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살은 99살과 같다
정리 정돈, 사소해 보이지만 어느 순간 사람을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특히, 그중 하나가 지저분한 식탁, 아이들이 툭하면 저지르는 실수인 '쏟거나 흘리는' 일이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런 일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앉아서 이유식을 먹는 시기부터 시작되는 식탁, 음식, 밥상머리에서 전쟁 같은 일은 일상이 된다. 사실 이 시기만 해도 온몸에 밥풀이며 야채, 고기 같은걸 다 범벅하고 먹어도 혼자 숟가락질을 하는 모습이 귀여워, 잘 먹는다, 예쁘다 해줬는데 (심지어 수저를 쥐고 사방팔방 흔들어도 화는커녕, 다 먹고 씻겨주지 뭐, 이렇게 생각했더랬다) 말이 통하고 스스로 숟가락, 포크질, 젓가락질을 할 무렵부턴 반복적으로 흘리거나 특히 액체류인 물이나 주스, 국을 쏟는 일 같은 게 몇 차례 반복되면 동시에 화를 뿜어댔다. 아직도 큰 아이가 어린 시절 네 살도 채 안 됐을 때 밥을 먹으면서 연신 주변을 살피고 조금이라도 흘린 음식이 있으면 쓱싹쓱싹 계속 닦는 듯한 행동을 하는 영상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래, 처음 그 영상을 봤을 땐 내가 왜 이렇게 깔끔을 떨었지, 나는 청소에도 목숨 거는 사람이 아닌데, 하고 막 웃었는데 두 번째 보고 세 번째 볼 수록 내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아, 영상 속 아이는 내 눈치를 보고 있었던 거구나. 밥 먹을 때 엄마가 바로 앞자리 앉아서 잘 먹는다 웃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가 이토록 긴장하면서 먹을 정도로 나는 대체 어떤 화를 냈던 걸까 부끄러웠다. 꼭꼭 씹어 먹으면서도 맛보다도 흘린 밥풀 한 알에 더 신경 쓰는 아이, 엄마가 먹다가 또 어느 시점에서 화를 낼지도 모르니까.
아니, 맛있게 잘 먹고 있는데 왜?
왜 이렇게 별 거 아닌 거에 화를 내?
아이 맞은편에 앉아있는 나에게 스스로 묻고 있었다. 한 걸음만 떨어져 봐도 화낼 일이 아닌데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나 역시, 어린 시절 흘릴 때마다, 엄마에게 잔소리 엄청 들었다. 어느 날엔가, 결혼식장에서 다녀오신 부모님이 유리병 안에 담긴 델몬트 주스 두 병을 사 왔는데 그걸 빨리 마시고 싶어서 들었다가 무거워서 놓친 기억이 있다. 와장창, 산산조각 난 주스병만으로도 놀랐는데 그 뒤로 이어진 부모님의 호통과 야단에 더 놀랐던 기억이 난다. '먹는 것만 밝히고', '먹을 거에 득달같이 달려와서 결국 사고를 친다'는 잔소리를 듣다가 눈물이 터져서 한동안은 델몬트 주스병을 쳐다보기도 싫었다.
자주 흘리는 이런 실수는 다른 집에서도 이어졌다. 조심성이 없는 성격이었는지 나 역시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음료나 물 같은걸 무심히 툭 건드려서 쏟곤 했다. 심지어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 어머님께서 먹으라며 건넨 우유랑 쿠키를 먹다가 발로 툭 건드려서 우유를 쏟고야 말았다. 분명히 쿠키 간식을 건넬 때만 해도 친구 어머님은 세상 인자한 청소년 드라마에 나올법한 어머니상이었는데 내가 우유를 쏟은 뒤 달려와서 인상을 쓰며 욕을 하기 시작하셨다. 남의 엄마에게까지 '쏟았다'는 이유로 욕을 먹었지만 우리 엄마에게 이를 순 없었다. 엄마는 내가 흘릴 때마다 더 화를 내고 남의 집에서 한 실수까지 들으면 더 혼을 내셨을게 뻔하니까. 나는 한 번도 뭔가를 쏟는 실수 앞에 '괜찮다'는 말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는 아이란 걸 깨달았다. 그런 시대를 살았고 내 실수에 친구는 고분고분 그걸 마저 닦고 당황해서 어버버 하고 있는 나에게 다시 새 우유를 따라서 가져왔다. 친구 엄마는 내가 집에 갈 때까지도 내 인사를 받지 않으셨다. 흘리는 것에 대해서 강박적으로 대처하고 예민한 엄마들이 더 많았던 시기를 살았던 걸까.
어린 시절, 손만 대면 고장 나고 쏟았던 '고장손'이었던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쏟는 건 커다란 잘못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혼나 마땅한 일이었고 저질러진 '사고'자체가 무지 큰 일처럼 느껴졌다. 당연히 '저지르지 말아야 할 실수'라는 전제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 깊숙이 자리 잡혀 있었던 건 아닐까.
*저지르지 말아야 할 실수 같은 건 애초에 없는데도 말이다.
나 역시 어수선하게 어질러진 바닥이나, 정리되지 않은 장난감엔 화가 나지 않았는데 (가끔 청소하다 지쳐서 정리하라고 소리친 적은 있었지만) 화학적인 오염이 패브릭 소파에 스며든다거나, 내가 놓쳐서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그게 그렇게 약 오른 기분이 들고 부글부글 참다가 폭발하곤 했다.
이왕, 엎질러진 걸 주워 담을 수 없으니 어쩌나…. 그런 와중에 물을 쏟으면 그래도 너그럽게 넘어가곤 했는데 물은 닦아도 특정한 냄새나 얼룩을 남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국이나 우유, 주스, 끈적거리거나 기름기가 묻은 음식을 반복적으로 치우는 일이 잦아지고 어느 한계점에선 꼭 한 번씩 터져버렸다. 아이들에게 닦는 법을 가르쳐줘서 '스스로'닦게 해도 결국 내 손을 한 번 더 거쳐 닦아내고 정리해야 성에 찼던 것 같다. 식탁이 대단히 비싸거나 귀해서, 식탁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아닌, 어느 날은 흘려도 그냥 아무렇지 않게 닦고 넘어가거나 같이 닦게 해서 흘리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넘어가기도 했고 어떤 날은 또 울컥 화가 밀려왔다.
흘린 태도를 누구랑 비교하거나 비난하는 말로 쏘아붙인 건 아니지만 이걸 '닦는 내가 얼마나 지치는지' 닦고 있는 이 상황이 얼마나 지긋지긋한지 그걸 반복하고 화를 내면서 강조하고 있었다.
흘릴 때마다 일관적인 태도를 보이기보단 그때그때 기분과 상황에 몰입했다. 평상시엔 화를 참고 아무렇지 않게 묵묵히 닦아내거나 같이 닦자고 하면서 닦아내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여기까지만 반복했으면 좋았겠지만, 몸이 힘들고 피곤한 날, 지나치게 기분이 다운된 날엔 별 거 아닌데도 쏟아지는 소리와 동시에 불같이 화를 냈다. 그게 아마, 조심성 없는 행동을 반복해서 세네 번 이상 됐을 때 폭발했는데, 내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연달아 저지른 실수에 욱 버튼이 눌러진 것 같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긴 시간 요리를 했는데 돌아서면, 뚝딱 빠르게 먹어서 순식간에 없어진 음식을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자식들이 잘 먹으면 안 먹어서 고민하는 것보다 기쁜 일, 좋은 일이 맞지만 어쩌면 내가 '다 같이 먹는 식사' 보다는 언제나 아이들을 먼저 앉혀서 먹이고 정리를 해주다 마지막에 먹었던 습관 자체에 억울하고 더 화가 났던 건 아닐까. 그냥 같이 수저를 두고 먹으면 되는데 배고파하는 아이들을 챙기는 거에만 급급하고 내 배는 꼬르륵꼬르륵 예민상태에 돌입한 걸 눈치채지 못한 날도 많았다. 아이들이 조금 배고파도 내 밥그릇 하나 더 퍼서 한 자리에서 엄마도 먹으며 밥상 예절과 밥상머리 교육을 하면서 즐거운 식사가 돼야 하는데 따로따로가 왠지 모를 순서가 되고 거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오히려 나는 흘리나 안 흘리나 감시자, 우리 아이들은 엄마의 멀뚱멀뚱 이상한 감시에서 밥을 먹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기도 하다.
식탁에 마음껏 흘려도 된다. 사실 그러라고 있는 식탁인걸.
대신 〔식탁에서 규칙〕을 정해보자.
▶ 각자가 흘리거나 떨어뜨린 음식은 나중에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한 번 더 확인하고 깨끗하게 정리하기. -쏟거나 엎어서 혼자 수습할 수 없을 때 형이나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기-
▷ 잘 먹었습니다, 음식을 준비해 준 부모님께 감사 인사하기.
▶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의자 집어넣는 뒷정리, 자기 밥그릇 다 먹은 식기는 싱크대에 집어넣기.
하부르타에서 1세는 99세라고 한다. 그러니까 2세는 98세, 3세는 97세 이렇게 거꾸로 대비되는 나이이다. 아이들이 한참 많이 쏟고 흘리는 네다섯 살 시기는 90세 중반 후반에 해당한다. 누가 90세 노인에게 음식을 흘린다고 화를 막 낸단 말인가. 내 부모님이 여든이 넘고, 아흔이 넘어서 음식을 쏟거나 흘려도 그걸로 화를 내는 자식이 있을까. 손가락 근육도, 식기도 잘 잡을 수 없고 놓치는 시기에 아이가 흘린 것뿐이다. 식탁이, 소파가 더러워져도 내가 더럽혀진 건 아닌데 맞닥뜨려진 상황과 사물에 내가 더럽혀진 것처럼 착각하거나 기분을 대입하지 말자.
아니 99세까지 갈 필요도 없다. 이제 40대 중반이 된 신랑은 요즘 뭘 먹어도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자꾸 음식을 흘리거나 떨어뜨리는 일도 종종 있다고 한다. 민망해서 신랑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뿐이지, 나도 흘리고 쏟는 실수를 한다. 어른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다. 일부러 그렇게 안 하려고 조심하지만 식당에서 물을 쏟거나, 급하게 움직이다 보면 예기치 않는 상황들에 맞닥뜨리기도 한다.
아이들이 뭔가를 흘려서 심기를 불편하게 할 때면 이 생각을 먼저 떠올린다. '내가 만약 흘렸을 땐' 세상 관대하게 대처하고 처리하면서 유독 아이 들 건 더 열받아하면서 길길이 날뛸 필요가 있나, 얼마나 바보 같은 어른인가! 침착하게 내 일을 대처했으면 아이들 일에도 동일하게 할 수 있다. 나의 분노 폭발 이유와 원인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다음번 같은 상황에서 좀 더 다르게 대처할 수 있다.
아이에게 부모의 이런 잔소리는 꼭 필요하다 대부분 잔소리는 나쁜 것이고, 아이에게 감정은 빼고 해야 할 행동만 언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현실에서 쉽게 가능한 게 아니다. 또한, 부모의 잔소리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분노, 명령, 억압 등 이것 3 가지만 뺄 수 있다면, 잔소리도 아이에게 좋은 지적 자원이 될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가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것들은 반복해서라도 들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설 령 그게 잔소리처럼 들린다고 해도, 훗날 그 잔소리는 오히려 아이에게 살아갈 힘이 되니까.
<부모의 질문력>, 김종원
>> 아이에게 감정은 빼고, 해야 할 행동만 말하기. 이게 나에겐 넘어야 할 산이고 너무 어렵다. 감정 투성인 엄마가 분노, 명령, 억압을 빼고 해야 할 것, 알아야 할 것만 아이들에게 담백하게 말한다는 게 참 어렵다. 평소에 잔소리를 많이 하는 편도 아닌데 김종원 작가님 글을 읽다가 어쩌면 나 역시 감정이 담긴 무수한 엄마의 말을 잔소리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꼭 해야 할 말은 피하고 피하다가, 결국 그런 감정들이 쌓이다 분노와 욱으로 이어 진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잔소리를 피할 생각으로 대처하지 말고 분노, 명령, 억압을 뺀 해야 할 말을 하는 부모가 되도록 노력하고 싶다.
#욱아일기
#어려운잔소리
#그래도기억하자
#분노명령억압
#아이를누르고나를짓누르는말
#나한테만관대한나
#몹시쓸모있는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