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면 싸우고 흩어져야 산다
사고는 늘 붙어있을 때 일어난다. 놀이터에서 아이가 흥분해서 놀 때면, 놀이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 재밌을 때 터지는 '꺅꺅!' 돌고래 비명과 '재밌어, 좀만 더 놀래요'가 나올 때면 항시 긴장해야 한다. 너무 빨리 달리느라 발을 헛디디는 사고가 벌어지거나, 한 뭉탱이로 몰려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올 때 몸이 끼거나 하는 사고가 종종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흥분은 금물, 이렇게 흥분도가 올라오면, 워워, 조금 쿨다운을 시켜줘야 한차례 안정하고 다시 놀이를 시작할 수 있다.
간식 좀 먹을래?
목마른데 음료수 마시고 다시 뛰자!
땀 좀 닦아보자, 엄마가 부채질해줄게.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밤에 별이 뜰 때까지, 놀이터에서 놀면서 숱한 사건·사고들을 보고 듣고 겪었다. 아무렇지 않게 미끄럼틀(안으로 타는 게 아니라 바깥을 타고)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대로 발을 헛디뎌서 추락하는 바람에 팔을 깁스 한 아이도 봤고 여러 번 봤고 나뭇가지나 막대사탕을 든 채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다가 그대로 목에 꽂히는 사고가 벌어진 일도 있었다. 가장 심각한 건 빠른 속도로 경사를 내려오는 킥보드와 뛰느라 정신없는 아이가 "쾅"부딪혀서 그대로 둘 다 기절하는 사고였다. 안전 불감증에 걸린 사람처럼 직접 사건 사고를 보고 들으니, 벤치에 앉아있기보다는 가방을 벤치에 모셔두고(?) 옆에서 지켜보고 뛰는 게 좀 더 안심이 됐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켜보는 시간보다 빠른 문제해결이나 '수습', 행동이 먼저 나가는 엄마로 자리 잡은 것 같았다. (여기엔 장 ·단점이 있다) 아이들 둘 다 어딘가, 삐거나 뼈가 부러진 적 없이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건 감사한 일이지만 둘째가 조금씩 크면서 예상치 못한 곳에서 형제의 난이 일어났다.
아니, 다섯 살 터울이 왜 싸워? 싸울 일이 뭐가 있긴 있어?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모든 성장엔 고통이 따르고 누구도 폭풍 성장의 시기는 예측불가, 놀이터 자신만만 엄마인 나조차도, 폭풍전야의 신호조차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붙어있을 때 즐겁게 마주했을 때 늘 사건 사고가 터지는 법이다. 아예 처음부터 사이가 멀면 다툴 일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둘째가 누워있을 땐 몰랐는데 점점 걷고 뛰고 형아를 따라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다툼이 시작됐다.
그건 여태껏 내가 놀이터에서 마주하고 대처할 수 있었던 양상이 아니었다. 컨트롤이 가능하다고 상상했던 내 모든 자부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형제의 싸움은 강렬했다.
순식간에 벌어졌다.
예를 들면 왠지 모르게 혼자 흥겨운 둘째가 멀쩡한 안마 기구로 가만히 앉아있는 형아 머리를 세게 친다.
→ 아무 이유 없이 도깨비방망이처럼 그걸 왜 휘두른 건지, 짐작조차 불가능하다.
→ 하 … 이미 머리를 감싸 쥐고 떼굴떼굴 구르는 첫째, 씩씩 콧김이 나온다.
모든 상황을 눈으로 보고 있으나 도무지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 첫째를 진정시킬 새도 없이 아이는 바로 동생 목덜미를 움켜쥐고 바짝 약이 올라 어쩌지 못하는 손톱을 세우고 닥치는 대로 할퀸다.
→ 피가 투둑, 바닥에 떨어진다.
이것들아! 작작 좀 하라고! 피나잖아!
왜 피날 때까지 뜯는 거야?
동생이 실수했잖아.
아, 이번에도 어김없이 화살이 첫째에게 간다. 잘못은 분명한 둘째인데 늘 코피 터지거나 할퀸 목덜미에서 코피가 터지거나 형이 밀어서 무릎이 찢어지고 피가 나면, 이성의 끈이 떨어진다. 사실, 실수가 아닌 것도 잘 안다. 웃으면서 먼저 휘두른 건 둘째라는 것도.
이럴 때 신랑은
-선재(큰 아이)가 화날만했네! 잘했어! 당하지 말아야지!
꼭 첫째 편을 들면서 피가 나고 엉엉 우는 둘째에게 '에이, 그 정도는 괜찮아.' 그냥 모른 척 넘어간다.
아니지. 다쳐서 울고 있는 둘째 아이에게 어른 형에게 사과하라고 한다.
아니, 잘했다고? 지금? 피가 나는데? 뭐가 뭔지 복잡한 상황에서 나는 아이들이 다치면 이성을 잃고 화가 나고 어쩔 줄 몰라한다. 앞뒤 전후 사정 다 파악할 필요 없이, 피 흘리게 한 장본인에게 나의 버럭을 시전 한다.
첫째의 답답한 심경은 잘 아는 신랑의 대처는 유연하고(본인이 첫째임) 둘째의 억울함과 서러움을 잘 아는 나는 결국 선율이(둘째) 편을 들면서 알 수 없는 Wooc의 기운이 점점 솟구친다.
복식호흡, 사자후 같은 단전에서 막 끌어올린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야! 야! 야! 이눔새뀌들아!
나는 눈앞에 뻔히 벌어진 상황을 내가 대처조차 못하고 막아도 그 힘을 뚫고 공격했다는 사실 만으로 열받기 시작한다. 첫째 아이가 더 어렸을 때는 둘째가 너무 어려서 몸으로 엉키고 부딪힐 일이 없었는데 둘 다 한 살, 두 살씩 성장하면서 힘이 무지무지 세져서 통제불능 상태가 된다. 날아오는 팔을 잡아도 순식간에 어딘가 생채기를 낼 정도로 빨라지고 강해진 아이들. 그래, 이성을 잃은 아이의 폭주를 힘으로 막는다는 게 어찌 가능할까.
문제를 해결하면서 기쁨을 느끼고 여태껏, 상황 수습에 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평온했던 일상이 바사삭,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집에서 이런 사건이 벌어져도 화를 주체할 수 없는데 바깥에서 다투는 일은 펑, 하고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야야야! 소리가 절로 나가도 수위를 조절할 수 없다는 생각에 너무 갑갑해서 눈물이 뚝뚝 흐른 적도 있다. 더 놀겠다고 땡강 피우는 둘째를 뒤에서 그대로 밀어서 얼굴 전체가 까지게 한 날에도, 첫째 아이의 말은 당당했다.
-엄마를 너무 힘들게 하고 말을 안 듣잖아요!
부들부들, 나를 생각한다면 제발 좀 조용히 아무 사건 사고 없이 지나가는 하루를 선물해 주면 좋으련만. 매일 다툼이 반복된 건 아니지만 까르르 잘 놀다가도 어느 순간, 돌변하듯 둘이 뒹굴어 싸우는 날이 잦아졌다. 컨트롤이 가능했다 생각한 아이들 둘 다 통제조차 안돼서 컨트롤 타워고 뭐고 처음부터 그런 게 있지도 않았지, 자괴감이 든다. 엄마는 흥분해서 말을 하고, 말리고 있는데 왜 아무도 내 말을 안 듣냔 말이야?! 아, 내가 엄마가 맞긴 맞는 걸까? 지들 좋을 때만 엄마고 이성 잃고 둘 다 눈에 뵈는 게 없을 땐 엄마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네!
둘 다 내 손에 큰 아이들인데 내 말을 전혀 듣지 않고 내 위치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무용지물인 것 같을 때, 호통은 치고 있고 화를 내는데 그 대상들이 전혀 날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
아이들의 분노는 서로를 향하고 있을 때 나는 갑자기 엄마라는 자리가 버겁고 화가 난다.
상황이야 벌어졌고, (늘 둘째가 먼저 시비를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한다) 그걸 좀 참아내고 다르게 재빠르게 개입해서 내가 해결해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이 생각부터 오만한 착각이었다) 왜 그, '찰나'를 참지 못하냔 말이냐고!
사실은 나의 이런 생각부터 뭔가 잘못된 출발은 아니었을까.
별자리 수업을 마치고 큰 아이가 만든 멋진 '작용 · 반작용 로켓 자동차'를 들고 나왔을 때 둘째 아이는 득달같이 형에게 달려들었다. 내 거, 내 거! 마치 맡겨났던 물건을 찾아오듯 바로 형아 손에서 낚아채서 도망가는 아이. 친구들도 있고 선생님, 학부모들도 다 자리한 공간에서 더 자존심이 상한 건지, 큰 아이도 절대 양보를 안 한다. 끝까지 따라가서 절대 빼앗길 수 없다는 자기 입장을 고수한다. 둘은 그렇게 한데 엉켜 계단 위에서도 드러눕다시피 한 자세로 (부끄럽단 말이다, 나는!!) 투닥거린다. 밤 9시가 넘어 끝나는 수업이라, 차량 탑승 시간이 우리 때문에 늦어지는 건 용납할 수 없다.
화는 머리끝까지 차오르는데 거기에서 각자 따로 부르고 설득하고 시간도 기력도 부족할 땐 자연스럽게 또 그런 말이 튀어나온다.
그 방법이 정정당당하지도 않고 좋은 방법도 아님을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냥 한 명이 더 포기하고 포기시키는 게 왠지 가장 빠른 방법일 것 같고, 나 역시 그걸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엄마가 되고 있었다. 그날도 이성을 잃고 양보를 강요하는 나 대신 혜진쌤이 엉켜있는 둘째를 먼저 떼서 차 안으로 데려갔다.
차에 타서도 '만든 자동차가 뭐라고, 그냥 좀 양보해 주지!' 선재에게 양보를 외치는 나에게 앞자리에 선율이와 앉은 혜진쌤이 (*나를 진정시키며) 돌아서 이야기했다.
-아니에요, 선재 입장에선 너무 억울할 것 같아요. 저도 첫째인데 첫째는 늘 양보를 해주고 해 줘도 끝이 없단 말이죠. 선율인 설득이 안 되는 상태지만 결국 선재가 양보해 줬으니 일단 진정하소서. 아유, 우리 집에선 첫째가 양보고 뭐고 절대 없어요. 선재 정도면 양반에 착한 거예요.
내 아이를 보면 이성을 잃지만 다른 아이, 조금만 거리를 두고 제삼자가 돼서 지켜볼 땐 왜 이리 잘 보이는지, 순간 그동안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큰애만 다그치고 버럭을 하더라도 나의 욱이 향한 곳이 어디인지 살펴봤다. 내 옆자리에서 툴툴거리면서도 결국 또 동생에게 자기가 2시간 내내 작품을 만들고 제대로 가지고 놀지도 못한 선재가 이번에도 양보를 해줬구나. 부끄럽고 미안했다. 조금 더 크고 성장했다고 생각한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말만 잘 듣길 강요한건 아닐까.
더 통제불능인 둘째에게 에너지를 빼기 싫어서 그게 더 힘들고 멀고 먼 길인걸 아니까, 설득의 길로 내가 먼저 끈기를 가지고 훈육하고 양육할 자신이 없어서 한쪽 아이의 희생만을 강요한건 아닐까 내 마음을 계속 생각해 봤다. 혜진쌤의 말 한마디에 뭔가를 얻어맞은 것 같고, 결국 양보까지 한 아이에게도 잔소리를 보태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집에 오자마자 두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붙어서 논다. 풍선 자동차를 아직 제대로 불 힘이 없는 작은 아이는 형에게 도움을 청하고 형은 자연스럽게 불어주고 자동차를 놓아준다.
"그르니까 앞으론, 좀 기다리란 말이야. 네가 어떻게 노는지도 모르는데 나한테 계속 달라고만 하면 널 도와줄 수 없어. 형은 처음부터 네가 오늘 내 수업을 기다려줘서 다 양보해 주고 같이 가지고 놀려고 했단 말이야. 내 거는 뭐든 다 네 거야. 알았지? 뭐든 형이 다 줄게. 그런데 넌 어떻게 가지고 노는지 모르니까 방법을 모르잖아. 먼저 설명을 들어야, 해! 알았지? 꼭! 이제 형아 말 잘 들을 거지?"
-끄덕끄덕
(형님 말에 충성 모드로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다.)
나는 너무 막무간에, 제 멋대로 내 기를 전부 빼앗아가는 둘째를 가르칠 생각조차 못했는데 오히려 더 쉬운 첫째에게 나의 화풀이를 하고 '욱'을 전부 쏟아낸 건 아닐까. 진정된 아이들은 자연스레 다시 자리를 찾아갔고 이전보다 더 돈독해 보였다. 나보다 더 능숙하게 둘째에게 설명하고 모든 걸 다 양보해 주고 "내 건 전부 네 거야"라고 말해주는 첫째 아이 말에 갑자기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아이가 나보다 더 넓은 마음을 품고, 나보다 양육도 잘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 부끄럽기도 하면서. 나는 과연 누구에게 양보하고 참는 엄마였던 걸까.
어렸을 때 부모님이 언니랑 내가 싸울 때 둘 다 똑같이 앉혀놓고 가장 심하게 혼내셨는데 그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게 뭐 저렇게까지 일장연설하고 흥분할 일이야? 어련히 놔두면 시간 지나 또다시 우리 둘이 잘 놀텐데, … 지겹네.
맞아, 실제로 알아서들 잘 큰다. 폭력사태로 벌어지기 전까지 사소한 말다툼이나 서로가 서로를 이르는 작은 일에는 그냥 눈 감고 모른 척 넘겨버려야 한다. 그래야 옥신각신 해보다가 서로의 영역을 확인하고 각각 눈치도 보면서 존중하고 이해하는 마음도 쌓아갈 수 있다. 나랑 언니도 그랬다. 부모님의 꾸중이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고 해야 할까. 서로 억울한 마음은 같이 벌 받으면서 풀리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고 서로 다투며 잠깐 떨어져 있는 그 '거리'를 갖는 순간부터 풀어진다.
우격다짐, 주먹과 쌍코피가 오가는 순간에서 두 아이를 떨어뜨려 놓기란 불가능이지만 적어도 앞으론 무조건 처음부터 양보 양보 양보! 네 탓이야, 네가 조금만 더 참았어야지,를 강요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떨어뜨려놓고 서로 각자 다른 데서 생각하게 하고 나는 둘러보고 살펴보는 '최소한의' 역할만 하기로.
문제 해결, 뭣이 중한데? 해결사가 될 것도 아니면 애들끼리 좀 두기로 했다. 주먹이 오고 가는 게 아니라면 아이들 스스로 해결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성급한 개입보다 현명한 결과가 나올 거라고.
믿질 못했다, 아이들을. 지나치게 믿었다, 문제 해결능력이 좋은 엄마라고.
대단한 착각을 하며 살았다.
사실은 한 명을 윽박질러 대충 편하게 이르는 길로 가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어쩌면 내가 아는 것보다 동생을 더 사랑하고 아끼는 형인데 그 마음을 왜곡하고 내 식대로 바라본 건지도 모르겠다.
각각 서로의 고유한 특징과 개성을 존중해 주며 서로 적당한 거리 속에서도 든든한 서로의 지원군이 돼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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