는 아이를 오열하며 껴안아준 적도 많지만 이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포용하고 감싸주기 전에 왜, 그랬는지 이유를 찾고 앞으론 어떻게 하자 담백하게 다짐하는 걸로 마무리하는 게 좋다.
그리고 일기를 쓰고 아이들이랑 이야기하면서 느꼈는데
그냥 내 옷이든 누구 옷이든 좀 더 큰 건조대를 사서 널면 되잖아? 올해는 건조기를 꼭 사도 되고! 탁탁 털어서 앞 베란다에 빨래 너는 게 좋아서 건조기를 따로 사지 않았는데 결국은 미련한 내 습관과(내 옷만 의자 옷걸이에 말리는) 행동이 원인은 아니었을까, 돌아보는 시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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