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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욱'부모가 있었다

말해봐요. 나한테 왜 그러셨어요?

by 앤나우

나는 학창 시절 내내 초등학교 6년, 중등 3년, 고등학교 3년까지 전부 12년 개근상을 받았다. 크게 아프거나 특별한 일도 없었거니와 조금 콜록거리거나 아파도 그냥 학교에서 잠깐 쉬고 아프면 되지,라는 부모님의 영향도 큰 것 같다. 성실한 편은 분명 아니었던 것 같은데 버스를 타고 중학교에 다니고 아침잠이 많아도 졸린 눈을 비비며 학교로 뛰어가고, 비교적 성실한 편이었던 것 같다. 딱히 모난데도 없이 학교를 잘 다녔다. 다양한 선생님들도 만났는데 인상 깊은 선생님은 물론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를 대놓고 편애해 주고 예뻐해 주신 구경희선생님이시지만(그분은 어떤 별명이 아닌 그저 성함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빛과 같다) 다른 의미로 인상적인 선생님이 있다.


별명은 '미친 영어' ㅋㅋㅋ 영어 선생님이었는데 와, 앞에 왜 대놓고 '미친'을 붙였는지 첫 시간부터 이해가 갔다. 한 명씩 번호를 무작위로 불러서 단어를 전부 읽고 본문 * 해석을 못하면 갑자기 눈을 감고 듣다가 여지없이 뺨따귀를 갈겼다. 그냥 찰싹 이 아니라, 갈겼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여학생들을(남·녀 공학이었지만 합반이 아니어서 남자반 | 여자반이 따로 있었다) 철썩, 온 힘을 다해 스매싱 날리는 듯한 따귀였다.


미친 영어가 폭주해서 일어날 때 마다 학생들은 가엾고 애처롭게 털썩 날아갔다. 뺨을 맞은 것도 굴욕적인데 뺨을 맞은 아이들은 모두 교탁 옆에 쭈르륵 엎드려 뻗쳐 자세로 벌까지 받아야 했다.

아이러니한 건 미친 '귓방망이'와 달리 영어 선생 자체는 눈이 무척 작지만 피부도 광채가 나고, 늘 우아하게 셋팅한 머리며, 조곤조곤 말씨, 심지어 영어 발음도 정말 좋아서 가르치는 기술도 뛰어났단 점이다. 이런 잘 가르치는 재질을 가지셨음에도, 아이들을 쉽게 다루는 기술을 터득하신 건지, 그것이 콘셉트인지 그렇게 뺨을 때렸다. 자기 귀에 조금이라도 틀린 발음으로 들리면 일단 작은 눈을 번쩍 뜨면서 한 번 더 묻고, 두 번의 기회를 주지도 않고, 정확한 발음을 외치면서 아이들에게 돌진해서 따귀를 날리는 모습은 고등학생인 내가 보기엔 너무 웃겼다. 말 그대로 우스꽝스러웠다. 물론 분위기는 공포스러워서 웃음을 터뜨릴 순 없었지만, 본인 모습이 코미디처럼, 희극배우처럼 보인다는 걸 알까,싶기도 하고. 그때 같이 어울리는 내 친구들 대부분은 따귀를 맞진 않았는데 한 반에 따귀 맞지 않는 애들은 10명 정도밖에 안 됐다. (반 아이들이 60명 정도였다)

영어가 들었던 날, 점심시간은 언제나 '미친 영어'가 화제였다.


-나 : 나는, 나 시켰을 때도 똑같이 뺨 맞는 상상을 해봤어.

-내 친구 : 넌, 맞아본 적 없잖아. 일단 너는 번호가 18번이라 많이 걸리지도 않는 거 같아. 맨날 걸리는 번호만 시켜. 나 봐봐, 맨날 내 번호만 부른대도!

-나 : 응, 그래도 만약에 내가 걸려서 또 비슷한 상황에서 따귀 맞으면 나는 그 자리에서 뛰쳐나갈 거야. 자존심 상해! 다른데도 아니고 어떻게 따귀를 때려! 나는 부모님한테도 따귀는 안 맞아봤어!










아, 내가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으면 떠올리지 않았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씁쓸하게도 나도 어렸을 때 저학년 시절에 따귀를 맞아 본 적이 있구나. 미친 영어 단어사건보다 더 별 일 아닌 일로.


우리 아빠도 엄마도 꽤 엄한 환경이었고, 학습에 대한 기대뿐 아니라 행동에 대한 기준과 기대도 높은 분들이었는데, 중학생 이후로는 때리지 않고 때리기 보단 빈 의자에 앉은듯한 자세(오늘날 스쿼드 자세인데 그게 벌이라고 생각하면 무진장 힘듭니다), 콩콩 강시처럼 두 팔을 앞으로 나란히 하고 무릎 꿇은 채로 견디는 자세(이것도 역시 팔이 후덜거리고 땀이 날 정도로 고통의 시간이다)로 벌을 내리셨다.


그때도 '생각하는 의자'가 있었으면 좋았을걸, 체벌의 효과는 없었다. 팔다리에 알이 배기고 오히려 마음에 증오를 가둘 뿐이었다.





식구들끼리 주말에 모여 다같이 밥을 한 끼 먹었는데 그때는 주 5일이 아닌, 주 6일 토요일까지 늘 수업이 있어서 일요일 예배를 드리고 와서 이른 점심 한 끼를 항상 집에서 풍성하게 먹었던 것 같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아빠, 살림도 하시지만 늘 일하러 나가시는 엄마 스케줄로 우리 식구는 함께 다 같이 빙 둘러 밥 먹는 유일한 시간이 그날이었던 것 같다. 어린 나이, 내 기억으론 7살이나 8살이었던 것 같다. 아빠가 늘 길게 대표 기도를 했는데 나만 늘 눈 뜨고 달그락 수저를 들었다 놓기도 하고 장난으로 언니를 쿡쿡 찌르기도 했던 것 같다. 엄마가 마음먹고 차려진 상 위엔 내가 좋아하는 반찬도 가득했고 맛있는 음식이 가득해서 참기 힘들었다.


그날도 이어지는 아빠 기도 중에 그냥 장난으로 교회 부흥회나 예배 시간에 어른들, 권사님들이나 장로님의 추임새인 "아멘, 아멘" 이런 걸 몇 마디 했는데 갑작스럽게 철썩, 따귀가 날아왔다.


아, 이미 달그락 장난을 치고 기도를 집중했을 때부터 아빠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한 걸까. 아빠는 아무 사전경고 없이 그렇게나 혐오하는 미친 영어처럼 어린 내 뺨을 철썩, 그것도 밥상에서 때렸다.

그다음의 기억이 없다. 몇 해전 아이 놀이치료와 상담을 하면서 알았는데 어린아이들은 너무 공포스러운 순간을 스스로 잊고,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는 성향이 크다고 한다. 나한테도 그런 게 발동한 걸까.


젓가락을 던졌는지, 엉엉 소리 내서 울었는지, 눈물을 참고 밥을 먹었는지 그 모든 행동은 기억나지 않지만 상황은 안 떠오르는데 감정은 기억이 난다는 게 신기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날아온 아빠의 커다란 손은 우선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두 번째 감정은 '수치심'이었다. 나를 늘 봐오던 엄마, 언니 앞에서 맞은 뺨이지만 그게 창피해서 수치스러운 감정이 점점 커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선택 사항이 별로 없다는 게 억울했다.

어린아이들은 어른처럼 대처하는 법을 잘 모른다. 어른은 화가 나고 황당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대처하고 수습하고 또 그렇게 못하고 넘어갔어도 누군가에게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는? 아이들은 할 수 있는 선택사항이 별로 많지 않다. 친구에게 전화로 수다를 떨 수도 없고, 심지어 나랑 제일 가까운 가족이기에 그걸 누군가에게 말한다는 행동 자체에도 죄책감이 든다.



논리적으로 따지거나 저항할 힘도 없는 어린아이, 그런 어린아이에게 내가 내뿜었던 '욱'을 떠올려보면 육체의 상처나 아픔이 아니라 마음 어딘가 정서에 난 스크래치, 기분 나쁜 흠집 같은 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너무 어렸을 때 맞은 따귀라 그게 아팠다, 멍들었다, 이런 육체의 쓰라림 정도는 아니고 기억도 가물가물 한 중에 잊을 수 없는 기분 나쁜 감정 정도로 인식됐던 것 같다.


미친 영어의(선생'님'이라고 부르기가 싫다, ) 예고 없는 따귀도, 아빠의 귓방망이도, 나의 버럭으로 튀어나온 분노도 당사자야 뭔 사연이 있고 화의 단계가 있겠지만, 찾아보면 거기에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이게 무슨 서사라고, 맞은 사람, 화내고 성냄을 고스란히 받은 아이에게 상처가 됐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우리 아빤 밤마다 잠들기 전에 가정예배를 드리고, 성경 이야기도 재밌게 들려주는 사람이었는데 그것과 더불어 예배 태도를 지적하고 싶었다면 '말'로 해줬더라면 어땠을까. 충분히 알아듣고 눈치를 좀 보고 자세를 고쳐 잡지 않았을까. 그냥 유머러스하게 아이의 장난이겠거니 웃어넘기는 아빠였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고.

아빠 역시 나에게 모든 욱하는 감정을 쏟아부었던 거구나.



이건 다시 유년의 아픔을 떠올리고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꺼내놓은 건 아니다. 욱하는 순간 부모에게 느꼈을 공포, 실망, 증오, 분노 같은 감정들이 그런 감정이 다가 아니기에 때로는 나에게 잘 대해주고 다정하고, 더 많은 걸 해주는 부분에서 아빠를 '미워한다'는 감정 자체가 죄책감이 되기도 했다는 걸 깨달았다. 맞은 건 분명 난데, 죄책감까지 떠맡아진 기분이 들어야 하는 누군가, 아니 부모의 '욱'은 고통스러울 뿐이란 걸.

이제 아이를 키우는 나 '자신에게' 말하고 싶어 기억 저편에 묻어둔 감정을 쓰라리지만 들춰냈다.


나는 미친 영어를 비롯 그 어떤 선생님에게도 따귀는 맞지 않았지만 거기선 만약 … 이렇다면, 하고 내가 맞게 될 상황, 맞닥뜨릴 공포에 저항해서 뛰쳐나갈 상상이라도 했지, 우리 아이들은 그걸 상상하기에도 어리고 너무 어리다.


논리적으로 따박따박 말대꾸로 부모를 정신 차리게 할 아이들이 있다면 조금 더 거울 치료가 되겠지만 결국은 분노와 화를 어떻게 표현하고 나타내느냐 하는 '방식',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중요하다.








지난주부터 마라톤을 위해 조금씩 달기를 하고 있다. 밖으로 나가서 런데이 어플 '런저씨 목소리'에 귀 기울여서 온전히 내가 나에게 집중하는 30분~1시간씩을 갖고 나면 건강해진 몸, 신체보다 내 마음의 상태가 긍정적으로 바뀌는 게 느껴졌다.


오늘은 오전에 일이 있어 저녁 달리기를 했는데 오늘 차 달리기 주제는 '달리기와 부상'에 대한 내용이었다.




부상을 당하지 않으려면 제일 중요한 건 뭐라고 했죠? 절대 절대 절대 욕심을 내서는 안 돼요. 아셨죠? 절대 욕심내지 말고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무리하지 마세요. 다치지 않으면 제일 좋겠지만 여태껏 달리면서 한 번도 안 다쳤다면 여러분은, 정말 운이 좋은 거예요. 하지만 내가 조심한다고 해서 안 다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갑자기 달려오는 사람에게 부딪치거나 강풍이 불어 바람에 쓰러지거나 하는 일도 있어요. 달리기를 마친 후 부상에 대해 찾아보세요. 미리 알고 부상을 공부하고 대비하는 것도 도움이 되니까요.




연재가 있는 날이라 오늘 쓸 글에 대해 생각한 터라 이 말을 듣는데 나에게, 나의 '욱'아일기에 건네는 말처럼 들렸다.



*내가 요즘 푹 빠져있는 런데이 어플의 '런저씨'말투로 써봤다.




분노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제일 중요한 게 뭐랬죠? 절대 절대 절대 내 아이에게 '욕심'을 내서는 안 돼요.
아이를 있는 그대로, 욕심내지 말고 그 자체로 바라보세요. 완벽해지려고 무리하지 마세요. 완벽한 부모가 되고 싶으세요? 그렇게 전부 채워진 부모가 없는데 어떻게 완벽한 아이가 있겠어요.

상황에 따라, 우연히 또 한 번 화가 밀려오는 상황에 대비하세요. 나는 자신 있어! 괜찮아! 하는 태도보다 늘 자기 마음 상태를 점검하세요. 아이와 말로 소통하세요. 아이를 가까이서 관찰하고 이야기를 듣고 이제 엄마 이야기를 꺼내세요. 서로 다른 사람이기에 평생 공부하고 알아가는 시간이 분명 '욱'대신 선물 같은 '추억'과 단단한 시간을 줄 거예요.

달리기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했죠? 경쟁자도 기록도 아닌 달리기는 오로지 나 혼자, 날마다 싸우는 일이에요. 육아 역시 누구랑 비교하고, 심지어 어린 시절 나와 부모를 대입하지 않아도 돼요. 육아는 '나 자신과 달리는 일'이기도 해요! 뛰다 보면 조금 더 오래 뛰고 먼 거리를 달리고 바람을 가르는 걸 상쾌하게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욱'을 다스리려면 조금 더 멀리 바라보고 날마다, 순간마다의 다짐이 필요합니다.



완벽히 키우겠다, 완벽한 아이로 양육하겠다. 아이의 부족함을 내가 다 메꾸겠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할 때마다 못 참고 한 번씩 화를 냈다. 나도 완벽하지 않은데, 무슨;;; 얼마나 오만하고 황당한 생각인지!

미친 영어 덕분에 당시에 영어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내 인생에서 영어 수업을 제일 싫어하는 시기기도 한 것처럼, 밥상머리 기도 시간이 아빠의 날아온 손바닥 덕분에 나에겐 뭔가 '가식적'으로 느껴진 의식이 된 것처럼 나의 분노와 '욱'도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시간임을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겠다.



말해봐요. 나한테 왜 그러셨어요?



이건 내가 묻는 말이 아니다. 내가 미래에 다 큰 우리 아이들에게 듣게 될 말을 떠올리면서 썼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선우가 강사장에게 묻는다. 말도 안 되는 말로 어버버, 강사장이 대답한다. (뭔 모욕감을 줬다고, 다시 들어도 참 별로인 변명이다. 그냥 자기 혼자 '욱'한 사람인거지.) 사실 이유가 없고 강사장 혼자 폭주한 것일 뿐, 선우만큼 귀하고 충실한 아들이 또 있었을까 싶은 관계다.


나중에, 더 큰 우리 아이들에게 이 말을 듣지 않으려면

-그냥 엄마가 이유 없이 화나서 그랬어, 이렇게 어버버 하지 않으려면 정신 단디 차리고 달리면서 나를 단련할 뿐 아니라 아이들을 마주하는 내 마음도 단련해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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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화가났는지말로터뜨리는거다

#엄마의욱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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