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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소설

by 앤나우

나는 여름을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라고 말하면서도 매년 여름마다 힘들다.

너무 더워서.


거기다 올해 여름은 (사실은 *매년마다) 가장 더운 것 같다. 사계절이 있어서 귀찮고 짜증 나는 게 점점 많아지는 나이가 됐지만 그중에서도 여름'더위'와 '햇볕'은 낯설면서도 이상한 매력이 있다.


작가는 왜 '여름'을 골랐을까.

작렬하는 태양, 온 세상이 찜통 속 같은 더위의 폭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하는(?) 이상한 계절이다. 할 수 있는 건 집에 들어박혀서, 최대한 시원하게 에어컨 앞에 앉아있는 거지만 그래도 쨍쨍 내리쬐는 계절은 우리를 또 바깥으로 자꾸만 나가게 해 준다.








이 소설집에 담긴 7편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이런 속수무책 상황에서 땀이 줄줄 흐르고 급기야 눈물이 터지고 속이 문드러진다. 심지어 그걸 감출 수 조차 없는 상황에 처한다. 고통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고 발버둥을 치고 캔디같이 일어서는 인물들은 여기선 보이지 않는다. 그냥 일상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불행 같은 사고를 그렇게 '우연히' 맞닥뜨리고 만났을 뿐이다.


나는 김애란 작가의 섬세한 글을 정말 좋아한다. 최은영작가가 세밀하지만 따뜻한 시선이라면 김애란 작가의 글은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개개인의 이야기들이 결국은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이 책을 읽었을 무렵에 나도 '영우'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초보 엄마였기에 첫 단편 '입동'을 읽을 때부터 마음이 찌르르 아파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읽기를 멈출 수 없었다. 힘겹게 이어가는 대사가 너무도 생생해서 다음 장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무미건조하게 오가는 듯한 대사 하나에도 힘이 있다면 이런 글을 말하는 걸까.


'노찬성과 에반'에서도 나는 찬성이가 에반보다 더 사랑하는 게 생겨서 다른데 눈을 팔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마트폰 하나가 뭐라고 갖고 싶은 이유도 누군가 자길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인데, 아무도 찬성을 신경 쓰지 않는다. 어쩜 당연하지만 슬픈 사실. 아무와도 '통화'조차 할 수 없는 폰, 그래서 결국은 만지작 거리다 결국은 '죽은 아빠'까지 떠올리게 되는 어린아이. 가슴이 애리다 못해 찢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제일 재밌게 읽었던 단편'건너편'인데 오래된 연인의 천천히 식어가는 과정이 구체적이고 낱낱이 펼쳐진다. 제일 재밌는 게 남의 연애사라고 했던가, 더 재밌는 건 연인들의 서로 다투는 과정을 지켜보는 거라 했던가. 지하철 역 앞이든, 길거리든 아무 말하지 않아도 묘하게 대치하고 있는 연인들이 있으면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한 마디라도 더 듣고 싶어서 더 천천히 걷곤 했다. 내가 그 '입장'일 때는 얼마나 지옥 같은 상황인 줄 잘 알면서도, 건너편 '타자'로 보았을 땐 또 흥미로운 호기심이 생겨난다.


오래된 연인은 더없이 돈독하고 편안해 보이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이렇다. 늘 붙어있기에 그만큼 정작 중요한 건 드러내지 않고 꽁꽁 감추는 사이라는 거. 매일 양복을 입고 마치 출근하는 듯, 다시 노량진으로 일 년 동안 공부하러 간 이수의 심경도, 그걸 전혀 몰랐지만 따로 살집을 알아보던 도화도 기가 막힌 상황이다. 하지만 여기에 누구의 잘잘못이 있나, 서로의 마음이 다른 곳으로 향했을 뿐이다. 주인아주머니를 통해 우연히 이수가 천만 원을 따로 빼갔다는 걸 알게 된 도화의 심경도, 와, 나는 어느 누구의 입장할 것 없이 전부 끄덕여진다. 그러니까 누구의 입장으로 편을 들기보단 나는 이수가 되기도 도화가 되기도 했는데 결국은 감정이 터지고야 만다.


-나는 네가 돈이 없어서, 공무원이 못 돼서, 전세금을 빼가서 너랑 헤어지려는 아니야.
- ……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



이 작가는 '노량진'이란 이 단어 하나로도 이렇게 멋진 소설을 썼단 말인가! 이별의 장소가 노량진 수산시장이라니, 여기에 나오는 대사와 구성이 착착 오버랩되듯 그려지는데 그런 장면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닿는다.


도화는 어제 바로 자기가 이별을 고했던 그 노량진에서 더 이상 되돌릴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하면서 다음날 노량진엔 추돌 사고가 있었지만 현재 사고 정리가 모두 '끝난 상태'라고 말한다. 양방향 모두 교통 상황 원활하다는 말까지, 아이러니하면서도 절묘하게 어울리는 이런 대사들이 이 소설을 더 빛나게 하는 묘미 아닐까, 이렇게 쉽게 정리되고 아무렇지 않은 어느 하루였을 뿐일까.



사실 나는 대학시절 『달려라, 아비』라는 소설이 프랑스에서 어마어마한 상을 받았다고 했을 때도 작가가 그리는 세상이 궁금했다. 치열하게 벗어나려고 애쓰지도 않고 혼자 처절하고 가련한 주인공으로 매몰되지도 않는 주인공의 태도가 피식 웃음이 터지다가도, 회피하는 건가 싶다가도 결국 끄덕여졌기에. 그냥 인정하는 거였음을, 그저 삶을 살아가려는 자기만의 또 다른 방식이었음을. 그래, 건너편에 있는 사람이 그걸 속속들이 자기 잣대로 판단할 때 진짜 불행이 시작되는 거 아니겠는가. 그저 웃어주고 울어주고 들어주면 된다, 이런 생각이 든 소설집이다.


가장 최근에 나온 그녀의 소설 『이 중 하나는 거짓말』에서도 영어공부 앱이 마치 그 마음을 대변하듯 이야기하는데 여기에도 인공지능 서비스 '시리'가 등장한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현대인과 맞닿아있는 핸드폰, 컴퓨터 기능들을 통해 인물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우회적으로 그리는 솜씨가 노련하다. 순간순간 멈칫, 외로웠을, 아팠을 인물의 마음을, 여백의 시간을 더 가슴 시리게 전달해 주는 것 같다.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지만 몇 해전 필사 모임을 통해 김애란 작가님의 에세이집 한 권을 알게 됐다. 이 소설의 완성은 어쩌면 작가님의 에세이집과도 맞닿아있다. 여기에 나온 문장들에도 나는 웃고 울었다.






이제 그녀 곁에 다가가 나란히 쪼그려 앉아보려 한다.
그러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옆얼굴을 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어볼 생각이다.

당신, 대체, 거기서
무얼 그리 열심히 보는 거냐고.


우리가 우리이기 전에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알려주는 말들.
그리하여 나와 똑같은 무게를 지닌 타자를 상상토록 돕는 말들을 생각했다.

우리 안으로 들어오라는 초청이 아니라

나와 너로 만나는

그리하여 한 번 더 철저히 '개인'이 되는,
그 개인의 고유한 내면을 깊이 경험해 보도록 돕는 문학의 언어를.


김애란 작가의 에세이 『잊기 좋은 이름』중에서


글을 쓴다는 건 이토록 세밀하고 눈물 나는 작업이구나. 아, 나는 얼마나 쉽게 쓰고 쉽게 읽었던가.


에세이를 통해 작가의 어머니가 '맛나당'이란 국숫집을 20년간 이어가며 손칼국수를 팔았다는 걸 알았다. 가족들과 가게에서 8년 넘게 살면서 '맛나당'이란 장소 자체가 정서를 만들어줬다고 했는데 나는 후루룩 넘어가는 국수면발 같은, 따뜻한 육수 같은 이 이야기가 왠지 좋았다. 그래서인가, 바깥은 여름에도 잔치국수, 국수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을 읽을 때마다 다시 한번 빙긋 웃음이 지어진다.





여름은 미치도록 덥고, 한 발짝 나가기도 무서운데 그래도 그 어느 때보다 가장 '가벼운'옷차림'으로 언제든 나갈 수 있다. 낮이든, 오후든, 밤이든 더운 건 매한가지고 해도 늦게 지니까. 그냥 나갈 용기 하나만 있으면 언제든 나갈 수 있다. 우리는 타인과 누군가와 완벽한 연결이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걸 '겪어야만'위로할 수 있는 폭이 맞닿아있다는 것도.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도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자식을 잃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달려왔다. 그들이 버티고 있는 존재 자체로도 누군가에게 살아있으라는 응원을 보냈다.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손을 내밀 수 있는 그들의 행동과 장면들이 뭉클하면서도 서럽고 안쓰러우면서도 따뜻했다. 그걸 '겪지'않아도 진심으로 위로해 주고 '기억'해주고 간직하고 추모해 주고 싶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진심으로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 하나가 촛불을 켜게 한 것처럼.





여름이다. 아프지만, 힘든 일을 겪은 모든 사람들에게 내리쬐는 태양이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밝혀주면 좋겠다. 그들이 다시 슬리퍼든, 뭐든 끌고 나가고픈 마음으로 문을 열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그래서 제목을 바깥은, 여름이라고 한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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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또 다른 기다림의 계절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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