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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는 키가 작아지면 좋겠어

내 키를 나눠주고 싶어

by 앤나우

아침에 아이 미술 특강 수업이 있어서 부랴부랴 토스트를 구워서 우유를 따르고 상을 차리고 있는데 뜬금없이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상황도 맥락도 맞지 않지만, 사실 종종 해왔던 이야기다.


이제 내 키를 훌쩍 넘어 쑥쑥 잘 자라는 중인데 첫째 아이는 큰 키에 대한 불만이 많다.





엄마, 나는 키가 다시 작아지면 좋겠어.
키 크는 게 싫어.
엄마보다 더 커서 이젠 슬퍼.



둘째랑 터울이 다섯 살 차이니까, 키가 작고 아직은 손이 더 많이 가는 둘째가 부러워서 그러는 걸까도 싶고, 종종 하는 이야기들을 어떤 마음에서 하는지는 어렴풋이 알았지만 또 궁금해서 물었다. 제대로 대답해 준 적이 없는데 오늘은 아침을 먹으며 덤덤하게 말을 잇는다.


엄마가 이젠 혼내고 화내도 별로 무섭지가 않더라. 내 키가 커지니까 그런가 봐. 나는 그게 좀 슬퍼. 엄마가 예전처럼 더 무서울 땐 무섭고, 해야 하는데 엄마가 불쌍하단 생각도 종종 들거든.


이럴 때 F엄마는 정말 T이고 싶다. 아이의 이런 고백 같은 이야기가 흘려서 지나가지 않고 뭔가 마음에 맺히고 덩달아 울적해진다. 나도 사춘기 즈음에 저런 생각을 했던가 싶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키가 작아서 키가 커지는 것에 대한 공포는 느껴본 적이 없지만 이미 키는 자라고 자신이 더 어른만 해지는 몸과, 그렇지 못한 마음이 갈등한다고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하고 솔직한 그 표현이 찡하게 느껴진다.


키가 큰 것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키가 크는 성장에 대한 불안이었구나.


그래도 눈물이 나려는 걸 꾹 참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꺼냈다.


-동생 키가 작아서, 엄마가 동생을 더 귀여워해주는 거 같아? 아니야, 그건. 어려서 손이 더 많이 가서 그런 거지, 엄마 눈엔 아직도 네가 얼마나 귀여운데?

네가 얼마나 귀엽고, 순수한데, 키가 크다고 해서 바로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엄마랑 아빠가 널 지켜주고 보호해 줄 거야. 계속계속.

-그건 아닌 거 같아. 키가 더 작아져서, 어제 예찬이 형이(*영국에서 온 큰 조카) 자꾸 더 크고 싶다고 했잖아. 나는 내 키를 예찬이 형한테도 좀 더 나눠주고 싶어. 그럴 수만 있다면. 뚝 떼서 주고 싶어. 그냥 엄마도, 아빠도 나보다 더 큰 사람이었으면 쭉 그랬으면 좋겠어. 근데 벌써 엄마 키는 앞지르고 있고, 아빠보다 키가 더 커지면 어떡하지? 기분이 이상해지니까 그냥 다시 작아지면 좋겠어.


키가 점점 클수록 혼자만의 공간도, 시간도 필요해지고 생각도 많아진 아이. 키를 넘어선 순간부턴 동생처럼 어화둥둥 업어주고 안아주질 못해서 그걸 아는 거 같아서 저런 생각을 쌓아온 걸까. 나는 또 이런 마음이 가장 먼저 신경 쓰였던 걸까. 말없이 안아주는데 반대로 아이가 토닥토닥 내 어깨를 두드려준다. 아이를 보내고 가만히 그 말을 떠올려보니, 마음 한 편에 '성장'한다는 건 나 조차도 모르는 사이 몸이 자라 있는 상태기도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마음이 준비가 안될 때는 괴로울 수도 있겠구나 싶다. 온전한 성장은 몸과 마음이 언제나 함께다. 하나가 앞질러가도 그걸 받아들이기까지 과정은 언제나 고되고 아플 수밖에 없다.


우리는 늘 성장하는 거, 1mm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 좋다고 가르치고 그렇게 말하지, 그게 왜 좋은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아니, 말해 줄 수가 없다. 경험으로 느끼고 저마다 다른 상황과 조건에서 부딪혀봐야 '성장'을 통한 기쁨을 얻는 거니까.


울적해서 답답함을 나누고자, 신랑에게 이야기해 주니

>>자식, 중고딩만 돼 봐라. 그럼 키 큰 게 그렇게 더 행복하고 좋다는 걸 바로 알 거다!




나도 이렇게 웃고 넘기는 성격이 되고 싶은데 나는 아이의 마음을 깊이 공감하는 탓에 그런 말 한마디에 몰두할 때가 많고 당장 뭔가를 내가 '해결'해주고 수습해 주려는 마음에 조급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이미 다 자라고 성장 중인 키를 내가 무슨 수로 줄여? , 나도 피식 웃음이 났다.

엄마가 키가 175, 180cm쯤 됐다면 그러면 아이는 이런 고민을 안 했을까. 그래, 이건 이런 문제가 아닌 거지.

-엄마는 지금도 불편한, 크고 싶은 키를 너는 키가 커서 고민이라니, 아이쿠.



늘 옆에서 나랑 같이 걸을 때면 허리도 숙이고 무릎도 굽혀서 엄마보다 더 작은 아이가 돼서 걷는 장난을 종종 치는데 그 모습 어딘가도 짠해서 웃다가 화를 내기도 하고, 그때그때 놓쳤던 감정도 떠올라서 울고 나니,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지금처럼 어떤 감정이든 들어주고 조금 더 흘려듣고(사실 아이는 생각보다 덤덤하고 아무렇지 않게 해 준 말이었는데)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나는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네가 있어서 참 좋다고 고맙다고 표현해 주자, 이런 생각에 이르자, 그제야 밝게 웃는 아이 모습을 떠올리며 학원 간 아이를 기다릴 수 있었다.


기다려주는 거다. 시간이 흐르기를, 하지만 아이의 긍정적이고 더 좋은 모습을 떠올리고 응원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제부터 점점 이런 것뿐이란 생각도 든다. 가장 중요한 숙제가 남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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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서 귀여울수도 있지만 모든 성장엔 저마다의 의미가 있다









2주도 안 되는 아이들 방학이 끝나간다. 이번 방학은 너무 짧고 생각보다 더 덥고 정신이 없어서 휴가를 좀 더 늦게 잡았는데 그래도 방학 시간 중 가장 좋았던 건 각자 따로따로 아이들을 데리고 잠시나마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거다.


그게 또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고 큰 아이랑은 집 앞에서 팥빙수를 같이 먹고, 백화점 카페에서 말차라테를 마시면서 이야기한 것과 둘째 아이는 먹고 싶다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사준 거. 그게 전부다.



그래도 짬을 내서 찬찬히 아이들 얼굴을 들여다보고, 집에서 또 못한 이야기도 꺼내고 나누고, 어떤 생각인지 잠깐이나마 웃고 떠들 수 있어서 좋았다. 별 거 아닌, 그 시간이 별스럽게 좋아서 이런 시간을 앞으로도 종종 따로 또 같이 마련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나는, 아이들 얼굴만 보는 걸로 배부른 엄마는 아니어서, ㅎㅎ 내 거도 따로 시켜서 커피 젤라토 아이스크림과 코코넛 라테 뭐 이런 걸 (맛있는걸)시켜서 기분전환하는 시간도 갖고, 좋았다.


두 아이 모두 각자가 느끼는 엄마도, 전부 다르다는 생각을 하니 궁금해지고 자꾸만 마음의 소리를 듣고 싶어진다. 내가 혼자 떠드는 시간보다 아무 말하지 않아도 아이랑 '옆에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이게 바로 아이들의 여름 방학 중 내가 가장 잘한 일 같다.


*나도 앞으론 신랑처럼 말하고 웃어넘기는 연습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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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우리 아이들 몸도 마음도 쑥쑥 자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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