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기 위해 애쓰는 몸부림 : 살기 위한 '욱'wooc도 있다
백조 알지? 겉으론 우아해 보여도 살려고 발버둥 치는 새, 백조의 발을 보면 물속에선 난리도 아니잖아.
겉으로만 우아하고 고고한 거지, 뭐. 물갈퀴도 없어서 빠져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거야, 나는.
일산에 이사 오고 보니 주변에 다둥이 엄마들이 많았다. 아이를 세 명도, 네 명도 어찌 그리 잘 키우고 기른 건지 아이들만 봐도 감탄인데 사실은 엄마들의 태도에 더 놀랄 때가 많다. 전혀 목소리를 높이거나 표정을 찡그리지도 않고 아이들 스스로가 척척,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과 주변 분위기를 조성해 주고 조금 더 응석을 부리려고 하면 바로 눈빛 한 번으로 제압해 버리는 엄마들, (와! 멋져라! 내가 바라는 내 모습도 딱 저런데...)
우리 언니도 생각났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영국에 살고 있는 우리 언니도 아이들이 네 명인 다둥이 맘이다. 둘째 예나가 자폐아임에도 두 아이를 허덕이며 키우는 나보다 (청소도 그렇지만 심적으로도) 정돈이 잘 돼있고 뭔가 안정된 것처럼 보인다. 보고 있자면 신기한데 반대로 나를 보는 언니 역시 신기하고 이상하긴 마찬가지가 아닐까, ㅎㅎ
영국에 언니를 보러 갈 때마다 언니의 삶 자체를 온전하게 볼 수 있었다. 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 이어지는 온전한 삶을 같이 눈뜨고 살아보니 도착한 지 이틀째부터 나는 평소에 없던 두통이 다 생겼다. 일단은 수면 부족과 과로, 피로 때문이 분명했다. 아가씨 때는 더 철이 없을 때라 나랑 좀 더 놀아달라고 언니에게 징징 거렸고 친정엄마랑 갔을 때도, 큰 아이가 어렸을 때 단 둘이서 갔을 때도 전혀 미동 없이 변함없는 언니의 일과는 따라가기 역시 버거웠다. 그래도 언니의 모습만큼은 마치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처럼(용비어천가 2장) 꿋꿋했다.
꿈꾸는, 닮고 싶은 이상적인 엄마상이 나와는 너무 거리가 멀기 때문일까. 처음부터 큰 목표(?)를 잡은 탓에 나는 내 마음부터도 정돈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늘 불안하고 사소한 거에도 툭하면 그렇게 짜증이 났다.
잠버릇이 험한 큰 아이가 영국에 도착해서 바뀐 잠자리에 낯설고 피곤했는지 자다가 갑자기 방향을 여러 번 틀어서 뒤통수로 내 얼굴을 강타한 적이 있다. 새벽에 비명을 지르면서 깼는데 코피가 줄줄, 이런 식으로 코피를 흘리게 될 줄 전혀 예상 못했던 터라 너무 아프고 억울해서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 자는 아이를 깨워서 흔들고 등과 엉덩이를 마구 때렸다. 자다 깬 아이는 영문도 모르고 엉엉 울고, 와중에 놀랐는지 기저귀에 응가까지 했는데 하... 총체적 난국이었다.
똥 좀 그만 싸라고! 하루에 몇 번이나 싸는 거야!
드디어 나타난 욱과 동시에 새벽에 온 식구를 깨우고야 말았다. 아이가 큰 일을 볼 때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할 때라 소변은 괜찮았는데(이때쯤은 기저귀 갈기, 달인 경지에 이른다. 아이가 *17개월 무렵 영국에 갔다) 대변볼 때마다 화장실에서 씻기는 게 어찌나 귀찮던지, 욕조에 끙차, 아이를 들어서 씻기고 다시 빼는 그 과정부터 하고 나면 진이 빠졌다. 샤워기를 빼서 깨끗하게 씻기고 내 손도 깨끗하게 씻고 (내 손보다 아이 엉덩이를 먼저) 말리고 그때마다 로션이며 발진(수도) 크림까지, 그 반복된 사소한 일이 수없이 했는데도 도저히 익숙해지질 않았다. 아이를 키우는 건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가장 기본적인 활동이 기초되는 일인데, 먹으면 당연히 소화돼서 볼일을 보는 게 이치인데 나는 그게 유독 더 지치고 힘들었다.
아이에게 버럭 화내는 소리에 후다닥 달려온 언니는 먼저 눈물콧물 범벅된 아이를 달래서 화장실에 씻기러 데려갔다.
-어머, 이 밤에 무슨 난리야. 얼마나 놀랬어? [울고 있는 아이를 먼저 달래주며] 선재야, 이모랑 가자, 이모가 깨끗하게 씻겨줄게.
너는 왜 꼭 화장실 데려갈 때마다 화를 내냐, 아이한테는 건강하고 자연스럽고 생리적인 신호잖아.
엊어맞은 코도 얼얼하고 (아이의 단단한 뒤통수 뼈로 맞았지만 마치 누군가의 주먹으로 강타당한 기분이 들 정도로 아팠다 T_T) 쓰렸지만 언니의 말 한마디가 더 띵했다.
맞아, 더 어린 신생아 때는 하루에 볼일을 하루만 못 봤을 때는 전전긍긍하면서 걱정하기도 하면서 배를 쓸어준 게 엊그제 같았는데 반복된 화장실에서 씻기는 일이 뭐라고 나는 이렇게나 똥 싸는 것까지 욱하고 화내는 엄마가 된 걸까.
언니와 형부 역시 조금 자란 큰 조카 예찬이를(당시에 8살쯤 됐다) 빼놓고는 나머지 아이들이 고만고만했는데, 한 아이가 화장실을 쓰면 거기는 동시에 세, 네 명이 신호가 오고 아직 어려서 뒤처리가 필요했는데 아무도 그걸로 화내는 사람이 없었다. 남들이 자연스럽게 묵묵하게 해 오는 어떤 일상의 한 부분이 나에겐 화가 나는 일, 희생하는 일처럼 느껴진 이유는 뭘까?
나는 먼저, 왜 화가 났을까
나만의 씻는 요령이나 방법, 말리고 로션에 크림까지 방법이나 과정이 너무 엄격하고 까다로웠다. 나도 잘 몰랐는데 그냥 물로만 가볍게 닦이는 엄마들도 많다는 사실에 오히려 놀란 적이 있는데 나는 씻는 건 물론이거니와 기저귀 발진도 없는 아이를 수도크림, 안티박테리아 크림까지 발라가며 케어해야 했으니 그게 아이를 위해선 옳은 거고 이렇게 정한 거니까 당연하다고만 여겼다. 내가 좀 더 편하게 아이를 보는 엄마 입장에서 편하게 바꿨을 수도, 생략했을 수도 있는 순서를 너무 꼼꼼하게, 빡빡 닦고 강박적으로 절차를 뒀다. 그러니 지칠 수밖에. 그럼 그 화살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갈 수밖에 없다.
유난스럽지 않다고 생각한 나 자신도 내가 정한 기준이나 틀이 몹시나 중요하고 그걸 안 지키면 마치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강박적인 마음이 들었다
17개월 큰 아이에게 그때까지도 사탕조차 먹이질 않았는데 영국에서 사촌들이 전부 사탕 먹는 걸 보고 찬장에서 혼자 사탕이랑 초콜릿을 찾아내서 껍데기가 까지지도 않으니까 막 울면서 껍질을 질겅질겅 물고 빨고 씹으면서 먹기 위해서 몸부림친 적이 있다. 내 기억엔 핼러윈 데이행사로 아이들이 받아온 맛있는 사탕이 한가득이었다. 절대! 절대, 사탕은 안돼! 하는 철칙 때문에 그 정도로 울고 눈물 콧물에 사탕을 껍질 째 씹어먹는 아이에게 까서 줄 법도 한데 나는 안된다며 끝까지 주질 않았다.
왜? 이건 엄마가 정한 규칙이고 이 규칙을 아이가 5살 때까지 지키고 싶었으니까. 이때의 나도 참 어리석었던 게 아이는 그럼 나 혼자서 키워? 조금만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면 사탕을 쭉쭉 빨고 맛있는 초콜릿까지 먹는 아이들이 지천에 널려있는 것을. 언니네 집에서 있었던 경험이 나에겐 중요한 변화의 계기가 됐다. 끝끝내 우는 아이에게 사탕껍질 하나조차 까주지 않는 내 모습에서, 나 역시도 혼란스럽고 불안했다. 화장실에서 아이의 큰 일을 처리할때도, 나의 이상하리만큼 집착스러운 「깔끔(떠는것)」을 생각하자면, 이런 갑갑한 예가 나에게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아이를 양육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게 있다. 이렇게 정한 규칙이 나를 위한 건지, 아이를 위한 건지, 나는 전부 아이를 위한 약속이라고 생각했던 게 (위생 부분에서 철저하고 치아나 건강 부분에서 타협하지 않는 거) 사실 그 마음이야 아이를 위한건 맞지만 까다롭고 지나쳤던 부분이 나의 욕심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됐다. 내려놓았으면, 좀 더 편하게 느슨하게 허용했으면 거기에서 아이뿐 아니라 나의 행복과 만족감도 올라갔을 거다.
언니 손에 이끌려 씻고 상처를 보듬고 돌아온 우리 선재. 의사소통도 잘 안 되는 아이가 눈물이 글썽인 채로 나를 더듬고 어깨를 토닥토닥 해준 그 작은 손길을 지금도 기억한다. 잠결에 엄마를 한 대, 모르는 와중에 무의식적으로 움직였을 뿐인데 …. 사실, 17개월 아이랑 비행기를 타는 것부터 나에겐 모험이었고 그날 12시간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살면서 가장 많은 사과와 고개 숙이는 일이 반복돼서 나는 그 과정이 너무 수치스럽고 이미 화가 난 상태였다. 아이는 아이대로 처음 탄 장거리 비행에 낯설고 이상해서 미친 듯이 비행기 안을 헤집고 돌아다닌 것뿐인데 나중에 보니 아이가 그 장시간동안 아무것도 안 먹고 (기저귀를 한 번도 갈지 않아도 깨끗했다) 안 자고 물조차 마시지 않을 만큼 긴장했던 건데 잠자리에서 이어진 피곤함, 아이의 상태보다 언제나 내 감정과 피로가 중요했다.
엄마의 세심함이 부족했다고 여기는 순간이다. 늘 내 감정의 세밀함을 바라볼 때야 비로소 네(아이)가 보인다는 게 부끄럽고 미안했다.
선재야, 엄마는 한 번도 주먹으로 얼굴을 맞은 적이 없는데 네 뒷통수에 한 방 맞으니 너무 아팠어. 돌머리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눈 앞이 핑핑 돌더라고. 우리 아가도 낯선 비행, 낯선 잠자리, 전혀 모르는 이 환경이 전부 피곤하고 힘들었지? 엄마의 욕심과 계획대로 움직이면서 늘 짜증만 잔뜩 내고 화를 못 참아서 미안해. 엄마가 나영이 이모같이 천사 같은 엄마라면 참 좋겠다. 그렇지? 여기 엉덩이랑 등이랑 잠결에 화가 나서 코피 난다고 엄마가 마구 때린 거 너무 미안해.
응아 한다고 그게 뭐라도, 다 잘한 건데 그것도 엄마가 힘들어 힘들어, 그만 싸라고 말해서 미안해.
엄마가 뭔가 네 '응가'까지 싸라 마라 해. 그럴 권리도 없어. 그건 온전히 네가 스스로 유일하게 최초로 결정하고 표출하는 의사인데 존중하고 도와주진 못할망정 화를 내버려서 미안해. 앞으론 바싹 붙어서 자기 보단 엄마도 간격을 두고 대비하고 어딜가도 환경이 변할 때 네 마음과 상태를 더 많이 살펴줄게. 사랑하고 우리 언니를 보고 싶다는 한 마음에 어린 너까지 먼거리를 날아와줘서 정말 고마워. 우리 여기서 어마어마한 시간을 보내고 가자!
앞에서 많은 다둥이 엄마들 이야기를 했다. 내 친구 민*이 역시 제각기 개성 강한 세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이다. 어린시절부터 발도르프로 세 아이의 육아는 물론이거니와 책 한 권, 한 권씩 아이들의 만들기며 감상같은 창작 활동도 이어간다. 지칠법도 한데 체력도 강하지 않은 민*이가 하지만 한 번도 아이들에게 화 내는걸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바둥바둥 매일 지쳐서 허덕이는 나와 에너지 넘치는 선율이까지 챙겨서 픽업도 해주고 바람도 쐬주고, 아이랑 놀아주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하지? 원래 차분한 사람들이 전부 다둥이 엄마가 되는 거야? 하고 물은 적이 있다.
백조 알지? 겉으론 우아해 보여도 살려고 발버둥 치는 새.
백조의 발을 보면 물속에선 난리도 아니잖아.
겉으로만 우아하고 고고한 거지, 뭐.
물갈퀴도 없어서 빠져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거야, 나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특히 우리 모두 아이를 처음 키우는 '엄마'아니던가! 자연스럽게 학생이 되기도, 내가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엄마가 되기 위해선 백조처럼 발버둥 치고 몸부림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연애의 과정을 거쳐 자연스럽게 결혼을 했다면 출산 이후의 과정은 하나도 자연스러운게 없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이게 맞는건지 뭔지 모르겠고, 어쩌면 그게 매일매일 반복되는 과정일 수도 있다.
더 완벽하고 그럴듯하게 잘키우고 싶지만 거기에 집착할수록 아이와 나는 더 크게 울어야 했다. 깨달아야지, 언제부터 네가 그렇게 엄격하고 완벽한 사람이었냐고. 허당미 가득하고 철저하기보단 털털에 가까운 사람인데 하루 아침에 깔끔을 떨라고 강박적으로 구니, 불안은 절로 커질 수 밖에. 인정해야지.
밤새 4명의 아이들, 형부와 언니 빨래까지 더해 세탁기를 세 번씩 돌린 우리 언니도 계단까지 청소기 두 번 미는 건 기본이고 건조기에서 꺼낸 어마어마한 빨래를 아이들이 전부 다 잠든 늦은 밤까지 하나하나 일일이 손으로 개야 했다. 그것 뿐이랴, 돌아서면 밥을 4번 넘게 하고 차리고 때때로 아이들 간식도 챙겨줘야 한다. 내가 해준 거라곤 그렇게 고작 언니의 살림, 청소기 미는 걸 돕고 옷 한 번을 개 주는 것뿐이었는데도 언니는 그냥 묵묵히 이게 자기 일이니 그 자릴 지키고 헤엄치고 버텨왔던 거다. 왜냐하면 누구도 강요한 사람 없이 스스로 택하고 결정한 일이기에 책임을 지는 법을 알았던 거다.
여러 아이들을 돌보다 보니 거기에서 쌓이는 노하우도 있고 한 번에 감정을 드러내서 지나친 칭찬이나 에너지를 막 드러내지 않아도 늘 일관되게 화를 내지 않고 소통한다는 점이 존경스러운 엄마들. 자기에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더 줄어들 텐데도 그 안에서 자기 읽고 싶었던 소설을 읽거나 미술관에 가는 엄마들도 있었다. 깊이 잠든 아이들을 보고 시원한 맥주나 막걸리 같은 노동주(^^)로 가끔 마음을 달래는 엄마도 있었다.
이처럼 자기만의 시간을 꼭 활용하는 모습에서 (*우리 언니는 잠깐의 5분 시간 짬이 생겨도 성경책을 찾아서 읽거나 기도를 했다) 나는 살기 위해 나를 깎아먹는 '욱'대신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시작은 살기 위한 나만의 욱은 분명했다. 한 번 터져서, 버럭 덕분에 나를 또 깨닫게 된 계기는 분명했으니까.
화가 나고 코피가 터지는 아픔도 언젠가는 네가 자라서 읽으라고 아이에게 주는 육아일기 책에 남겼다. 유치하긴 하지만, 쓰다보면 결국 내 얼굴에 침 뱉는 것 같은 육아일기였지만 사실 이런 기록은 나에게 더 큰 변화를 주었다. 미성숙한 내 마음을 조금씩 알아갔고 더 '넓은 마음', 완벽하지 않아도 아이와 더불어 여유있고 내가 편하게 '살' 길을 찾아야 했다. 나는 백조처럼 발짓조차 와다다다 못하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지만 (그냥 온몸으로 첨벙첨벙 물을 사방에 다 튀는 물개같은 사람이라고 해야할까, 나는 ㅋㅋ)
거기에서도 나름대로 떠있는 방법을 찾게 해 줬으니까.
한국으로 돌아와서 바로 배변 훈련을 시도한 아이는 이틀도 안돼서 기저귀를 뗐다. 그리고 영국에서 잔뜩 받아온 사탕이며 젤리를 늘어놓고 하나씩 사탕 까는 법도 가르쳐줬다.
#다둥이엄마들의침착함
#외동엄마들도멋져
#차분한엄마들은타고나는걸까
#살기위한버럭
#엄격한자기기준
#불안정한마음에서분노가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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